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강혁 기자] 동중정(動中靜). 요즘 한화그룹의 상황을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말이다.
한화는 태양광 사업, 이라크 신도시 건설, ING생명 인수 등 그룹 내 굵직한 현안을 큰 탈 없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시야를 멀리 가져가면 얘기는 달라진다.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갖고 장기적인 경영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승연 회장의 경영공백으로 눈앞의 생존을 위한 노력만 있을 뿐 장기적인 비전을 가진 혁신은 찾아보기 어려운 셈이다.
◆비상경영위원회 가동..하반기 사업은 '이상無'
한화는 현재 각종 사업을 차질없이 진행하는 데 경영의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 김 회장의 장기 부재에 따른 경영공백을 막고 글로벌 경기악화로 인한 경제위기 극복에 나서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지난 4월말에는 그룹 비상경영위원회를 출범했다.
비상경영위원회는 김연배 한화투자증권 부회장이 위원장을 맡고, 홍기준 한화케미칼 부회장, 홍원기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사장, 최금암 한화그룹 경영기획실장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공동의사결정 체제다.
비상경영위원회의 첫 작품은 바로 임원 승진 인사였다. 몇 달 째 미뤄온 인사를 단행한 것이다. 현직 대표이사 중 7명의 직급을 승진시키며 대표이사의 책임, 권한을 강화했다.
대표이사가 차세대 신성장 동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글로벌 시장 개척을 강화하는 등 적극적으로 경영활동에 임하라는 의미가 담겼다.
김 비상경영위원장이 이후 향한 곳은 이라크다. 위원회 출범 20일만이다. 수주한 지 1년을 맞은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현장을 방문해 공사 진행 상황을 보고받고 현장 인력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독려하기 위해서였다.
이곳은 한국의 해외건설 역사상 최대규모를 자랑하기도 하지만, 김 회장이 가장 애정을 갖고 진행했던 사업 중 하나이기도 했다. 김 회장은 전쟁터와 다름없는 위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수 차례 이라크 현장을 방문하며 수주를 진두지휘한 바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 5월 6일 오송의 바이오 단지를 방문해 그룹의 신성장동력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바이오 분야의 임직원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최근, 한화케미칼은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 HD203을 개발해 임상 3상 실험까지 완료한 상태다. 최종 판매에 대한 허가를 신청해 놓고 있다.
글로벌 태양광 업계의 극심한 불황 속에서 일본시장 공략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달 중 일본 오사카(大阪)에 제2영업소를 설립하고 태양전지판 핵심부품인 셀과 모듈의 판매망 확보에 들어가기로 했다.
한화생명은 ING생명 한국 법인 인수로 확고한 생명보험업계 2위 자리를 차지하며 빅2 체제를 굳히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현재 77조원의 자산을 가진 한화생명이 ING생명을 인수하게 되면 자산 100조원이 넘는 명실상부한 초대형 생명보험사로 탈바꿈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선 협상 대상자 선정을 앞둔 지금 한화생명이 유력한 인수 후보라는 게 안팎의 평가다.
◆10년 후 먹을거리는 '글쎄'..약점은 '회장 부재'
이처럼 비상경영위원회가 그룹 운영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며 일련의 핵심 사업들을 안정적으로 수행하고 있긴 하지만, 신규투자를 비롯 10년 후 먹거리를 찾는 일은 진척이 되지 않고 있다.
이라크 사업만 봐도 그렇다. 김 회장과 친분을 쌓아온 이라크의 말리키 총리는 발전소 정유시설 학교 병원 등 100억 달러 규모의 사회기반시설 추가 건설공사에 대해 아직 한화 측에 아무런 확답을 주지 않고 있다.
ING생명 인수 또한 경쟁사들에 비해 경쟁력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한화생명의 유일한 약점은 회장의 부재라는 시각이 높다.
한화는 비상경영위원회가 연착륙하면서 기존 사업을 수행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비상경영위원회나 각사의 CEO들이 강력한 리더십과 장기적 안목을 갖고 미래 10년을 투자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리더십 부재로 인해 일사불란하고 신속한 의사 결정 및 선택과 집중 경영이 제대로 이뤄지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 대목이다.
재계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창조경제가 화두로 떠오른 상황에서 사업부문 간 유기적 협력을 통한 컨버전스나 일자리 창출, 신규 투자 등을 신속히 진행하려는 한화 입장에서 김 회장의 공백은 너무나 아쉽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