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상 시기 깜짝발언'에 주식시장·채권가격 급락
[뉴스핌=노종빈 기자] 여기자: 그런데 말씀 중에서요. 가을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그게 언제를 말하나요? 내년 가을인가요, 아니면 올해 가을인가요?
옐런 의장: (테이퍼링이 마무리되는 시점은) 네, 올해 가을이죠.
여기자: 아, 잠깐 체크했고요. 테이퍼링 끝나고 나서 금리인상까지는 기간이 얼마나 걸리나요?
옐런 의장: 연준 성명서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상당 기간'입니다. 그러니깐 이런 종류의 용어는 명확히 정의할 수는 없지만, 아시다시피 아마도 대략 6개월의 순서 정도씩을 얘기한답니다, 뭐 대충은 그런 셈이죠. ("So the language that we used in the statement is ‘considerable period.’ So I, you know, this is the kind of term it’s hard to define. But, you know, probably means something on the order of around six months, that type of thing.”)
19일 오후 2시 55분경(한국시간 20일 오전 3시 55분경)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뒤 역사적인 첫 기자회견.
이미 무미건조한 질문과 답변이 25~30분 가량 흘러간 뒤였다. 그런데 갑자기 전세계 시장을 뒤흔드는 세마디가 튀어나왔다. '6개월 정도(around 6 months)'라는 한마디에 투자자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 옐런 '깜짝발언' 나온 배경은재닛 옐런 美연방준비제도 의장
그 전까지 대부분의 질문과 답변은 연준의 테이퍼링 지속 여부와 미국 경제 회복세, 저금리 기조 유지 등에 초점이 맞춰졌고 준비된 듯한 예상 질문과 답변만이 오갔다.
그런데 4~5번째 질문자로 나선 한 여기자의 질문은 '우문', 아니 건조한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야말로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테이퍼링이 마무리되는 시점은 당연히 올해 중일 것이다. 벌써 3번의 테이퍼링 결정이 이뤄졌고 따라서 테이퍼링 범위도 최초 850억달러에서 550억달러만 남아 있으므로 매달 100억달러씩 줄인다면 올해 중에 거의 마무리되는 수순이다.
이 타이밍에서 그 가을이 올해 가을인지 내년 가을인지 묻는다는 것은 아무리 정확한 자료 확인 차원이라 하더라도, 질문자의 자질까지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옐런 의장은 마치 대학 신입생을 감싸주는 친절한 노교수처럼 보였다.
다음 질문에 대한 답변, 즉 '대략 6개월 정도의 기간을 의미한다'는 발언은 연준 의장으로서 할 수 있는 발언이라기보다는 '개인적 취향이나 파격'에 가까웠다.
옐런의 발언은 정확히 금리 인상 시점을 말해준다. 테이퍼링이 올해 가을에 끝난 후 6개월 뒤라면 내년 3월부터 6월 사이가 된다. 만약 테이퍼링이 올해 말에 끝난다면 금리인상 시점은 내년 6월께가 된다.
금리인상은 증시에는 타격을 주기도 하지만 변동성을 크게 높인다. 따라서 옐런이 의장의 자격으로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진다.
당장 S&P 지수가 1% 가까이 폭락했다. 미국 국채 5년물 수익률도 10bp 가량 속등했다.
옐런은 자신의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을까. 솔직히 과연 연준위원들이 이 발언에 모두 동의하는 지도 궁금해진다.
◆ "돌이킬 수 없는..."
하지만 시장은 실수라는 점을 감안하고서라도 움직인다.
즉 옐런의 입에서 '6개월 정도'라는 발언이 이처럼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수 있었던 맥락을 보면 분명 연준위원들 다수가 이틀간의 긴 회의 석상에서 이런 논의를 했을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옐런의 말실수 여부와 상관없이 순간적으로 물량을 때린 것이다.
과거 벤 버냉키 전임 연준의장이 항상 비판받았던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발언으로 시장의 방향을 좌우했다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연준위원들의 발언이 여전히 시장에서 소위 '먹히는' 이유는 이같이 시장을 움직이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은 쓸데없는 혼란을 원치 않으며, 절제된 시그널을 원한다.
옐런 의장의 발언 당시 HTS(home trading system, 홈트레이딩시스템) 앞에 앉아있지 않았던 투자자들은 넋놓고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쯤되면 실수라고 돌이킬 수도 없고, 진정성을 가진 발언으로 정리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 FOMC의 숨겨진 뜻
사실 이날 연준이 준비한 선물은 따로 있었다. 즉 포워드가이던스(선제안내) 방식을 수정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장에는 그야말로 탑뉴스가 될 수 있었다.
연준이 이날 발표한 선제안내는 이전까지 실업률 6.5%, 물가상승률 2% 등과 같이 수치로 되어 있던 것을 앞으로는 노동시장과 인플레이션 압력, 기대 인플레이션, 금융시장 상황 등을 다양하게 고려, 양적 기준을 질적 기준으로 살짝 바꾼 것이다.
질적 개선으로 인한 효과도 적지 않다. 즉 시장 투자자들이 궁금해 하는 것과 연준위원들간의 의사소통이 더 구체적이고 편안해질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이날 연준의 선물은 옐런의 깜짝 발언으로 빛이 바랬다.
사실 이번 FOMC의 숨겨진 의미는 연준위원들의 매파적 성향이 조금 높아진 회의라는 점이었다.
이날 연준위원들 16명 가운데 13명이 내년말까지 금리 인상에 동의했다.
또한 연준위원 16명중 가운데 6명이 내년말까지 금리가 1% 미만일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는 지난해 말 연준위원 17명 가운데 10명이 내년 말 금리가 1%보다 낮을 것으로 예상한 것보다 크게 줄어든 것이다.
정작 연준 위원들이 옐런 의장에게 바랐던 바는 '매파 성향으로 달려가는 연준'을 '상당 기간 저금리 유지 기조'라는 비둘기로 보이도록 적절히 마사지해달라는 주문이었을 것이다.
◆ 옐런, 친절했지만 장황
하지만 옐런 의장은 이날 첫 기자회견에서 올해 말까지 들고 갈 수 있었던 연준의 마지막 장사밑천까지 모두 꺼내 보이고 말았다.
과거 연준 의장들 같으면 구체적인 금리인상 시기에 대한 발언은 테이퍼링이 끝나고 나서 충분히 숙고한 뒤, 어찌보면 그마저도 하지 않아도 될 말이었다.
이날 드러난 옐런의 발언은 친절했지만 대단히 장황하고 포커스가 부족한 것으로 보였다.
옐런은 친절하게 장장 3시간 여를 얘기했지만 새롭거나 솔깃한 내용은 많지 않았다. 그야말로 물어보는 것에 전부 다 답변한다는 쪽에 가까웠다.
하지만 과거 버냉키 의장과 같이 45분~1시간 정도를 얘기하고도 쓸만한 내용이 거의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을지 모른다.
옐런도, 시장도 액땜을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다만 옐런이 세계 금융시장을 주물러야할 수장으로서 좀 더 과묵해야 할 것이라는 충고를 받을 것은 확실해 보인다.
[뉴스핌 Newspim] 노종빈 기자 (unti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