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진국 '일본형 불황' 공포에 쌓여
뉴스핌은 KDB대우증권 리서치센터가 최근 발간한 '한국, 일본형 장기복합불황으로 가나' 보고서를 토대로 일본이 불황에 빠져든 과정과 정책적 대응,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등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뉴스핌=문형민 기자] 1980년대말 일본의 버블은 심해도 너무 심했다. 일본의 주식시장은 80년대 들어 492%나 급등하며, 니케이지수의 주가수익비율(PER)이 50배에 육박했다. 부동산시장도 같은 기간 355% 상승했다.
특히 1986년부터 1989년까지 토지와 주식가격 시가총액 증가액은 명목GDP를 넘어서기도했다. 버블이 붕괴되기 직전인 1989년 한 해에 토지가격은 321.6조엔, 주식가격은 194.8조엔 각각 증가해 총 516.4조엔 늘었다. 그 해 명목GDP는 410.1조엔에 그쳤다.
'가격이 오르니 사고 사들이니 또 값이 오르는 식'의 반복이었다. 부동산으로 번 돈은 주식시장으로, 주식으로 번 돈은 다시 부동산으로 향하면서 버블은 맹렬히 커져갔다.
KDB대우증권은 일본의 장기복합불황의 원인 중 하나로 과도한 버블 규모를 꼽았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것처럼 과도한 버블은 붕괴 후 후유증도 컸다.
◆ 과도한 버블 규모와 대차대조표 불황
두번째 이유는 대차대조표 불황이다. 가계와 기업의 빚(부채)은 늘어나는 반면 자산의 가치는 하락하는 현상이 대차대조표 불황이다. 여기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자산가격이 오르거나, 빚을 줄여야한다. 자산가격이 오르지 않으니 결국 빚을 줄이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고, 이 과정에서 총수요의 급감과 경기침체가 깊어졌다.
일본 정부는 버블 붕괴 이후 12번에 걸쳐 재할인율을 제로 수준까지 인하했다. 하지만 기업과 가계는 돈을 쓰지 않고 부채 상환에 주력했다. 기업들의 목적이 이윤 극대화에서 부채 최소화로 변했던 것이다.
◆ 정부의 오판과 잇따른 헛발질
세 번째는 정책의 실패다. 1985년 엔화 강세를 용인한 플라자 합의, 내수부양 목적의 저금리, 버블 후반기 대출총량 규제와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버블 붕괴의 발단 제공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1997년 소비세 인상 등도 정부의 실책으로 지적됐다.
일본 정부는 플라자합의 이후 엔화가치가 달러당 250엔 내외에서 120엔대로 급상승하자 정책금리를 급격히 인하했다. 일본은행은 영구히 금리를 인상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자 은행과 부동산 업자가 결탁해 토지에 대한 투자를 늘렸고, 지가 급등으로 이어졌다.
동시에 나카소네 총리는 소위 민활(民活) 노선으로 내수확대 정책을 폈다. 민간 활력을 활용한 개발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국유지를 불하한 것. 이로 인해 주가가 급등하고, 토지 수요가 높아지며 거품이 형성됐다.
이승우 대우증권 연구원은 “일본 정부가 버블 붕괴 직후 상황을 '순환적인 경기 조정'으로 보는 판단 오류를 범했다”고 꼬집었다.
버블 붕괴로 인한 자산가치 하락분이 1500조엔에 이르렀지만 일본 정부가 경기종합대책으로 사용한 자금은 은행구제금융자금을 포함해 200조엔에 불과했다. 잘못된 판단이 소극적 정책대응으로 이어진 셈이다.
1997년 하시모토 내각이 단행한 소비세 인상(3%→5%), 특별감세 폐지, 의료비 부담 인상 등 재정건전화 계획도 일본 경제에 결정적인 타격을 줬다. 1996년 일본 경제는 버블 붕괴 이후 가장 높은 성장률인 2.63%를 달성했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정부는 일종의 출구전략을 사용했지만 오판이었다. 이 계획은 그해말 경기부양책과 특별감세로 뒤집어졌으나 이미 늦었다.
이같은 정책 실패는 버블 붕괴 후 총리가 15번이나 교체되는 등 강력한 리더십이 없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5년을 재임한 고이즈미를 제외할 경우 총리의 평균 재임기간은 1년을 밑돈다. 단기간의 정권교체 반복은 정책 결정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없게 했다.
◆ 기업은 몰락하고, 사람은 늙어가고
네번째 이유는 기업의 몰락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일본 기업들은 소니 도요타 혼다 마쓰시다 NEC 히타치 등을 앞세워 버블 붕괴 후 1993~1995년 3년 연속 30조엔 이상의 영업이익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장기간의 경기침체와 엔고의 여파를 견디지 못했다. 부동산시장 침체로 건설업종은 궤멸 수준이었고, 철강업종도 2000년대 초반까지 혹독한 어려움을 겪었다. 자동차 정도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버블 붕괴 후유증을 앓고 있다.
일본 재무성 통계에 따르면 금융업을 제외한 일본 기업의 연평균 매출은 60년대 16.7%, 70년대 14.4%, 80년대 5.7% 등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버블이 붕괴된 후 90년대 0%로 정체되고, 2000년대에는 -0.3%를 기록했다.
마지막으로 고령화다. 세계에서 가장 늙은 국가인 일본은 이미 2006년 65세 인구가 전체의 20% 이상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앞서 1990년 일본의 생산가능인구는 정점을 찍었다.
고령화가 부동산 수요을 감소시켜 버블 붕괴에 영향을 줬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노동생산성 하락시키고, 저축과 투자도 위축시켰다. 또 각종 사회보장비용의 증가는 재정수지를 악화시키는 영향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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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문형민 기자 (hyung13@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