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강소연 기자] 늘 아줌마 연기였다. 그조차도 억척스러운 이미지가 대부분. 수없이 출연했지만 정작 자신의 이름을 건 이렇다 할 작품은 없었다.
“진짜 살다 보니까 이런 날도 있네요.” 데뷔 22년 만에 영화 ‘짓’으로 스크린에 데뷔한 배우 김희정(43)의 말이다.
인터뷰를 위해 마주한 김희정은 브라운관 속 이미지와 전혀 달랐다. 화려한 메이크업과 옷차림으로 잔뜩 멋을 낸 그는 아주 우아했다. 행복이 넘치는 10대 소녀마냥 눈동자가 반짝였고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계속 이어진 일정 탓에 저녁 식사도 걸렀지만 상관없었다. 에너지가 넘쳤다.
“실감이 안 나요. 매번 단역만 했는데 어쩌다 보니 한 걸음씩 올라가는 상황이 됐네요. 정말 영화까지 찍게 될지는 몰랐어요. 그것도 이렇게 주인공으로 스크린 데뷔를 하게 돼 정말 감개무량하죠. 지금 순간이 인생에서 제일 행복해요(웃음).”
김희정에게 이번 영화가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변신’이다. 앞서 언급했듯 김희정은 그간 평범한, 특히 팔자 사납고 처량한 아줌마 역을 주로 맡았다. 반면 이번 작품에서는 지적인 대학교수 주희를 연기했다. 대학교수 김희정이라. 좀처럼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지 않다. 반신반의하는 심정은 본인도 마찬가지다.
“제가 방송생활을 오래 했잖아요. 그래서 방송 조나 대사 톤이 묻어있지 않을까 걱정했죠. 사실 한종훈 감독님도 많이 염려했어요. 그래서 제 습관들과 아줌마 역의 억셈이 묻어나지 않게 노력했죠. 새로운 캐릭터와 장르라 부담감도 있었거든요. ‘쟨 영화는 안 되겠다’ ‘너무 어색하다’는 이야기 들을까 봐요(웃음).”
극중 김희정이 열연한 주희는 남편 동혁(서태화)과 바람난 제자 연미(서은아)를 집으로 끌어들인다. 동혁과 연미의 불륜 현장을 포착하기 위해 주희는 방에 CCTV를 설치하고 두 사람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남편의 외도 앞에서 지나치게 냉정한 주희의 행동은 소름이 끼친다.
“실제 저였으면 바로 터뜨려서 싸웠을 거예요. 뜨뜻미지근한 거 싫어요. 전 논리가 분명한 편이죠. 참고 담아두고 이런 거 못해요.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죠. 이혼하고 말고를 떠나 뒤에서 그렇게는 못할 거 같아요. 근데 또 제 안에 너무 많은 자아가 있어서 모르겠네요(웃음).”
‘짓’ 촬영을 하는 동안 김희정은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했다. 한 달 남짓 되는 영화 촬영 기간은 MBC 드라마 ‘백년의 유산’ ‘구가의 서’와 맞물렸다. 빡빡한 일정 때문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찬물로 머리를 감았고 하루 두세 시간 새우잠을 잤다. 하지만 자신에게 연기가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그저 행복했다.
“지난해 10개월 정도 놀았어요. 방송 20년 정도 하면서 그렇게 쉰 건 처음이었죠. 그런데 5개월이 넘어가니까 일에 갈증이 나는 거예요. 그러다 ‘백년의 유산’이랑 ‘짓’을 찍게 됐는데 참 행복했어요. 쉬는 동안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즐거움이란 걸 깨달았죠. 저를 되짚어 볼 수 있는 계기였고 제가 이 일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해준 시기였어요.”
김희정은 대화를 나누는 내내 큰 언니처럼, 그리고 이모처럼 따뜻했다. 연륜에서 묻어나는 말솜씨가 특히 편안했다. 이제 막 데뷔한 신인처럼 특정 역할에 대한 막연한 욕심은 없었지만 자신이 그리는 꿈은 분명했다.
“저는 계속 주어진 어떤 역이라도 영혼을 갖고 마음을 담아 연기할 거예요. 물론 이렇게 다른 캐릭터로 저를 불러줄 감독님을 만나면 더없이 좋겠죠. 기존의 모습이 아닌 제 속의 다른 카드를 꺼내줄 귀인이랄까요? 지쳤을 때 나타난 문영남 작가님이나 캐릭터 한계점이 왔을 때 만난 한종훈 감독님처럼요(웃음). 그래서 좋은 연기자로 오래 이 일을 했으면 하는 게 꿈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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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강소연 기자 (kang1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