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윤경 국제전문기자] 지난 16일 우리 정부가 2009년 슈퍼추경 이후 큰 규모인 17조3000억원의 추가경정예산안을 짰다. 정부는 여기에 국회 동의없이 쓸 수 있는 기금으로 2조원을 더 풀기로 했다. 앞서 공기업 투자 1조원을 늘린 것까지 하면 20조원을 넘기는 돈이 경기부양에 들어가는 것이다. 세출을 늘리는 추경만 보면 5조3000억원이라고 하지만 이 역시 큰 돈이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이를 통해 3%의 성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 돈의 대부분을 나라의 마이너스 통장(적자국채 발행)을 통해 마련하는 것이지만 지금은 그런 마중물(박근혜 대통령이 쓴 표현이다)을 넣어 우물에서 물을 뿜어 올릴 때란 것. 단기적인 재정건전성 악화는 중장기적인 성장률 정상화를 통해 풀 수 있는 문제라는 입장인 게다. 이렇게 마중물(추경)을 넣어 경기가 활력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 싶다.
그러나 전 세계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비틀거리다가 유럽 재정위기로 한 방 더 크게 얻어맞은 이후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펴는 것만이 최선이 아니며, 그렇게 할 수도 없는 나라(그리스 등 재정위기국)들도 많다는 점 때문에 위기 해소의 방법론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한 상황이다.
'울트라 케인지언(Ultra-Keynesian)'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여전히 재정확대가 최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작년에 낸 저서 <지금 이 불황을 끝내라!(End this depression now!)>까지 때마침 국내에 번역됐다.
크루그먼 교수의 글이나 말은 재정지출 확대가 위기의 유일한 해법이라는데 모아진다. 미국이나 유럽이나 나라빚은 지금 더 늘어도 괜찮다는 의견이다. 지금 재정지출을 늘려 경기에 펌프질을 하지 않으면 다 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재정건전화 시킨다고 긴축을 한다면 오히려 총수요가 줄어 경제가 위축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재정지출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면 누진적 조세 구조를 갖고 있는 국가일수록 재정수입이 늘어나 재정적자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라며 고개가 갸웃거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진작부터 이런 크루그먼에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반대 의견으로 팽팽히 맞서 왔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좌)와 카르멘 라인하트 하버드대 교수(우)(출처=파이낸셜타임스) |
로고프 교수는 하버드대 동료 교수인 카르멘 라인하트와 짝을 이루고 있다. 이 둘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중이 어느 정도를 넘으면 경제성장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주장을 해왔다. 둘이 2010년 쓴 논문에선 국가부채(Public debt)가 GDP의 90%를 넘으면 평균 성장률을 0.1%포인트 떨어뜨린다고 수치까지 제시했다.
그런데 이 로고프-라인하트 교수의 주장에 반박이 이어지고 있다. 계속된 구체적인 공격에 로고프, 라인하트 두 교수는 16일 반박에 나서기에 이르렀다. 자세한 내용까지 전하면 오히려 두 교수의 주장이 군색해 보이긴 한다. 로고프-라인하트 교수의 주장은 선택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데이터만을 골라서 연구했기 때문에 코딩 에러(coding error)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 "엑셀 파일시트 상에서 일부 국가를 빠뜨리는 실수는 있었지만 수년간의 데이터를 빼먹었다는 지적은 맞지 않다"고 항변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7일 이를 자세히 보도하면서 두 교수의 논문이 제한된 데이터에 의존했던 건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그렇다고 해서 로고프-라인하트 교수의 주장이 유효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데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경우를 보더라도 지탱하기 불가능한 수준의 부채를 안고 있어 중기적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봤다. 높은 수준의 부채는 분명 복지 등 공공부문에 대한 재정지출을 줄이도록 할 수밖에 없고 이는 사회적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했다.
이렇게 길게 설명한 것은 이러한 논란이 학계나 미국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폴 라이언 상원의원이 로고프-라인하트 교수의 주장을 들어 재정지출을 늘리고 있는 오바마 정부에 맹공을 날리며 재정긴축을 주장하고 있다. 이를 크루그먼과 정부는 반박하는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막대한 추경 규모가 과연 적절하냐를 놓고 정치권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어제 추경 규모와 자금조달 방법을 논의하기 위한 여·야·정 협의체가 발족됐다. 그러나 미국은 민주-공화 양측이 최소한 일관성이라도 갖추고 있지만 우리는 전혀 다르다.
대선 땐 지금보다 훨씬 많은 규모의 추경을 얘기했던 민주당이 "이렇게 국채발행해서 막대한 추경을 하면 안된다"고 하고 있고, 당시 균형재정을 강조했던 새누리당은 이제와서 빨리 추경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상황따라 180도 바뀔 수가 있나. 경제에 대해 생각은 하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다. 무조건 상대방을 무너뜨리기 위한 말바꾸기와 억지로 소모전을 하고 있으니 코미디가 따로 없다.
추경의 효과는 누구도 지금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규모나 재원조달 방식 갖고 손바닥 뒤집듯 정치적 논쟁만 하고 있을 땐 아니란 판단은 든다. 재정정책을 쓸 수 없을 때까지 늦어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자국 경제에 대해 종종 쓴소리도 서슴지 않는 '미스터 엔(Mr. Yen)'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전 대장성 재무관도 어제 뉴스핌 창간 10주년 제2회 서울이코노믹포럼에 참석, '정치용' '내수용'이란 비판을 받고 있는 '아베노믹스'에 대해 "지금은 기동적인 금융완화와 공격적인 재정확장 정책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살릴 수 있을 때 해야 인공호흡도 존재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다만 일본처럼 무조건적인 정책조화까지 이뤄야 한다는 데엔 반대 의견이다. 인플레이션 우려까지 접어가며 중앙은행이 재정정책의 큰 메커니즘에 종속될 만큼의 상황은 아니란 판단이기 때문이다. 금리인하를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여기는 시장도 인식의 변화를 할 필요가 있다. 인플레이션도 인플레이션이지만 국가빚은 걱정하면서 가계빚은 외면할 것인가. 금리도 내려야 한다고 외치는 건 우리 경제의 큰 뇌관에 대해선 애써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뉴스핌 Newspim] 김윤경 국제전문기자 (s91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