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수난시대..기업들 경영공백 최소화 안간힘
[뉴스핌=이강혁 강필성 기자] 상반기 횡령과 배임 등의 혐의를 받으며 벼랑 끝에 서있는 재계 총수는 그 일가를 포함해 10여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재계에서는 정권 초기 '대기업 군기잡기' 차원으로 해석하기에는 그 강도가 예사롭지 않다고 보고있다.
▲재계 총수의 범죄에 대해 법원이 잇따라 실형을 선고하면서 해당 기업들은 오너리스크 우려감을 높이고 있다. <그래픽=송유미 기자> |
하반기에도 이들 총수들의 고난사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반기에 몰려 있는 재판 결과 역시 낙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검찰이 칼 끝을 조준하고 있는 총수도 여럿이어서 총수 수난시대는 당분간 이어질 공산이 크다.
해당 기업들은 총수 부재에 따른 경영공백을 우려하고 있다. 오너경영이 신성장 동력과 맞닿아 있는 우리 기업 현실에서는 당연한 걱정이다.
하지만 손을 놓고 앉아 있을 수만도 없다. 총수의 구속, 총수에 대한 수사로 한동안 넋을 놓고 있던 기업들은 하반기 시작을 맞아 '오너리스크' 극복에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진퇴양난 총수들, 하반기 법원 판결도 낙관 어려워
19일 재계와 법원 등에 따르면 다가올 하반기에도 재계 총수들의 고난사는 반전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경제민주화 화두와 맞물려 사회적 분위기가 녹록치 않은데다, 법원의 양형 기준도 엄격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굴지 대기업 회장의 재판과정에서 만난 법조계 관계자는 "법원이 양형 감경 사유로 '경제 발전의 기여'라는 언급 자체를 금기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줄줄이 실형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재 법원에서 재판을 진행 중이거나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라 있는 총수들은 부담이 적지 않다. 하반기에 판결을 기다리는 총수는 이미 한 손으로 꼽기 힘들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2011년 배임·횡령혐의로 기소된 이후 지난 1월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이후 4월부터 항소심을 진행하는 상태다. 이르면 8월께 항소심 판결이 내려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배임·횡령혐의로 기소된 경우다. 그는 지난해 8월 1심 판결에서 징역4년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 된 후, 지난 4월 항소심에서 징역3년을 선고받았다. 현재 김 회장은 대법에 상고해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역시 1400억원대 배임·횡령 혐의를 받고 기소돼 지난해 말 항소심에서 징역4년6월을 선고 받았다. 그 역시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은 형제간의 다툼 과정에서 144억원대 배임·횡령혐의로 기소됐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으로 판결은 올해 하반기에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구본상 LIG 회장은 LIG건설 워크아웃 과정에서 2000억원 대 사기성 CP를 발행한 혐의를 받고 1심 재판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12월 시작된 공판은 올해 한반기에 판결을 내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은 검사에 수억원의 뇌물공여 혐의를 받고 기소돼 재판을 진행 중으로 오는 7월 판결이 예정돼 있다.
최근 검찰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CJ그룹의 이재현 회장 남매나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도 하반기 사법부의 행보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들이 대부분 50대 그룹 안에 포함된 것을 감안하면 못해도 주요그룹 오너의 10%는 하반기에 사법적인 판단을 받아야하는 셈이다.
그나마 1심이 진행 중인 기업에서는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2심 이상 진행된 기업의 오너들은 모조리 실형을 선고받은 상황이다.
한 변호사는 "최근 정부나 사회적 분위기가 불리하기 때문에 재계 오너 변호인 측은 최대한 재판을 늦추려는 경향이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기간에 우호적인 분위기로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리스크 최소화 안간힘.."오너경영 성과 아쉬운 때"
이로 인해 해당 기업들의 위기 대응 노력도 한창이다. 총수의 빈자리가 예상되는 만큼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SK그룹은 최대 의사결정기구 SK수펙스추구협의회를 비롯해 산하 6개 위원회를 새로 꾸렸다. 경영 슬로건도 '따로 또 같이 3.0'으로 사실상 새로운 경영 실험을 시작했다. 각 위원회는 계열서 CEO들로 구석돼 그룹의 중요한 현안에 대해 의사결정권을 갖는다. 최 회장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한화그룹도 지난 4월 비상경영위원회를 설립했다. 김 회장의 복귀까지 그룹의 대규모 투자, 신규사업 계획 수립, 주요 임원인사 등의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조치다. 위원회는 금융·제조·서비스로 나눠져 전원합의 방식으로 핵심 현안에 대해 의사를 결정하고 있다.
태광그룹은 이 전 회장 부인의 외삼촌인 심재혁 부회장이 그룹 전반을 맡아 오너의 공백을 최소화하고 있다. 아울러 지난 3월에는 최중재 대표를 신규 취임하면서 오너의 장기 부재에 대응하는 모습이다.
이 외에 LIG그룹, 금호석유화학, 유진그룹 등은 아직까지 1심 재판을 진행 중인 만큼 본격적인 비상경영체제에 착수하지 않았지만 판결과 무관하게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지 않겠다며 내부 결속을 다지는 중이다.
다만 이들 그룹들은 아직 1심인 만큼 총수가 구속되는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고 전략적 시나리오를 짜지는 않고 있다. 때문에 재판 여부와 별도로 인수합병(M&A)이나나 지배구조 개선, 신사업 발굴은 꾸준히 이뤄지고 있는 상태다.
오히려 하반기의 위기극복이 가장 큰 과제로 남는 곳은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곳이다.
CJ그룹은 현재 검찰과 공정위, 국세청, 금융당국 등이 일제히 강도높인 조사를 벌이는 곳으로 하반기 조사 결론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우려와 걱정이 크다. 조사에 대응 중인 현재로서는 신규 투자 등 굵직한 의사결정 사안이 모두 마비됐다.
법정관리 신청 이후 검찰 수사라는 암초까지 만난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재계에서는 수사가 진척되는 하반기 이후에나 위기 극복을 위한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한 인사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오래된 화두이지만 오너경영이 자리잡은 우리 경영현실을 감안하면 총수의 존재는 그만큼 중요하다"며 "국내외 경제상황이 어렵다는 점에서 오너경영의 성과가 크게 아쉬운 때"라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