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암울…돈 벌어 이자도 못 갚아
[뉴스핌=한태희 기자] 2013년의 끝을 하루 앞둔 지난해 12월 30일. 시공능력 16위 쌍용건설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쌍용건설에 앞서 지난해 한일건설을 포함한 중·대형 건설사가 줄줄이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이나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시공능력 100위권 이내 건설사 중 26곳이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중이다. 2014년 새해를 맞는 건설업계의 현 주소다.
새해에도 건설업계 분위기는 어둡기만하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침체된 주택경기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어서다. 주택경기 침체로 전국 곳곳에서 미분양 주택이 넘쳐난다.
건설경기는 꺾이는데 투자는 오히려 줄고 있다. 성장성마저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박근혜정부는 올해 SOC(사회간접자본) 예산을 지난해보다 줄였다. 국회가 정부 계획보다 SOC(사회간접자본) 예산을 증편했지만 정부는 SOC 사업 축소을 고수하고 있다.
국내 건설경기 불황의 돌파구로 택한 해외시장도 신통치 않다. 지난해 해외 수주 652억달러(한화 68조원)를 달성했지만 저가 수주 논란으로 뒷맛이 개운치 않다. 저가 수주는 경영부실 '뇌관'으로 남아 있다.
◆돈 벌어도 이자 못 갚아…업계 종사자 감소
6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국내 시공능력 100위권 이내 건설사 가운데 26개 회사가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를 받고 있다. 두산·동부건설과 같이 그룹 지원을 받는 건설사는 살아 남았지만 웬만하면 부도 문턱까지 갖다 왔다.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로도 기업 정상화의 길은 멀다. 지속 가능한 경영이 어려울 정도로 채산성이 떨어져서다. 돈을 벌어 대출 이자를 갚을 수 있는 능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116개 상장 건설사의 이자보상비율은 72.2%로 조사됐다. 전년동기보다 150.3%포인트 급락한 것이다. 특히 건설사 10곳 중 5곳(56개 건설사)은 이자보상비율이 100%를 밑돌았다.
이자보상비율은 건설사가 돈을 벌어 이자 갚을 수 있는 능력을 수치화한 것. 수치가 높을수록 이자 갚을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남을 뜻한다. 반면 이자보상비율이 100% 아래면 돈을 벌어서 이자마저도 갚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대한건설협회 조사통계팀 강경완 팀장은 "저금리 기조에도 영업이익 급감으로 이자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공사 수익률 저하, 공공 공사 감소, 주택시장 침체, 해외 저가수주 반영으로 올 상반기에도 건설사 어려움은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자료:대한건설협회 |
건설업 불황의 그림자는 고용까지 갉아먹고 있다. 건설경기 불황으로 건설업 취업자 수는 지난 2004년 이후 계속 줄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2년 한 해 건설업 취업자수는 177만3000명으로 지난 2004년(181만8000명)보다 4만5000명 줄었다.
가구, 가전 등 건설업과 관련된 산업도 위축되고 있다. 건설업은 생산이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능력이 다른 산업 평균에 비해 높다. 한국은행이 작성한 산업연관표에 따르면 지난 2009년 건설업 생산유발계수는 2.129로 국내 전 산업 평균 1.955를 상회한다. 또 건설업 부가가치유발계수는 0.749로 산업 평균(0.687)보다 높다. 생산유발계수와 부가가치유발계수는 어떤 산업에서 생산을 한 단위 늘렸을 때 직·간접적으로 나타나는 생산 효과, 부가가치 크기를 나타낸다.
◆주택경기 침체, 미분양 아파트 넘쳐
건설업 위기는 주택경기 침체로 폭발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시작된 경기침체는 주택경기 하락을 동반했다. 전국에서 미분양 아파트가 넘쳐났다.
아파트를 팔지 못한 건설사는 자금을 제 때 회수하지 못한다. 지난 2008년 이후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대출 부실은 저축은행 부실과 더불어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전국 미분양 아파트는 6만3709가구로 10년 동안 3배 가량 늘었다.
같은 기간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는 미분양 아파트가 크게 늘었다. 지난해 11월 기준 수도권 미분양 아파트는 3만3203가구로 지난 2003년 11월(4422가구)과 비교해 7.7배 늘었다.
미분양 아파트는 건설사의 유동성을 옥죄는 대표적 경영불안 요인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미분양 규모는 대외비라 밝힐 수 없지만 미분양이 쌓이면 자금 조달이나 자금 순환에 문제가 생기고 심한 경우 회사가 휘청거린다"고 말했다.
◆성장성도 불투명..건설투자 계속 감소
주택경기 침체가 건설사가 현재 극복해야 할 위기 요인이라면 국내 건설 투자 감소는 건설사가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다.
한국은행 및 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건설 투자 규모는 지난 2007년 이후 계속 줄고 있다. 지난 2012년 국내 건설 투자 규모는 143조원으로 지난 2007년 이후 감소 추세다. 건설 투자 규모는 지난 1997년 외환위기 후 해마다 평균 0.3%씩 줄고 있다.
자료:건설산업연구원 |
7년간 지속됐던 국내 건설 수주액 '100조 시대'도 무너졌다.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집계된 국내 건설 수주액은 68조6000억원. 건설산업연구원은 올해 국내 건설 수주액이 93조9000억원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럼에도 투자는 더욱 줄어들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는 복지 예산 마련을 위해 오는 2017년까지 SOC 예산을 4년간 11조6000억원 줄이기로 했다.
◆해외에선 '저가 수주'에 발목 잡혀
위기 극복의 돌파구로 택한 해외시장도 암울하기는 마찬가지다. 해외 건설시장 진출에 사활을 걸었던 건설사가 '저가 수주' 유탄을 맞고 있다.
건설사는 국내 건설경기 불황을 돌파하기 위해 지난 2009년 이후 해외 건설 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출했다. 가시적 성과는 뛰어났다. 지난해 해외건설 수주액은 652억달러. 지난 2010년(716억달러, 한화 75조)에 이은 역대 2번째 기록이다.
하지만 역대 2번째 기록은 '저가 수주' 논란으로 빛이 바랬다. 국내 건설사끼리 과다 경쟁해 저가 수주가 늘었기 때문이다.
저가 수주는 GS건설 '어닝 쇼크'로 드러났다. GS건설은 지난해 1분기 대규모 영업손실이 발생했다. 손실 규모는 약 5400억원. 지난 2012년 연간 1600억원이었던 영업이익이 하루아침에 대규모 적자 전환했다. 손실은 대부분 해외 플랜트 공사에서 발생했다.
해외 플랜트 시장에 진출한 삼성엔지니어링과 SK건설도 지난해 실적 부진을 면치 못했다.
건설업계 및 증권업계는 지금까지 드러난 저가 수주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우려한다.
아이엠투자증권 이선일 연구원은 "6대 건설사(현대·대우·GS건설, 삼성물산, 삼성엔지니어링, 대림산업)가 수주한 저가 의혹 프로젝트는 총 37조3000억원 규모"라며 "2014년 1분기 14조2000억원으로 최고조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선일 연구원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조바심이 나기 마련"이라며 과도한 (해외수주) 목표가 무리한 저가 수주로 이어졌다고 꼬집었다.
[뉴스핌 Newspim] 한태희 기자 (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