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내파생 규제 강화, 장외파생은 육성"
파생상품시장이 날개 없는 추락을 하고 있다. 한때 세계 1위를 자랑하던 한국거래소의 선물옵션 거래량은 이제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파생상품에 대한 인식이 나빠진데다 도이치뱅크의 대량 옵션 매매 사건으로 금융감독당국이 규제를 크게 강화한 탓이다.
금융투자업계는 파생상품시장이 살아야 현물시장도 산다며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창조금융'을 성공시키고, 자본시장의 성장을 위해서 파생상품시장이 살아야한다는 주장이다.
뉴스핌은 [파생 살아야 현물 산다]는 기획시리즈로 파생상품시장 현황과 함께 발전 방안을 모색해본다. <편집자 주>
[뉴스핌=한기진 기자] 금융감독당국이 파생상품시장에 대해 두 갈래 전략을 갖고 있다. 한국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장내파생상품에 대해서는 규제를 강화하는 대신 ‘장외’에서 거래되는 상품은 육성한다는 것이다.
금융투자업계가 세계 1위를 자랑하던 한국거래소의 파생상품시장 규모가 올해 53% 급감하자 규제 완화를 요구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한 것이다.
외국인 투자와 밀접하게 관련 있어 파생상품을 둘러싼 당사자 간 이해충돌을 넘어,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 “세계1위 파생시장은 비정상, 규제로 정상화 중”
금융감독원 금융투자국 관계자는 최근 뉴스핌과의 인터뷰에서 “주식 관련 파생상품은 과거에 너무 비대해져 규제하는 것으로 현재 정상 궤도로 회귀하는 과정”이라면서 “세계 1위 물량 거래는 비정상적이었던 것으로 당분간 현행 규제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장외파생상품은 은행이 소극적이어서 수출기업이 헤지(환율 위험 회피)하고 싶어도 못하고 있다"며 "통화와 이자 관련 장외파생상품은 활성화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 당국자의 말에 비춰본다면 파생시장의 급격한 위축을 가져온 장내상품 거래승수 조정은 물 건너갔다. 파생상품 한 계약당 거래승수를 10만원에서 50만원으로 올려 거래 단위가 커지자 개인투자자들이 시장을 떠났다.
2010년 소위 ‘11•11옵션 쇼크’로 불리는 도이체방크의 대량 매도 사건 등으로 파생상품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자 정부가 칼을 빼 든 규제다.
또 고사 직전인 주식워런트증권(ELW), 주가연계증권(ELS)의 회생 기회를 찾기도 어려워졌다.
소액투자자라도 고가 우량주에 투자할 수 있는 수단으로 주목받았던 ELW는 2010년 10월 하루 평균 거래대금이 2조원을 넘었지만, 최근엔 1000억원을 간신히 넘는 수준으로 변했다.
이 또한 정부가 지난해 3월 스캘퍼(초단타매매자)들의 불공정 행위를 막겠다며 주요 증권사들로 구성된 유동성 공급자(LP)들의 호가를 제한했기 때문이다. 이에 LP들이 시장을 떠나기 시작했고 기관의 거래 비중은 급감했다.
'중위험-중수익' 상품군의 대표주자격인 ELS도 불완전판매에다 투자자와 발행자 사이의 이해 상충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게 감독당국의 판단이다.
실제로 A증권사는 2개 주식을 기초로 해 수익률이 산정되는 ELS를 팔면서 손실 발생 시 두 주식 중 더 많이 하락한 주식을 기준으로 손실률을 산정한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상품을 팔았다. 이 상품에서 손실이 발생하자 투자자들이 증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금감원 금융투자국 관계자는 “발행자(증권사)가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이해 상충을 없게 해야 한다”며 증권사의 책임을 더 강조했다.
◆ “수출기업 지원 위해서라도 통화 및 이자 관련 장외파생 확대해야”
이런 분위기와 달리 장외파생상품을 육성하기로 한 것은 수출기업을 괴롭히고 있는 키코(KIKO) 악몽을 깨고 수출금융을 활성화하기 위한 목적이다.
장외파생상품에는 통화 관련된 것이 많고 수출 기업은 이를 이용해 환율 변동 위험에 대처해왔다. 비정형통화옵션, 통화스왑(CRS), 이자율스왑(IRS), 통화선도거래 모두 수출입기업의 환 헤지와 신용위험을 낮출 수 있는 상품이다.
파생시장의 지나친 위축은 외국인의 투자를 차단하고 현물 시장은 물로 국내 자본시장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싱가포르나 대만 등 아시아 시장에서 주식을 사면서 헤지(위험회피)는 코스피200 선물옵션을 활용하던 때가 있었다"며 "헤지하면서 동시에 한국 현물 주식도 샀는데 규제 강화로 외국인을 내쫓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거래소가 주춤하는 사이 경쟁자인 중국의 거래소가 파생상품을 만들고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파생상품을 절대 악으로 보는 금융당국과 정치권의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동시에 거래소도 상품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주문이 이어졌다. 파생상품시장 발전이 거래소 생존의 필수조건인데다 외국인 투자를 활성화해야 하기 때문에 감독당국도 머리를 맞대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을 내놔야 한다는 얘기다.
[뉴스핌 Newspim] 한기진 기자 (hkj7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