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증시는 2002년 이래 최장기 하락 양상을 보였다. 이에 따라 올해들어 주가 상승분을 모두 반납했는데, 그 배경에는 연방준비제도의 제2차 양적완화(QE2) 종료, 경기의 일시적 혹은 구조적 둔화, 유로존 채무 위기, 신흥국 과열 및 긴축 부담에 따른 경기 약화 우려 등 다양한 요인들이 자리잡고 있다.
온라인 경제미디어 뉴스핌(www.newspim.com)은 연방준비제도의 '추가 양적완화(QE2)' 종료와 함께 이른바 '소프트패치(soft patch)' 국면이 겹쳐 발생하고 있는 현재 상황을 착종됨이 없도록 분해해서 이해하고, 나아가 미국 연준의 정책 변화 혹은 정책 한계국면이 하반기 글로벌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을 조망해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편집자 주>
[뉴스핌=김사헌 기자] 찬사와 비난이 교차했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연준)의 '이례적' 통화정책 수단인 국채매입 프로그램은 성공적이었나, 아니면 실패작인가?
또 매월 750억 달러(원화 81조 원)를 8개월간 쉬지 않고 국채시장에 투입했던 이번 정책의 추가적인 부양 효과가 종료될 경우 금융시장이나 경제에 미칠 영향은 어떠할까?
대단히 중요해 보이는 이들 질문에는, 그러나 아직 정확한 답이 없다.
단기적인 금융시장 변수로 보면 연준의 추가 양적완화 정책은 효과를 나타낸 것으로 판단되는데, 심지어 이 부분에서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 美 시중 금리 상승, 높은 실업률 지속. 정책 의도와는 별개?
지난해 11월 6000억 달러 규모의 채권매입 프로그램을 결의한 뒤 일시적으로 시중 금리가 하락하는 듯 했지만, 실제로 올해 2월까지 재무증권 수익률은 하락한 것이 아니라 경기 개선 양상 속에 상승했다.
물론 연방기금금리를 제로(0%) 수준으로 묶어둔 상태에서 연준이 국채를 대량 매입한 것은 이 안전자산의 수익률을 인위적으로 억누를 것이라고 밝힌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이에 따라 기관을 중심으로 한 투자자들은 위험자산을 매입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주식과 상품시장이 부양되었다.
금리가 오히려 상승한 가운데 연준 내부의 인플레 강경파들은 이미 제1차 양적완화, 즉 모기지담보부증권(MBS)를 1조 7000억 달러나 매입한 정책으로 충분히 경기와 자산시장이 부양된 상황에서 추가로 이를 확장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식량과 에너지 가격 상승이 소비자물가를 끌어올리면서 인플레이션이 다음 큰 우려 사안으로 부상할 조짐이 보였다.
하지만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10년물 재무증권 수익률이 2.4%에서 3.75%까지 뛴 것을 보면서 당초 자신이 제안했던 것과 전혀 반대의 이야기를 했다.
제2차 양적완화를 결의하기 직전에 버냉키 의장은 워싱턴포스트(WP)에 기고한 글에서 국채를 매입해서 수익률이 하락하면 모기지금리가 낮아질 것이고 이에 따라 주택 구입 여건이 개선될 것이며, 또한 회사채 수익률도 떨어져서 투자를 촉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가가 부양되면 소비도 살아날 것이라는 덤도 붙였다.
하지만 당시 미국 주택시장의 문제는 주택구입 여건에 있지 않았고, 기업 투자가 부진한 것도 기업의 현금 부족 때문이 아니었다.
미국 주택투자는 6년째 감소 중이었고, 기업들은 2조 달러의 현금 유동성을 깔아뭉개는 중이었다. 은행들도 연준의 지준으로 1조 5000억 달러를 비축해 둔 상태였다. 또 미국 소비자들은 이미 10년 간 빌려 더 탕진한 습관을 교정하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버냉키 의장의 당시 주장이 근거가 있는 것인지 따지기는 힘들다. 다만 실제로 금리가 상승하자 버냉키 의장은 나중에 연준이 국채 매입에 나서지 않았더라면 금리가 훨씬 더 높게 뛰었을 것이라고 변명해야 했다.
그러나 중앙은행의 이중 목표 중 한 축인 고용 회복의 경우 그 성공 여부는 아직 미지수이며, 실제로는 성과가 없었을 것이란 평가가 우세하다.
정책 도입 당시 경제 전문가들은 QE2 도입 필요성의 근거를 낮은 물가 수준보다는 지나치게 높은 실업률과 고용 부진 문제로 인해 물가 하락 압력이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에 따라 QE2 규모가 최소 1조 달러는 넘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러나 버냉키 의장은 분석 결과 실업률을 크게 끌어내리지 못하는 수준까지 규모를 최소화하고, 금융시장과 경제주체의 반응을 살피기로 한다.
또한 국채매입을 10년물을 중심으로 하지 않고 중기물을 택함으로써 수익률곡선의 기울기를 조절했다. 10년물 금리가 상승했으나, 이는 마치 경제 주체의 경기 회복 기대를 반영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 위험자산 부양과 질서정연한 달러 약세 '성과'
물론 추가 양적완화는 즉각적인 효과를 보인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단기적인 금융시장 변수와 거시변수는 구분해야 한다.
QE2 실행 이후 위험한 회사채와 무위험 재무증권 수익률 격차가 줄어들었고, 주가는 랠리를 거듭했으며 상품시장이 뛰어올랐다. 달러화 가치는 질서정연한 약세를 이어갔다. 특히 달러화 가치는 유로존 채무 위기가 다시 불거지는 상황에서도 급반등하지 않았다.
이 가운데 미국 경제는 견고하게 자력으로 탄탄하고 지속가능한 회복 궤도에 올라서는 것이 기정사실처럼 보였다. 버냉키 의장이 염려했던 디플레이션 위협은 사라지고 물가는 상승 궤도에 들어섰다.
다만 현재까지 이론가들에 따르면, 통화정책 변화가 물가나 고용고 같은 거시변수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시간 차 '타임래그(Time Lag)'는 약 9~12개월에 이른다.
따라서 제2차 양적완화는 경제의 전개과정과 관계가 없었으며 그 보다 앞선 재정 및 통화 부양정책의 노력의 결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QE2가 미국 경제 회복 궤도에 미친 영향 혹은 성과는 나타나려면 멀었는데도 다수 경제전문가들은 QE2가 경기와 물가에. 특히 '물가 전망' 혹은 '기대인플레이션'에 미친 영향이 가장 크다고 평가한다.
'더블딥(Double Dip, 이중 경기침체)' 위험에 직면한 미국 경제를 구했다는 자체 평가도 있기는 하다. 실제로 연준은 위험 자산시장 지원은 물론 달러화 약세를 통한 제조업 및 순수출 경기 부양을 통해 미국 경제를 침체 위험은 물론 디플레이션 위협에서 벗어나도록 하는데 성공했다.
한편 국채 수익률을 적절히 억제하면서 버냉키 의장을 비롯한 당국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달러화 가치의 안정화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를 앞두고 브라질과 중국 등 신흥국으로부터 "사실상 달러화 약세 정책" 아니냐는 직접 비판 공세에 시달리면서도 버냉키 의장이 고수했던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또 최근에는 통화정책이 아닌 재정 건전화의 시급성에 대해 강조하는 것도 바로 달러화 가치의 안정을 위협하는 요인에 대해 주목한 것으로 판단된다.
금융 위기가 발생했을 때 역설적으로 안전통화인 달러화 수요가 급격히 증가함으로써 연준은 외생적인 '통화여건 긴축' 상황에 직면했다.
해외 주요국 중앙은행과 '스왑' 약정을 통해 위기를 관리할 때 연준은 '중앙은행의 중앙은행, 전 세계 최종대부자'의 위상을 드러내기도 했다.
결국 연준의 유동성 공급은 외생변수에 따른 통화긴축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지만, 이로 인해 달러화 가치가 손상받지 않도록 조율할 필요가 있었다. 신흥국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미국 당국으로서는 '질서정연한' 달러화 약세를 추구하는 것이 이상적인 선택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연준도 이런 과정에서 내외 부작용에 직면했다. 전 세계 유동성 확대와 달러화 약세에 따른 상품 가격의 상승과 신흥국으로의 과도한 자금 유입 및 위험자산 거품 발생이 그것이다.
▶글로벌 투자시대의 프리미엄 마켓정보 “뉴스핌 골드 클럽”
[뉴스핌 Newspim] 김사헌 기자 (herra7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