[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미국 성착취범 제프리 엡스타인 관련 문건이 공개되면서 미국 초부유층이 자산을 관리하고 세금을 최소화하는 방식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수십 개 계좌에 분산된 현금, 신탁과 비상장 투자 구조, 예술품을 담보로 한 저금리 대출 등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1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법무부가 최근 공개한 문서들에는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 전 최고경영자(CEO) 레온 블랙의 복잡한 재무 구조가 상세히 담겼다.

2014~2015년 작성된 문건에는 69개 은행 계좌 잔액과 약 4억8400만 달러(약 7006억 원) 규모의 예술품 담보 대출 등 자산 운용 방식이 기록돼 있으며, 블랙은 엡스타인에게 세금·상속 설계 자문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3월 31일자 '재무 분석 요약'에 따르면 당시 블랙의 순자산은 약 50억 달러로 추정된다. 아폴로 지분과 펀드 투자 등 사업 관련 자산이 약 23억 달러, 미술품·희귀서적 등 개인 소장품이 약 28억 달러를 차지했다.
그는 주택 7채와 차량 11대, 걸프스트림 전용기와 베네티 요트도 보유하고 있었다. 현재 순자산은 약 140억 달러 수준으로 추산된다.
문건은 초고액 자산가들의 전형적인 절세 전략을 보여준다. 상당한 현금을 보유하면서도 자산 매각 대신 대출을 활용하고, 신탁과 유한책임회사(LLC), 사모투자 등 비상장 자산 구조를 통해 과세 부담을 줄이는 방식이다. 실제 블랙은 약 1억5400만 달러의 현금을 여러 은행 계좌와 신탁에 분산 보유했다.
이 같은 전략은 당시 초저금리 환경과도 맞물려 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사실상 제로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억만장자조차 예금에서 얻는 이자는 거의 없었다. 대신 담보 대출을 활용하면 낮은 금리로 유동성을 확보하면서 자산 매각에 따른 자본이득세를 피할 수 있었다.
블랙은 드가·세잔·피카소 등의 작품을 담보로 약 4억8400만 달러를 차입했으며 금리는 약 1%대 초반이었다. 주요 은행들은 추가 대출 제공에도 적극적이었다. 도이체방크는 예술품과 아폴로 지분을 담보로 최대 5억 달러 추가 대출을 제안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출 규모 또한 일반적인 수준을 크게 웃돌았다. 블랙 가족은 2015년 두 달 동안 약 120만 달러를 사용했고, 같은 시기 약 7000만 달러 규모 현금 기부도 약정했다. 자산 대부분은 유동성이 낮은 투자에 묶여 있었으며, 상장 주식 중심의 유동 자산은 약 1300만 달러에 그쳤다.
문서에는 엡스타인이 블랙의 '상속·세무 설계 자문' 역할로 기재돼 있었지만, 그는 법학 학위를 보유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블랙은 2012~2017년 사이 해당 자문 대가로 약 1억5800만 달러를 지급했다. 이후 그는 2021년 CEO 자리에서 물러나며 엡스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전문가들은 초부유층이 부채를 일반 대중과 전혀 다른 개념으로 인식한다고 말한다. 담보 자산 가치가 유지되는 한 대출은 세금 부담을 줄이면서 생활 자금을 확보하는 핵심 수단이 된다는 설명이다.
wonjc6@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