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강혁 기자] "IMF위기와 금융위기를 통해서 충분한 학습효과가 있는 겁니다. 단기적인 난관을 극복하기보다는 멀리보고 체질 자체를 바꿔가는 과정이라고 봐야겠죠. 삼성과 애플의 특허소송도 결과적으로 체질 개선을 가속화 시킬 것으로 봅니다."
최근 만난 10대 그룹의 한 고위 관계자는 "경영에서 위기 상황이라는 것은 곧 변화를 위한 가장 좋은 기회가 온 것 아니겠냐. 각 기업들이 지속성장을 위해 사업을 다각화하고, 핵심역량 중심의 재편작업을 꾸준히 진행 중인 것은 이런 측면"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재계 주요 그룹들이 줄줄이 컨티전시플랜(비상계획)을 가동하고 있다.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대응 성격이다. 이런 측면에서 재계 여러 기업들은 각종 사업을 펼치고 쪼개고 합치면서 사업군 재편작업을 진행 중이다. 위기에 강한 체질 만들기에 나선 것이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현재 기업들의 위기체감 수준은 최악의 시나리오와 맞닿아 있다. 단적으로 최근 전경련의 '주요 그룹 위기 체감도 조사' 결과, 삼성·현대차 등 25개 그룹 모두가 현재의 위기가 2008년 글로벌 위기 때보다 더 심각하거나 비슷하다고 답했다. 더 심각하다는 응답은 무려 64%에 달한다.
더 큰 우려는 현재의 위기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유럽의 위기가 미국이나 중국, 신흥시장 전반의 성장 둔화와 불황을 가져오고 있고 그 파급은 이미 국내에까지 몰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들에게는 경영 불확실성이 대내외적으로 숨통을 조이는 셈이다.
주요 그룹 대부분은 이런 맥락에서 위기에 강한 체질 강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운영 중인 위기체제가 유럽시장 등의 맞춤형 접근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크게 반영되고 있어서다.
삼성이 삼성전자의 수익사업 재편을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진행해오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삼성전자는 단적으로 삼성LED 합병, LCD 분사 등을 통해서 선택과 집중의 포석을 깔아둔 상태다. 강도 높은 사업구조조정을 통해서 철저하게 수익성을 갖추고 사업 경쟁력을 늘려가려는 의지가 읽힌다.
이런 분위기는 국내 기업 경영에서는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는 모양새다. 최근만 하더라도 CJ그룹, 웅진그룹, 동양그룹 등이 한곳에 집중하던 역량을 다분화하거나 신성장원 확보를 위한 사업재편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예컨대, CJ그룹의 경우 주력인 식품군의 비중은 낮추고 비(非)식품군의 비중을 늘렸다. 물론 원자재 수입가격의 변동과 내수 침체의 영향이 식품업의 비중 하락에 한 원인이기는 하지만 비식품군의 비중 확대는 그룹의 체질 변화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진다.
CJ그룹은 현재, 식품, 생명공학, 엔터테인먼트, 신유통 등 4대 사업군 형태로 사업다각화를 진행 중이다. 올 상반기에는 비식품군의 실적이 전체의 61.3%를 차지해 식품군 실적 37.1%를 24.2%p나 앞질렀다. 비식품군 실적이 60%대를 넘어선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특히 신유통군이 CJ의 전통적 사업 영역인 식품&식품서비스사업군의 실적을 넘어선 것은 CJ가 물류사업에 첫 진출한 1998년 이후 14년만의 변화다. 그룹 관계자는 "사업다각화를 통해 식품기업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온 결과"라고 설명했다.
웅진그룹 역시 태양광을 통한 에너지기업의 전환을 모색 중이고, 동양그룹도 화력발전소 중심의 역량 강화에 나선 상태다. 또 한화그룹도 사업다각화 차원에서 태양광 사업을 미래 성장원으로 삼고 총수가 직접 발로 뛰며 그룹의 체질을 바꾸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두산이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주력사업을 과감하게 버리는 변화를 통해 사업 체질 개선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좋은 선례를 남겼다"면서 "그룹의 근간이되는 전통적인 사업이라고 해도 거둘 때와 버릴 때를 잘 판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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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