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영화 ‘정사’(1998)와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2003) 각본부터 영화 ‘음란선생’(2006), ‘방자전’(2010) 연출까지. 그의 필모그래피를 봤을 때 호기심이 생기는 배우가 어디 송승헌뿐이랴. 배우라면, 더군다나 새로운 변신을 원하는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그와 작업을 꿈꾸기 마련이다.
영화 ‘인간중독’ 개봉을 앞두고 김대우 감독(52)을 만났다. 배우 못지않은 멋진 차림으로 마주한 그의 얼굴에는 개봉을 앞둔 여느 감독들과 달리 여유가 넘쳤다. 어딘가 깐깐해 보이면서도 일면 소탈하고 진중한 김대우 감독은 만남 자체를 유쾌하게 즐길 줄 아는 멋쟁이였다.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에로틱하게 인간의 숨겨진 본성을 풍자하던 김 감독이 신작 ‘인간중독’을 선보일 채비를 마쳤다. ‘인간중독’은 베트남전쟁이 벌어지던 1969년, 엄격한 위계질서와 상하관계로 맺어진 군 관사 안에서 벌어지는 남녀의 비밀스럽고 파격적인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사랑하는 남자와 사랑을 받는 여자, 그 감정에 충실해 봤어요. 예전에는 그 안에 질투나 복수심, 혹은 그 사이의 갈등을 비비 꼬았다면 이번에는 남녀의 마음에 집중한 거죠. 그런 사랑을 받으면 어떤 마음이 들까, 또 사랑으로 고통스러운 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생각해봤어요. 이런 표현이 좀 웃기지만 사랑의 고통에 괴로워하는 남자를 보는 여자의 기쁨도 음미할 수 있을 겁니다. 간혹 파격적이라고들 하는데 성인이 성인에게 내보이는 영화이기에 전혀 파격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웃음).”
앞서 말했듯 영화는 베트남전쟁이 벌어지던 1969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적절한 촬영 장소와 세트장을 마련하는 것은 김 감독이 떠안아야 할 또 다른 숙제였다. 다행히도 군인 출신 아버지 덕에 어린 시절 관사에서 자란 김대우 감독은 관사의 문화나 분위기, 군인 가족의 습성을 파악하는 데 능했다.
“제일 힘든 건 촬영 장소였죠. 파주 세트에서 대부분 촬영했어요. 시대극이다 보니까 국내에서는 촬영이 잘 안돼서 세트를 많이 썼고 박물관, 기념관 등을 빌려서 찍었죠. 사극보다 구현해내기가 어렵더라고요. 아무래도 당시의 흔적이 우리나라에는 남아있지 않잖아요. 건물조차 몇 개 안됐죠. 그래서 그대로의 장소가 남아있는 유럽이나 미국이 부럽기까지 했어요(웃음).”
인터뷰 내내 김 감독이 (글로 다 적을 수 없을 만큼)가장 많이 언급한 건 출연 배우 송승헌일 거다. 송승헌이 이번 영화로 연기 생활 18년 만에 파격적인 변화를 꾀한 건 모두가 아는 사실. 송승헌의 말을 빌리자면 그의 선택에는 김 감독에 대한 신뢰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 김 감독 역시 자신을 믿고 어려운 결정을 한 송승헌에게 책임감을 느낀다.
“이젠 정말 돈독한 사이죠. 전쟁이라고 생각하면 최전방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거니까요. 이번 작품으로 송승헌이란 사람의 실체를 이미지로 구현시키고 싶었어요. 젊은 날부터 비즈니스 리더로 지내다 보니 책임감이 굉장히 강한 친구예요. 하지만 그 무게를 떨친 자연인 송승헌은 남자다우면서도 유머러스하고 귀엽죠. 이런 모습을 친한 사람들만 볼 게 아니라 영화로 드러낸다면 대중이 그를 얼마나 더 사랑하겠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요구하는 이미지가 아닌 송승헌이 살아보고 싶은, 해보고 싶은 연기를 했으면 바랐죠.”
송승헌의 칭찬을 늘어놓는 김 감독을 보자니 다른 배우들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할지 문득 궁금했다. 특히 예고편 공개 이후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임지연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왜 하필 임지연이어야 했을까. 김 감독은 증명되지 않은 신예 임지연에게서 어떤 가능성을 본 걸까.
“오디션도 보고 배우들도 만나던 중에 소개로 처음 만났죠. 너무 신인이라 그냥 한번 보는 정도로 나갔는데 굉장히 독특하더라고요. 마치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에 서 있는 러시아 소녀의 느낌이랄까? 사차원적인 외모는 아닌데 비현실적이고 독특했어요. 배우 자체로 보면 멘탈도 참 좋고요. 강인하고 인내력이 강하죠. 현장에서도 투덜대는 법이 없어요. 물론 신인이다 보니 손은 많이 가죠. 하지만 공을 들일수록 독특하게 변해가니 보람 있고 재밌는 배우입니다. 그러니 영화도 기대하고 봐도 좋을 듯해요.”
[사진=호호호비치 제공]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