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예술인복지법의 핵심 제도인 예술활동증명 신청이 폭증해 올해 5월까지 6만7000여건을 기록, 연말 13만건을 넘길 전망이다
- 코로나19 특례 연장분 재신청과 복지·주거·지자체 지원사업 등 각종 자격 요건으로 활용되며 본래 취지를 벗어난 경력·스펙 증명 수단으로 변질됐다
- 인력 10명 수준으로 감당이 어려운 가운데 13년 만에 처음으로 시스템 개선 예산이 편성됐고, 정부는 AI 도입 등으로 심사 효율화와 제도 본연 기능 회복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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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김용석 선임기자 = 2011년 1월, 시나리오 작가 겸 영화감독이었던 고(故) 최고은 씨가 경기도 안양시 월셋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집 문 앞에는 "그동안 너무 도움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라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 생활고로 인한 그의 죽음은 예술가들의 처참한 현실을 세상에 알렸고, 같은 해 예술가의 지위와 권리를 보호하고 창작 활동을 돕는다는 취지의 예술인복지법, 이른바 '최고은법'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됐다.

2012년 11월부터 시행된 예술인복지법의 핵심 제도인 '예술활동증명'이 폭증세다. 올해 5월까지 신청 건수가 6만 7000여 건을 기록해 지난해 연간 총량인 6만 6456건을 이미 추월했다. 예술인복지재단은 연말까지 13만 건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근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을 직접 찾아 "근본적인 정책 수정 단계로 가야 한다"고 선언한 것은 이 때문이다.
예술활동증명은 한마디로 "나는 직업 예술가다"라는 사실을 국가로부터 공식 확인받는 제도다. 창작준비금 지원, 예술인 산재보험, 고용보험 등 각종 복지 혜택을 받으려면 거쳐야 한다.
제도 도입 이후 누적 완료자는 꾸준히 늘었다. 2021년 2월 10만 명을 달성한 뒤 약 4년 6개월 만에 다시 10만 명이 증가해 지난해 말 기준 20만 명을 돌파했다.
예술활동증명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이면에는 제도 변질이라는 측면이 있다. 최휘영 장관은 "복지 수요자를 위해 만든 제도가 경력 증명 수단으로 변질되면서 본래 취지를 벗어난 수요까지 몰리고 있다"며 "국가가 예술가를 인증하는 제도인 것처럼 오용한다든지, 취업률 통계를 위한 스펙으로 활용하는 등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이 때문에 신청 건수가 폭증하고 부정 발급이 늘어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예술활동증명서는 어린이집 입소 우선순위 확보, 지자체 각종 지원 사업 신청, 행복주택 입주 자격 등 여러 곳에서 요구된다. 코로나19 시기 긴급 지원과 예술인 고용보험 도입 등 사회보장제도가 잇따라 확대되면서, 예술활동증명은 복지 혜택의 필수 관문이 됐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와 문화예술기관들이 각종 지원 사업의 신청 자격 조건으로 이 증명서를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수요는 더 불어났다.
예술 생태계의 변화도 한몫했다. 웹툰·웹소설·미디어 아트·멀티 플랫폼 콘텐츠 등 새로운 예술 형식이 급증하면서 기존 15개 분야 분류 기준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장르도 생겨났다.
예술인복지재단 관계자는 "단일화된 양식을 배포해도 그 외 신청이 계속 늘고 있다. 복수 장르 활동 예술가도 많다. 분류 기준에 맞지 않는 경우 60~70%가 서류 미비로 보완 요청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담당 직원들은 개별 민원에 일일이 대응하는 감정 노동까지 떠안고 있기도 하다.
신청 건수 추이를 보면 2023년 4만 1000건에서 2024년 5만 건, 2025년 6만여 건으로 매년 가파르게 늘었다. 올해는 불과 5개월 만에 작년 수치를 넘어섰다.

신청 폭증 원인으로는 코로나19 기간 한시적으로 연장해 준 활동증명 유효기간이 만료되면서 지난해 말부터 재신청자들이 신규 신청자와 동시에 몰려든 것이 큰 이유 중 하나다. 2020~2021년 정부는 공연·전시가 멈춰선 예술계를 지원하기 위해 예술활동증명 유효기간 연장 특례를 시행했다. 이때 유예된 수십만 건의 재신청과 신규 신청이 함께 쏟아지고 있다.
수요 폭증을 감당하는 인력 현실은 현재 10명뿐이다. 현재 예술활동증명을 담당하는 인력은 팀장을 포함한 정규직 5명, 계약직 5명으로 총 10명이다. 추경 7억 원으로 충원한 8명이 최근 합류했지만 아직 업무 교육 중이다. 계약직의 실질 근무 기간은 최대 9개월에 불과하고 본격 투입까지 2~3개월이 걸린다.
예술활동증명 한 건당 전문 심의위원 3명(전체 121명)이 정성 평가를 진행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때 12~13주까지 늘어났던 대기 기간은 8주(3월 기준)로 소요 시간을 줄였다.
◆ 13년 만에 처음 생긴 개선 예산
시스템 개선 예산은 올해 처음 편성됐다. 연구 용역비 1억 원을 포함한 본예산 15억 원에 추경 7억 원이 더해졌다. 재단은 시스템 개선 연구 용역을 10월 말까지 완료할 예정이다. 제도 도입 후 13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시스템을 개선하는 예산이 생긴 것이다.
박도원 예술활동증명 팀장은 "예술활동증명이 생긴 이래 그동안 한 번도 고도화 작업이 이뤄지지 않았다. (과부화는) 이로 인한 시스템의 한계"라며 "안정적이고 실효성 있는 제도로 정착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최 장관은 "예술인복지 제도가 절박함에서 시작했다. 해답을 빨리 찾아내지 못하면 실수를 반복할 수 있다"라며 신속한 처리를 강조했다.
이어 "예술활동증명 틀 안에 모든 것을 담으려 하면 처리에 문제가 생긴다. 제도 본래 목적에 충실해야 하고 지나치게 보편적인 용도로 활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AI 도입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AI 활용을 비롯한 기술 지원 체계를 시급히 보완해 심사 업무를 효율화하고 처리 속도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지난 3월 출범한 제도 개편 TF에는 분야별 현장 전문가 12인이 참여해 이달까지 운영된다.
예술활동증명은 예술가가 산재보험에 가입하고, 창작준비금을 신청하고, 고용보험 혜택을 받고, 지자체 지원 사업의 문을 두드리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출발점이다. 이 증명서가 없으면 아무리 오랜 활동 경력을 쌓아온 예술가라도 혜택을 못 받는다.
문화산업 전체로 보면 파장은 더 크다. 영화·공연·방송·출판 등 한국 문화콘텐츠 산업의 실질적 생산자는 대부분 프리랜서나 단기 계약 형태로 일하는 예술가들이다. 이들이 제때 활동증명을 받지 못하면 지원 사업 신청 기회를 통째로 놓친다.
예술활동증명은 예술가와 문화산업의 생명선이다. AI를 활용한 정량 심사 자동화로 처리 속도를 높이는 등 신속·정확·투명한 프로세스 구축이 시급하다.
fineview@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