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한기진 기자] “음악이 연주되는 한, 춤을 계속 춘다. 우리는 지금도 춤 추는 중이다.” 씨티그룹 찰스 프린스 회장은 2007년 7월 9일 파이낸셜 타임즈와 인터뷰에서 유동성 팽창을 음악에 비유했다. 저금리로 넘쳐나는 돈을 갖고 사모펀드가 벌이는 바이아웃 축제를 즐기자고 한 뜻이다. 나중에 미국 하원의 금융위기조사위원회(FCIC)가 발간한 금융위기조사보고서(the financial crisis inquiry report, 2011년 2월)에서 그는 이 말에 대해 다시 설명했는데 “사모펀드들은 힘든 흥정을 잘 했고 큰 건을 가져오면 할 수 밖에 없었다. 은행들은 차입 비즈니스를 멈출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그때는 정말 그랬다. 한 예로 금융위기 폭발 직전인 2007년 4월 2일 사모펀드 KKR이 신용카드 등 전산데이타 처리업체인 퍼스트 데이타 코포레이션(First Data corporation)을 290억 달러에 인수하겠다며 발표, 문을 두드리자 은행들은 환영했다. 인수 목적의 정크본드(투기등급 회사채)가 80억 달러 규모로 발행된 위험이 있는 투자였다. 그런 투자에 씨티는 물론 HSBC, 메를린치, 리만 브라더스, 도이치뱅크가 150억 달러를 레버리지 론(leveraged loan)으로 투자했다. 빌려준 자금을 대출채권화해 판매했다. 이들 금융회사중 일부는 금융위기로 문을 닫았거나 직전까지 갔다.
사모펀드의 연주에 은행이 춤을 춘 결과다. 이런 금융위기 당시 미국 금융시장의 풍경 하나가 한국에서는 더 우려되는 모습으로 나타나려 한다. 자산 300조원 짜리 국내 최대 금융기관인 우리금융그룹을 사모펀드가 인수할 수 있게 됐고, 최소한의 연주를 할 필요도 없게 됐다.
아무리 대주주의 전횡을 은행법에서 통제한다고 해도, 주인의 전횡을 모두 막기는 어렵다. 사모펀드 론스타가 금융당국이 외환은행장 면전에서 “고배당을 자제하라”고 했음에도,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 게 한달 밖에 안된 일이다.
더군다나 우리금융은 모든 투자 자본이 갈망하지만 얻기 어려운 대부분의 기업 정보를 갖고 있다. 대기업 상위 37개 중 15개의 주채권 은행이 우리금융의 자회사 우리은행이다. 은행이 그런 정보를 갖게 된 것은 수많은 예금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은행의 모(母) 회사인 지주사도 금융지주회사법에 규정된 범위 내에서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정보가 사모펀드에 넘어갈 수 있다.
사모펀드의 은행 인수 길을 열어 준 금융당국은 우리금융을 놓고 위대한(?) 도전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 세계적으로 사모펀드의 은행 인수에서 가장 큰 규모는 서버러스 파트너스가 일본의 아오조라 은행(자산 한화 57조원)과 론스타가 독일의 지방은행인 IKB(자산 한화 50조원)를 인수한 것이다. 우리금융과는 비교조차 안될 정도로 작다. 이런 인수와 경영조차 해본 적 없는 우리 사모펀드 보고 인수합병(M&A) 역사에 한 획을 그어보라 한다.
사모펀드가 인수하면 5~10년 뒤에 우리금융은 다시 M&A 매물로 나온다. 그 전에 우리은행, 우리투자증권 등 핵심 계열사들은 잘게 쪼개져 다른 주인의 품에 있을 수 있다. 지금보다 더 공격적인 투자로 위험에 노출될 우려도 있다. 대신 그 주인인 사모펀드는 유무형의 이익을 챙기게 된다. 은행이 불안하면 금융산업이 흔들리고 곧이어 경제 전체가 어려워진다. 우리는 이미 미국의 금융위기에서 그 현장을 목격했다.
금융당국은 우리금융 입찰제안서에서 ‘사모펀드는 안 된다’고 못박지 않았다. 유효경쟁을 고려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소극적으로 가면 안 된다. 다음 기회도 있다. 국내 최대 금융그룹을 갖고 실험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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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한기진 기자 (hkj7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