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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혁 교수의 정치분석] ⑧미국 의회언어의 질과 민주주의의 향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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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루먼은 1947일 그리스·터키 원조를 요청했다
  • 의회는 원조 범위와 민주성, 군사한계를 따졌다
  • 1948일 마셜 플랜을 수정해 유럽 자립을 도왔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민주주의의 무기고에서 교육·문화·국방·과학기술 초강대국으로(1933–1992)

승전국에서 자유세계의 지도국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정치언어는 승리와 동원의 언어에서 경제재건, 공산주의 봉쇄, 집단안보의 언어로 이동했다. 유럽의 경제적 붕괴가 정치적 급진화와 공산주의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 아래 미국은 마셜 플랜을 추진했고, 1949년 북대서양조약기구를 창설했다.

1947년 3월 12일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의회 합동연설에서 그리스와 터키에 대한 원조를 요청하며 냉전을 두 정치적 생활양식의 대립으로 설명했다.

"At the present moment in world history nearly every nation must choose between alternative ways of life. The choice is too often not a free one. One way of life is based upon the will of the majority, and is distinguished by free institutions, representative government, free elections, guarantees of individual liberty, freedom of speech and religion, and freedom from political oppression."

"세계사의 현시점에서 거의 모든 국가는 서로 다른 생활양식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선택은 너무나 자주 자유로운 선택이 되지 못합니다. 한 가지 생활양식은 다수의 의사에 기초하며, 자유로운 제도와 대의정부, 자유선거, 개인의 자유에 대한 보장, 언론과 종교의 자유, 정치적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를 특징으로 합니다."

미국 해리 트루먼 대통령 [사진=위키미디어 공용]

트루먼은 이어 미국이 "무장한 소수집단이나 외부의 압력에 의한 예속 시도에 저항하는 자유로운 국민"을 지원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리스와 터키에 대한 개별 원조는 이 연설을 통해 자유로운 정치질서를 방어하는 일반적 원칙으로 확대되었다.

대통령이 새로운 냉전시대의 해법을 제시했다면, 의회는 그 원칙이 실제 국가정책으로 지속될 수 있는지를 검토하는 헌법적 심의기관의 역할을 맡았다.

트루먼은 자유로운 국민을 지원하는 것이 미국의 책임이라고 선언했지만, 의원들은 해외 원조의 규모와 기간, 행정부의 재량권, 원조를 받는 정부의 정치적 성격, 미국 납세자가 감당해야 할 부담을 구체적으로 따졌다. 대통령의 연설이 위기의 의미와 국가적 방향을 제시하는 언어였다면, 의회의 토론은 그 방향을 법률·예산·감독의 기준으로 전환하는 언어였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47년 5월 9일 하원의 그리스·터키 원조법안 심의였다. 이날 하원은 두 나라에 모두 4억 달러의 경제·군사 원조를 제공하고 미국의 민간·군사 고문단을 파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심의했다.

찬성 의원들은 영국이 더 이상 그리스와 터키를 지원할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미국마저 물러서면 동부 지중해 지역의 정치적 공백이 소련의 영향력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대 의원들은 미국이 개별 국가의 내전과 권위주의 정부를 지원하면서 세계의 모든 분쟁에 개입하는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법안은 이날 찬성 287표, 반대 107표로 하원을 통과했다.

이 토론에서 특히 중요한 쟁점은 원조의 범위와 군사개입의 한계였다. 월터 저드(Walter Judd) 의원은 미국이 그리스와 터키에 파견할 군사요원이 점령군이나 전투병으로 복무할 수 없다는 제한을 법문에 명시하자는 수정안을 제출했다.

이는 경제·군사 원조가 미군의 직접 참전으로 확대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시도였지만, 수정안은 70대 122로 부결되었다. 원조액을 4억 달러에서 2억 달러로 줄이자는 수정안과, 미국이 행동하기 전에 이 문제를 60일 동안 유엔에 맡기자는 수정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원은 원조를 받는 그리스 정부의 정치적 성격도 따졌다. 헬렌 개해건 더글러스(Helen Gahagan Douglas) 의원은 그리스 정부가 정치범을 사면하고 1년 안에 선거를 실시하도록 요구하는 수정안을 제안했다. 마이크 맨스필드(Mike Mansfield) 의원은 그리스의 조세제도를 재검토하도록 의무화하려 했다. 두 수정안은 채택되지 않았지만, 이 논의는 공산주의 봉쇄라는 명분이 수원국 정부의 인권침해와 경제적 불평등을 묵인하는 백지위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보여주었다.

미국 의회에서 '트루먼 독트린'을 선언하는 트루먼 대통령 [사진=위키미디어 공용]

두 번째 대표 사례는 1948년 3월 31일 하원의 유럽부흥계획, 곧 마셜 플랜 심의였다. 트루먼 행정부는 전쟁으로 파괴된 유럽의 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16개국에 장기적인 원조를 제공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하원 외교위원회는 행정부가 처음 제안한 약 68억 달러의 15개월 계획을 그대로 승인하지 않고, 원조 규모와 기간, 유럽 국가들의 자구노력, 행정부에 대한 의회 감독 조항을 수정했다. 최종 법안은 첫해 약 53억 달러를 승인하는 내용으로 조정되었으며, 하원은 3월 31일 이를 찬성 329표, 반대 74표로 가결했다.

이날의 핵심 의제는 유럽을 단순히 구호할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존립할 수 있는 경제공동체로 재건할 것인가였다. 찬성 의원들은 유럽의 공장과 농업, 통화와 무역체제가 회복되지 않으면 빈곤과 정치적 혼란이 공산주의의 확산을 촉진하고, 결국 미국의 수출시장과 안보에도 위협이 된다고 주장했다.

반대 의원들은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미국 납세자가 장기간 유럽의 부담을 떠맡는 것은 과도하며, 대규모 원조권한이 행정부와 새로운 대외원조 관료기구에 집중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의회가 확정한 법률의 목적조항에는 이러한 토론의 결과가 반영되었다. 유럽의 경제혼란은 국경 안에 머무는 문제가 아니며, 자유로운 제도와 진정한 독립은 건전한 경제조건 위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고 의회는 선언했다. 동시에 원조의 최종 목적을 영구적인 미국 의존이 아니라 유럽 국가들이 생산과 무역을 확대하고 재정안정을 회복해 특별한 외부지원 없이 자립하는 데 두었다.

이 두 차례의 하원 토론은 초기 냉전기 미국 의회의 역할을 잘 보여준다. 1947년 그리스·터키 원조안에서는 공산주의 팽창을 저지해야 한다는 전략적 필요와 대통령의 군사개입 권한, 수원국 정부의 민주성 사이의 긴장이 논의되었다. 1948년 마셜 플랜에서는 유럽의 재건을 미국의 안보와 경제에 연결하면서도, 원조가 자립을 촉진하는지, 비용과 행정권한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가 심의되었다.

이 과정에서 의회가 물은 것은 단순히 대통령의 정책에 찬성할 것인가 반대할 것인가에 그치지 않았다. 미국이 세계의 모든 분쟁을 책임져야 하는가, 경제 원조가 수원국의 자립을 촉진할 것인가 아니면 장기적인 의존을 낳을 것인가, 공산주의를 저지한다는 명분이 권위주의 정부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원으로 변질될 위험은 없는가를 구체적인 수정안과 예산, 보고의무와 감독조항으로 검토했다.

이는 초강대국의 힘도 공개토론과 권력분립, 도덕적 조건과 재정적 책임 아래 행사되어야 한다는 미국 민주주의의 방향을 보여주었다.

6·25 전쟁 관련 법안 및 문서에 서명하는 트루먼 대통령. [사진= Keystone-France / Gamma-Keystone via Getty Images]

한국전쟁과 냉전 질서의 고착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권의 무력팽창이 실제 전쟁으로 나타난 첫 사례였다. 트루먼 대통령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근거로 6월 27일 공군과 해군의 지원을 명령하고, 6월 30일에는 지상군 투입을 승인했다. 침공에서 지상군 투입까지 불과 닷새가 걸릴 만큼 결정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의회는 트루먼 대통령의 군사조치를 대체로 지지하였다. 1950년 6월 27일 하원 본회의(『Congressional Record』, vol. 96, pp. 9261–9305)에서는 북한의 남침을 유엔 집단안보체제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규정하며 대통령의 조치를 지지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동시에 대통령이 의회의 선전포고 없이 군사행동을 개시할 수 있는지에 대한 헌법적 논쟁은 비토 마르칸토니오(Vito Marcantonio) 의원의 문제 제기와 이후 상원의 로버트 태프트(Robert A. Taft)의 토론을 거치며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이날 오전 하원의장 샘 레이번(Sam Rayburn), 하원 다수당 원내대표 존 W. 매코맥(John W. McCormack), 하원 외교위원장 존 키(John Kee), 하원 군사위원장 칼 빈슨(Carl Vinson), 공화당 중진 찰스 이턴(Charles A. Eaton)과 듀이 쇼트(Dewey Short) 등 양당 지도자들을 백악관으로 불러 한국에서 취한 군사조치를 설명하였다. 존 키의 역할은 우선 이 행정부·의회 지도부 협의 과정에서 확인된다.

하원 다수 의원은 북한의 남침을 유엔 집단안보체제에 대한 첫 중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한국을 방어하지 않는다면 유엔의 권위가 약화되고, 공산주의 세력이 다른 지역에서도 무력을 이용해 국경과 정치질서를 변경하려 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대통령의 군사조치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뉴욕주의 미국노동당 소속 비토 마르칸토니오(Vito Marcantonio) 의원은 같은 날 하원 본회의에서 의회의 전쟁권을 문제 삼았다. 그의 발언은 『Congressional Record』 제96권 9268쪽에 기록되어 있다.

"When we agreed to the United Nations Charter, we never agreed to supplant our Constitution with the United Nations Charter."

"우리가 유엔헌장에 동의했을 때, 유엔헌장으로 미국 헌법을 대체하는 데 동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중공군 개입 이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는 트루먼 대통령 (1950년 12월 16일). [사진=Photo 12 / Universal Images Group via Getty Images]

마르칸토니오는 이어 전쟁을 결정할 권한이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에 있다는 취지로 주장하였다. 그의 핵심 문제 제기는 유엔의 결의나 대통령의 군 통수권이 헌법상 의회의 선전포고권을 대신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매우 소수의 반대였지만, 한국 방어의 필요성과 전쟁개시 절차의 합헌성은 서로 구분해 심의해야 한다는 점을 제기한 발언이었다.

따라서 한국전쟁 초기의 의회논쟁은 단순한 찬전과 반전의 대립이 아니었다. 다수 의원은 공산주의의 무력팽창을 저지하고 유엔의 집단안보체제를 지켜야 한다는 국제적 책임을 강조했고, 마르칸토니오를 비롯한 소수는 그러한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대통령이 의회의 명시적 승인 없이 전쟁을 시작하는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논쟁은 이후 베트남전쟁을 거쳐 1973년 「전쟁권결의」로 이어지는 미국 헌정사의 장기적 쟁점이 되었다.

전쟁이 장기화하고 중국군이 참전한 뒤 미국 의회의 논점은 침략 저지에서 확전 방지와 전후 질서의 설계로 이동했다. 의회는 대한민국을 방어하고 유엔의 권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중국 본토나 소련과의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제한전 원칙은 1951년 맥아더 해임 논쟁과 휴전 논의를 거치며 더욱 분명해졌다.

정전 이후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강력한 안보 보장 요구와 미국의 협상이 맞물리면서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었고, 미국 의회는 군사원조와 경제원조 예산을 지속적으로 승인하였다. 이는 전후 대한민국의 안보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한편, 사회기반시설 복구와 산업 재건, 교육 확대를 가능하게 하는 재정적 기반이 되었다.

한국의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은 한국 국민의 노력과 정부의 정책이 결정적 역할을 하였지만, 그 출발점에는 미국 의회의 지속적인 군사·경제 지원과 한미동맹이라는 국제적 안전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러한 정책은 대통령의 일방적 결정이 아니라 의회의 공개토론과 예산심사를 거쳐 제도화되었다. 특히 하원은 ▲1950년 6월 27일 북한의 침략과 유엔의 대응을 둘러싼 긴급토론(『Congressional Record』, House Proceedings, Vol. 96, 81st Congress), ▲1951년 맥아더 해임 이후 확전 여부와 문민통수를 둘러싼 합동청문회(Senate Committees on Armed Services and Foreign Relations Hearings, Military Situation in the Far East),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한국 원조 예산 심의를 통해 미국의 대한정책을 지속적인 국가정책으로 발전시켰다.

이러한 의회의 토론은 냉전기 미국이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지도국으로서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를 논의한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교 교수 [사진=뉴스핌 DB]

*필자 최연혁 교수는 =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달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kimsh@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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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업무보고 논란 [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청와대 영빈관에서 5일 열린 외교·안보 분야 정부 부처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한반도 평화공존 발전 구상'과 업무보고 발언이 논란을 빚고 있다. 이날 정 장관의 발언 중에는 정부 내 조율을 거치지 않은 사안을 정책으로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것이 있는가 하면 사실 관계에 맞지 않은 설명도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신중을 기해 달라고 경고했고, 조현 외교부 장관은 '이상주의적 희망에 근거한 비현실적 구상'이라는 비판을 내놨다. 그동안 정 장관의 대북 정책 관련 발언이 물의를 빚은 적은 여러 번 있지만 대통령과 유관 부처 장관이 공개적으로 부정적 입장을 표명한 것은 이례적이다. 정 장관의 무리한 대북 접근법과 월권을 제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부] 2026.07.23 ◆통일부 장관 권한 넘어선 주장 정 장관은 이날 업무보고에서 '한반도 평화공존 발전 구상'을 설명하면서 이재명 정부 2년차 핵심 과제로 상호 존중·평화적 갈등 해결·핵 없는 한반도 등 3대 기본 방향을 제시했다. 정 장관은 "대결과 혐오의 언어는 멈춰야 한다"면서 주적 용어 대체를 주장했다. 지난 25년간의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구도는 이미 무너졌다고도 했다. 또 "현 시점에서 흘러간 선(先)비핵화만 되뇌는 것은 현실을 바꾸는 데 힘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정 장관은 또 "정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바꾸는 논의에 착수하겠다"면서 "북·미 정상회담 견인과 함께 4자 대화의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정 장관의 구상에 대부분 제동을 걸었다. 이 대통령은 "평화공존 정책이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측면이 있다"며 "많이 조심하셔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한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에는 "표현에 꼬투리가 잡혀 정쟁으로 휘몰아 들어가면 원래 하고자 했던 데에서 오히려 나쁜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대통령은 남북 신뢰 구축을 위해 9·19 군사합의를 선제적으로 복원해야 한다는 정 장관의 주장에 대해서도 "우리의 선의대로 하는 게 과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플러스냐, 결론적으로 약간의 의문이 들 때도 있다"며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업무보고 사후 브리핑에서 정 장관이 언급한 '4자 회담'에 대해 "이상주의에 근거한 어떤 희망이라 하더라도 그건 아직 조율되지 않은 방법"이라며 "여러분들께서 디스카운트해 주시면 좋겠다"고 선을 그었다. 정 장관이 9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EEF)'을 언급하며 "정부 차원에서 (참석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언한 데 대해서도 조 장관은 "그것은 외교부의 몫"이라며 "아직 거기까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고 잘랐다. 정 장관이 이날 소개한 대북 구상과 설명은 정부 내 조율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특히 주적 표현 대체와 국호 사용, 9·19 군사합의 복원, 4자회담 추진 등은 통일부 장관이 결정할 사안이 아니어서 월권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은 정 장관의 업무보고를 듣고 난 뒤 "여기 업무보고에 발표했다고 승인난 건 아니다"라고 재차 확인했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정 장관의 발언 내용은 대부분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거쳐 결정된 사안이 아닌 정 장관의 개인적 생각에 가깝다"며 "안보 관련 부처 장관이 정부의 공식 정책이 아닌 사안을 추진하겠다고 업무보고를 하고 대통령의 면전에서 '국군통수권자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통일 외교 국방 등 외교 안보 부처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2026.08.05 ◆시대착오적 접근, 대북 인식 오류 더욱 문제인 것은 정 장관의 이같은 주장이 현 시점에서 이미 참고가 될 수 없는 과거의 경험 또는 사실과 다른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 장관이 주장하는 구상은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북한의 전략과 한반도 및 국제 정세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정 장관이 "흘러간 선(先)비핵화만 되뇌는 것은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고 언급한 것은 지금까지의 대북 접근법을 호도하고 있다. 북핵 위기 발발 이후 지금까지 모든 핵 협상에서 한국이나 미국은 북한에 선비핵화를 공식적으로 요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북핵 협상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한·미가 상응하는 대가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는 핵시설 동결과 중유 제공의 교환이었다. 2005년 9.19 공동성명도 북한의 비핵화 조치의 모든 단계에 상응조치를 제공하는 '행동 대 행동' 원칙이 적용됐다. 대북 협상에 관여했던 한 전직 관료는 "모든 북핵 협상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한·미가 제공하는 상응조치를 어떻게 정교하게 배열하느냐가 관건이었다"면서 "정 장관의 발언은 지금까지 한·미가 북한에 먼저 핵을 포기해야 대화할 수 있다는 정책을 고수해 현 상황에 이르게 됐다는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 장관이 "지난 25년간의 CVID 구도가 무너졌다"고 말한 것도 비핵화의 개념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북핵 문제에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어떤 명칭을 붙이든 핵을 제거한 뒤 이를 검증하고 재발 방지 조치를 하는 것은 비핵화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기본적 절차"라며 "CVID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검증도 하지 않고 언제든 되돌릴 수 있도록 합의하자는 말과 같다"고 지적했다. [서울=뉴스핌] 이길동 기자 = 조현 외교부 장관이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2026년 하반기 업무보고 사후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6.08.05 gdlee@newspim.com ◆안보 리스크 키우는 통일부 장관 정 장관은 지난해 취임 직후부터 청와대와 외교부를 제치고 통일부가 북한과 관련된 모든 정책을 주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면서 단독 질주를 거듭해왔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주장을 변형한 '평화적 두 국가'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에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를 무시했다. 외교부가 미국과 북한 문제를 논의하는 것에 대해 "한반도 정책과 남북관계는 주권의 영역이며 동맹국과 협의의 주체는 통일부"라고 주장해 물의를 빚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한·미 워킹그룹이 남북관계 파탄 원인이었다고 사실과 다른 주장을 폈다. 지난해 업무보고에서는 국제정세를 감안하지 않고 남북대화 재개에만 초점을 맞춘 비현실적 내용으로 논란을 빚었다. 정부 내 조율도 거치지 않고 독자 대북제재인 5·24 조치를 해제하고 9·19 군사합의 비행금지구역 복원을 추진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지난 4월에는 평안북도 구성시에 우라늄 농축 시설이 있다고 말해 파장을 일으켰다. 미국은 이 발언을 계기로 한국과 대북정보 공유를 제한했다. 이 조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장관이 이처럼 정부의 공식 결정을 거치지 않은 사안을 정부 정책인 것처럼 주장하며 좌충우돌하는 배경에 대해 여러가지 해석이 나온다. 북한 문제에서 조기에 성과를 거둬야 한다는 조급증과 자신의 존재감 과시 욕구가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일각에서는 정 장관이 2007년 민주당 대선후보였을 때 이재명 대통령이 캠프에서 비서실 부실장으로 활동한 전력이 있다는 것을 들어 "정 장관이 아직도 이 대통령을 아랫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내놓기도 한다. 한·미 관계와 북한 문제를 오래 다뤘던 전직 관료 출신의 한 전문가는 "정 장관 취임 후 지금까지의 언행은 잘못된 현실 인식에 따른 독단과 앞서 가기, 월권 등으로 점철돼 있다"면서 "통일부 장관이라는 중요한 직책에 있으면서 스스로 안보 리스크를 키우는 역할만 했다"고 비판했다. opento@newspim.com 2026-08-06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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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경상수지 최대 흑자 [서울=뉴스핌] 박가연 기자 = 지난 6월 우리나라의 경상수지가 전월에 이어 역대 최대 흑자를 기록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정보기술(IT) 품목 수출 호조로 월간 상품수출이 처음으로 1000억달러를 넘어선 영향이다. [자료=한국은행] 한국은행이 6일 발표한 '2026년 6월 국제수지(잠정)'에 따르면 지난 6월 경상수지는 497억3000만달러 흑자로 집계됐다. 전월(386억1000만달러)에 이어 두 달 연속 월간 기준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에 따라 올해 상반기 누적 경상수지 흑자는 1910억1000만달러를 기록했다. 경상수지 흑자를 견인한 것은 상품수지다. 6월 상품수지는 478억9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하며 전월에 이어 역대 최대를 다시 썼다. 국제수지 기준 상품수출은 1123억7000만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84.5% 증가하며 월간 기준 처음으로 1000억달러를 넘어섰다. 상품수입은 644억8000만달러로 38.6% 늘었다. 통관 기준으로는 반도체 수출이 전년 동월 대비 196.9% 급증했고 컴퓨터·주변기기(SSD)는 282.7% 증가했다. IT 품목 수출은 160.4% 늘었으며 비IT 품목도 ▲석유제품(47.5%) ▲화공품(18.6%) ▲철강제품(17.9%) ▲승용차(6.1%) 등을 중심으로 18.6% 증가했다. 통관 기준 수입은 ▲원자재(30.5%) ▲자본재(35.3%) ▲소비재(16.4%)가 모두 늘었다. 서비스수지는 12억9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해 전월(-10억9000만달러)보다 적자 폭이 확대됐다. 여행수지는 외국인 입국자 증가와 유류할증료 인상 등에 따른 출국자 감소로 4억4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했지만 지식재산권사용료수지는 전월 흑자에서 4억4000만달러 적자로 전환됐다. 본원소득수지는 배당소득을 중심으로 32억7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해 전월(21억7000만달러)보다 흑자 폭이 확대됐다. 배당소득수지는 배당수입이 늘어난 데다 전월 분기배당에 따른 기저효과로 배당지급이 줄면서 25억6000만달러 흑자를 나타냈다. 금융계정 순자산은 6월 중 467억1000만달러 증가해 월간 기준 역대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종전 최대였던 올해 3월(369억9000만달러)을 넘어선 것이다. 직접투자에서는 내국인의 해외투자가 80억1000만달러, 외국인의 국내투자가 46억3000만달러 각각 증가했다. 증권투자에서는 외국인의 국내 주식 매도세가 이어졌다. 외국인의 국내 주식 투자는 차익실현 매도 등의 영향으로 316억1000만달러 감소하며 전월(-310억5000만달러)에 이어 역대 최대 순매도 기록을 다시 경신했다. 외국인의 국내 채권투자는 세계국채지수(WGBI) 자금 유입에도 분기 말 만기도래 영향으로 증가 폭이 줄어든 52억9000만달러를 기록했다. 내국인의 해외 증권투자는 주식을 중심으로 35억6000만달러 증가했다. eoyn2@newspim.com 2026-08-0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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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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