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2월이다. 2007년을 맞으며 새로운 각오를 펼친 게 엊그제 같은데 다시금 아쉬움과 회한을 머금고 한 해를 보내게 되었다. 곳곳에 눈비소식과 함께 쌀쌀한 찬바람이 혼탁한 대선정국의 열기를 식혀주는 요즘이다. 이런 때일수록 따뜻하고 구수한 율무차 한 잔이 생각난다.
율무만큼 우리 사회에 많이 보급된 식품도 없을 것이다. 한때는 커피 자판기에서 커피보다 더 많이 나가던 차였으나, 최근에는 인기가 약간 시들해진 감도 있다. 거기에는 어디에선가 “율무를 많이 마시면 정력이 약해진다.”는 이상한 소문이 돌면서부터가 아닌가 한다. 그러고 보니 율무만큼 우리 사회에 잘못 알려진 식품도 없다.
율무는 한의학에서 ‘의이인(薏苡仁)’이란 한약재로 널리 이용되어 왔다. 중국 후한(後漢) 광무제 휘하에 마원(馬援)이라는 명장이 있었다. 그는 황제의 명을 받고 남방 베트남의 반란을 평정한 후에 전리품으로 현지인들의 전염병에 좋다고 하는 율무를 잔뜩 가져왔다고 한다. 그 모양이 진주와 서각(물소뿔)같아서 주위의 간신들이 마원이 진주와 서각을 가져다가 황제에게 바치지 않았다고 고자질하여 마침내 마원은 황제의 진노를 받아 유배를 당하게 되었고, 가족들의 탄원으로 마침내 오해를 풀게 되었는데, 이것이 율무가 중국에 전해진 유래라는 것이다.
남방지방의 전염병은 아마도 열대우림에 생긴 습기와 열기 때문에 생긴 병이었을 것이고, 율무는 일찍부터 이 지역에서 특효약으로 쓰여지고 있었던 것이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는 “오랫동안 복용하면 몸을 가볍게 하고 원기를 북돋운다”고 하고 있는데, 특히 몸에서 불필요한 수분과 습기를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니, 요즘처럼 영양과잉인 시대에 꼭 필요한 식품이 아닐 수 없다.
우선 몸에 습기운이 많아 뚱뚱하고 물살이 있는 태음인의 비만, 부종치료에 으뜸으로 꼽힌다. 게다가 사마귀, 여드름, 기미 등에도 좋은 효과를 보이므로 피부질환에도 널리 이용된다. 열을 내리고 농을 배출시키는 작용이 있어 폐농양, 맹장염에도 활용되고, 쌀에 비해 칼로리가 낮고 이뇨작용을 돕기 때문에 당뇨병 환자들의 치료에 사용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초등학교 여자 아이들의 초경을 늦추기 위해 율무차를 하루 한 잔 이상 마시는 것이 좋다는 전문가들도 있다.
서양의학적으로도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비타민E가 다량 함유되어 있고 곡물류 가운데 단백질 함량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영양보충이나 면역력 강화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율무는 우리 몸에 뭔가를 보태준다기보다는 몸에 있는 불필요한 노폐물를 배출하는데 효과가 있으므로, 물살이 많은 태음인 계통에는 좋은 식품이지만, 마른 체형의 사람에게는 그다지 권할 만한 식품은 아니라고 본다. 정력과 관련해서도 일률적으로 나쁜 것이 아니라, 비습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몸의 습기를 빼줌으로써 정력을 증강시킬 수 있고, 마른 사람의 경우는 정액을 말릴 수 있기에 해롭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임산부의 경우에도 태아에게까지 가는 물기운을 줄여버리기에 주의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율무차는 깨끗하게 씻어 말린 율무씨 1.5㎏을 살짝 볶아 분말로 만든 후 3스푼(약 45g)을 뜨거운 물에 타서 마신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율무차는 설탕함량이 많으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식사 전에 복용하면 식욕이 떨어지고 혈액도 맑아지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