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삼재로 향하는 길가엔 섬진강 물안개가 이울어지고 있는 단풍을 더욱 처연하게 만들었다. 천년 고찰 천은사 길목엔 완장 찬 남정네 들이 마치 빨치산처럼 검문검색을 하며 천은사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칼 들지 않은 날 강도들이었다.속이 메스꺼워지며 저절로 욕이 나왔다.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입장료를 받는다고는 하지만 반대편 달궁 방향에서 오는 사람들에게는 입장료를 받지 않고 구례 쪽에서 오는 사람들에게서만 입장료를 받는 것이었다. 천은사를 방문할 의사가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도 천은사 입장료를 받는 꼴이니 불교에 대한 거부감이 심하게 일고 있었다. 이 문제는 조계종 총무원에서 하루빨리 고쳐야 할 병폐다. 굽이굽이 돌고 돌아가는 성삼재 길은 사판의 흙투성이에 개의치 않고 붉게 혹은 노랗게 물들고 있었다.
성삼재에 오르니 발아래 운무가 까마득하게 펼쳐졌다. 남원, 운봉, 구례가 운무에 파묻혀 있었다. 괴벗은 나무도 붉었고, 등산객들의 옷차림도 붉었다. 주변이 모두 핏빛이었다. 우주가 생기기전 무극의 모습이 이랬을까 하는 신령스러움마저 들었다. 얼음같이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할퀴었다.
온 몸이 금방 차가운 냉동실에 들어가는 것처럼 굳어졌다. 오래된 친구와 따뜻한 차를 마셨다. 나 혼자 종주하는 것이 못내 미더웠던지 오래된 친구는 지팡이 높이를 조절해 준 후, 절대 한눈팔지 말고 걸을 것을 주문했다. 한 눈 팔면 발목 부러진다고 신신당부했다. 힘들다 싶으면 미련 갖지 말고 하산하라고 까지 일렀다. 우정이라는 것이 뭐 별거일까. 이런 게 우정이지.
성삼재에서 노고단에 이르는 길은 신작로였다. 새마을 운동 당시 포장길 같기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걷겠다고 했지만 머릿속은 온통 잡념들로 꽉 찼다. 길의 아름다움도, 산행의 호젓함도 느끼지 못했다. 터질 것 같은 망상들만 떠올랐다간 사라지고 사라졌다간 떠오르곤 했다. 그러기를 1시간 남짓 지나자 눈앞에 광활한 등성이 나타났다. 노고단 고개였다.
노고단(老姑壇)은 늙은 시어머니를 위한 제사 터를 의미한다. 우리말로는 할머니 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노(老)는 존칭의 의미이며 고(姑)는 새의 발톱 같은 긴 손톱을 갖고 있는 전설속의 할미를 뜻하는 마고할미를 뜻한다. 즉 마고할미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눈 아래에 펼쳐지는 등성이 맥들이 맥놀이 치며 마음속의 망상들을 조복(調伏)시키고 있었다. 퍼질러 앉았다. 물을 마셨다. 조복 당한 망상들이 산 아래로 떠밀리어 내려갔다. 내 생각과 다른 아내의 말과 행동에 대해 가졌던 거친 맘. 아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 딸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 생각의 차이로 드잡이했던 사람에 대한 증오심. 세치 혀로 남을 현혹시킨 마음. 결과가 빤하게 안 될 것을 알면서도 뻥뻥 큰 소리 쳤던 마음. 남의 근사한 글을 베껴 놓고 내 글인 것처럼 뻐겼던 간사한 마음. 철저하게 계산된 행동을 하면서도 마치 후하게 주는 것처럼 생색냈던 마음. 잘 나가는 놈에게 좋은 감정이 없으면서도 그 놈에게 무슨 쇄설(瑣屑)이라도 얻어먹을 심보로 아첨했던 마음. 하나 밖에 모르면서 열을 아는 것처럼 보이려는 가식적인 마음. 무슨 자리만 생기면 잘난 척 하기 바빴던 마음. 남에게 잘 보이려고 조작된 말과 행동을 했던 마음. 차마 훗날의 평가가 무서워 내 마음의 일기장에도 쓸 수 없는 악행의 마음들을 떠내려 보냈다.
변상문 전통문화연구소장 (02-794-8838, sm290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