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한나라당 주도로 국가재정법 추경요건 강화
[뉴스핌=곽도흔 기자]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예비 경선에 들어간 가운데 정부를 향해 추가경정예산(이하 추경)을 편성해야 한다고 압박을 가하고 있다.
현재 여당인 새누리당은 이한구 원내대표가 지난 6일 공식적으로 정부에 추경 편성을 요구했고, 야당인 민주통합당도 경기활성화를 위해 추경 편성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정부는 추경을 편성하기 위해서는 국가재정법상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며 거부의 입장을 재차 밝히면서 당정간, 또 정치권과 정부간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정부가 정치권의 추가경정예산(이하 추경) 요구에 사실상 거부의사를 밝힌 것은 국가의 빚이 늘어난다는 문제점도 있지만 아예 국가재정법상 요건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9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추경 편성 요건을 명시하고 있는 국가재정법 제89조에는 ‘전쟁이나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한 경우, 경기침체, 대량실업, 남북관계의 변화, 경제협력과 같은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법령에 따라 국가가 지급해야 하는 지출이 발생하거나 증가하는 경우’로 추경 요건을 제한하고 있다.
국가재정법은 지난 2006년 10월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주도해 국가 예산 낭비를 막는다는 이유로 국가재정법을 개정하면서 추경 요건을 엄격하게 강화,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06년 이전 국가재정법에는 위와 같은 추경요건에 '~등'이라는 한 글자가 더 붙어 있었다. 정부나 여당은 국가재정법상의 이 '~등'의 조항을 근거로 갖가지 이유를 붙여 정부 맘대로 재량껏 추경을 편성, 비판이 일어나곤 했다.
재정부 고위관계자는 “이전의 국가재정법상 추경요건에는 법률조항 문구의 마지막에 ‘등’자가 있었다"며 "이 때문에 어떤 이유라도 ‘등’에 넣을 수 있으면 추경을 정부가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국가재정법 추경 요건에 ‘등’자가 빠진 배경도 흥미롭다.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이 국회의석 과반을 차지하자 당시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사사건건 반대하는 상황에서, 어떤 식이라도 추경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한나라당이 ‘꼼수’를 부렸다는 것이다.
당시야 어떻든 현재 집권 여당의 입장에서 보면, 결과적으로 자신들이 정부의 자유로운 추경을 막기 위해 개정한 법이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자신들의 발목을 잡는 자충수가 되고 있다.
법적 근거를 가지고 추경이 어렵다는 정부한테 오히려 권력을 가졌다고 정부을 압박하면서 억지를 부리거나 무조건 만들어 보라고 생떼를 쓰는 듯 어리꽝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어 볼썽 사나울 지경이다.
특히 새누리당의 이한구 원내대표는 과거 한나라당 시절부터 국가 재정에 대한 강성론자로서 정부 부채 증가에 대해 누구보다도 날선 비판을 했고 국가재정법 개정을 주도한 인물이기도 하다.
민주당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나라당이 주도하긴 했지만 국가재정법상 엄격해진 추경 요건을 뻔히 알면서도 정부보고 법을 위한하거나 편법을 쓰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전격적으로 추경을 요구했지만 재정부 박재완 장관이 사실상 거부의 뜻을 밝힌 이후 다소 조용해진 모습이다.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는 지난 6일 경기부양을 위한 추경 편성을 정부에 공식 요청했다. 이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부동산 시장 정상화를 비롯해 신용불량자 예방, 재정지출, 금융규제 완화 등 규제 방안을 총동원해야 한다”며 “추경 편성 가능성도 적극 검토해줄 것을 정부에 요청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재정부 박재완 장관은 지난 7일 경기도 하남 만남의 광장에 있는 고속도로 알뜰주유소 100호점 출점 행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상황이 국가재정법상 추경 요건에 해당하느냐"며 재차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박 장관은 “국가재정법은 추경 편성의 조건을 경기침체, 대량실업, 남북관계의 변화, 경제협력과 같은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로 제한하고 있다”고 새삼 강조했다.
박재완 장관의 발언의 톤은 법적 근거를 든 것으로 객관적이어서 완화된 모양새지만, 도대체 정치인들이 알고 얘기하고 있느냐, 또 알면서도 그렇게 얘기하느냐고 하는, 법을 지키자고 하는 뼈있는 항변인 셈이다.
[뉴스핌 Newspim] 곽도흔 기자 (sogood@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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