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마켓

속보

더보기

[마켓 In-Depth] '차이나스토리' 10년, 승자도 패자도 있었다

기사입력 :

최종수정 :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할아버지 때부터 돈 벌고, 증손자 대는 '돈 쓰는 시대'

[편집자주] 이 기사는 지난 7월 4일 오후 6시 8분 뉴스핌의 프리미엄 뉴스 안다(ANDA)에서 표출한 기사입니다.

[뉴스핌=홍승훈 기자] 최근 주식시장 가장 '핫(Hot)'한 업종 중 하나가 화장품이다. 아모레퍼시픽을 필두로 코스맥스, 한국콜마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주가는 최근 6개월동안 60% 가량 올랐고, 한국콜마는 최근 두달간 70% 급등했다. 코스맥스는 불과 두 달여 전 6만원대에 머물던 주가가 최근 10만원을 돌파했다.

이들 기업의 성장스토리에는 '중국'이 자리잡고 있다. 13억 인구의 중국시장을 제대로 공략하며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아모레퍼시픽의 해외 지역별 매출을 보자. 중국 한 나라에서만 지난해 올린 매출이 3387억원이다. 아시아 북미, 유럽을 모두 합친 규모(2012억원)를 가뿐히 넘어선다. 코스맥스 역시 중국매출이 30% 수준으로 올라서며 고성장주로 각광받았다. 

최근 삼익악기(피아노), 산성앨엔에스(마스크팩), 리홈쿠첸(전기밥솥), 삼화네트웍스(한류콘텐츠), 팬엔터테인먼트(한류콘텐츠), 보령메디앙스(아기용품), 로만손(주얼리) , 오뚜기(카레), 위닉스(정수기) 등도 '차이나스토리'를 품고 질주를 시작했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중국관련주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00년대 중반께다. 두산인프라코어(전 대우종합기계), 현대중공업, 포스코 등이 당시 대표주들이었다. 후진타오 체제가 시작된 뒤 전국에 걸친 개발이 본격화됐고 이에 맞춰 굴삭기 등 기계장비, 철강 및 소재기업이 날개를 달았다. 국내 주식시장 역시 이들 기업들을 수혜주로 점찍고 큰 시세를 연출했다.

2000년대 중반이 중국주의 시작이라면 2010년 이후엔 중국테마의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이전이 중국의 산업화 공업화였다면 이 때는 '중국 소비패턴의 변화'가 키(Key)였다. 급속한 도시화와 고속철도 시대가 열리며 중국이 소비시대에 진입했다는 점에 포커스를 뒀다. 

할아버지 등소평은 돈 벌고, 아들 장쩌민이 책 사고, 손자 후진타오가 G2로 출세했다면 그간 모은 돈으로 G2 반열에 올라선 증손자 시진핑 시대는 돈을 쓰는 시대가 됐다는 우스갯소리도 회자됐다.

이에 2011년 전후로 주목받기 시작한 기업이 오리온과 베이직하우스. 초코파이 한개씩만 먹어도 13억개고 옷을 한벌씩만 입혀도 13억 벌이란 논리였다. 이어 빙그레, 아모레퍼시픽, 매일유업, 한미약품, 락앤락, 베이직하우스 등이 중국 수혜 기대감을 한껏 받으며 1~2년동안 화려한 시세를 기록했다.

물론 다 잘 된 것은 아니다. 락앤락은 중국내 짝퉁에 치이며 실적이 무너졌고, 베이직하우스는 중국내 대규모 출점 과정에서 문제가 속출하며 주가가 크게 부러지며 투자자들에게 상처도 남겼다.

최근 국내경기가 불투명하다. 수출기업들은 환율에 발목이 잡혔고, 내수기업들은 세월호 사건 이후 침체를 겪는 내수시장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래서 중국관련주에 투자자들의 러브콜이 더해지는 면도 없지않아 보인다.

다만 최근 최고시세를 내고 있는 화장품주의 경우 올라도 너무 올랐다는 우려감도 나온다. 단기간 PER가 30배를 대부분 넘었다. 실적 또한 계속 늘고는 있지만 시장 기대를 충족시키는 실적을 꾸준히 내 줄지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코스맥스의 경우 차입을 통한 성장전략으로 부채비율이 300%에 달하는 등 재무 리스크도 살펴가며 투자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국내 투자자문사 한 대표는 "과거 락앤락과 베이직하우스 등에서 봤듯 중소형주의 한계상 자칫 작은 악재 한 둘에도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는 게 주식시장"이라며 "기대에 걸맞는 숫자가 나와줘야 하는데 최근 분위기는 다소 과열됐다는 분석도 슬금슬금 나오고 있다"고 조언했다.

<2014년 실적은 에프앤가이드 추정치 기준>

[뉴스핌 Newspim] 홍승훈 기자 (deerbear@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또 다른 제6사 사장 김일성의 출현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동북항일연군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이 1937년 11월 13일 사살된 이후부터 한동안 이 부대에 대한 동향이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38년 봄부터 갑자기 새로운 김일성(金日成)의 움직임이 일본 경찰 정보망에 잡혔다. 신임 제6사 사장 역시 소련으로부터 파견돼 온 자였다. 그는 소련 지령으로 전임자 김일성(金日成)의 이름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후임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은 1939년 봄에 사(師)를 묶어서 방면군(方面軍)으로 편제를 변경하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1로군 제2방면군장(方面軍長)이 되었다. 소련은 중일전쟁 발발 후, 일본이 소련을 공격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동북항일연군에 적극적인 군사 지원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소련군 내 한국·중국인 군관들에게 유격 전술을 교육하여 파견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신임 제6사(제6사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2방면군이 된 부대) 사장으로 취임한 김일성(金日成)은 본명이 김일성(金一星)이다. 김성주 별호와 같다. 그는 1930년 5월 30일 간도 폭동 사건 때 용정에 있었던 한인이 다니는 대성중학교 학생이었다. 이날 밤(1930년 5월 30일) 김일성(金一星)은 용정역 기관차에 불을 지르는 등의 행위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으나, 서울로 압송되기 전 탈출에 성공했다. 그 후 소련으로 건너가 적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련 공산당 지령에 따라 1938년 동북항일연군으로 파견돼 온 것이었다. [사진= AI 생성 이미지]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1938년 4월 26일 밤 제2방면군은 평안북도 후창(厚昌) 경찰서 부흥(富興) 주재소 대안 임강현(臨江縣) 제3구(三區) 6도구(六道溝)를 습격하였다. 병력은 약 500명이었다. 모두 개인화기를 소지하고 있었고, 경기관총 6정도 출동하였다. 총 5개 대(隊)로 나누어 나팔을 불며 공격했다. 일본인 세무서원 2명, 중국인 세무서원 1명을 현장에서 사살했다. 지역 주민 50여 명을 납치해 갔다. 현금 2천 원, 식량 1만 원 상당을 탈취하였다. 이에 일본군과 만주군은 중일전쟁 후방지역 안정화 차원에서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강도 높게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군에 의한 토벌뿐만 아니라, 심리전, 교통 차단 등 다양한 봉쇄 작전을 펼쳤다. 그 결과 1939년 봄이 되면 동북항일연군 제2·3로군의 전투력은 거의 소진돼 버렸다. 제2·3로군 중 전투력을 일부 보전한 부대는 소련으로 도주하거나, 소만 국경 지대로 은거했다. 전투력을 유지한 부대는 제1로군 뿐이었다. 이때 제1로군 사령관은 중국인 양정우(楊靖宇)였고, 부사령관은 중국인 위극민(魏極民), 사령관 비서처장 겸 군수처장은 앞서 설명한 한인 오성륜(吳成崙)이었다. 총병력은 3000여 명이었다. 제1로군은 동변도(東邊道)라 부르는 길림, 통화 간도 일대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부대 정비에 들어갔다. 이때 제3차 부대 개편을 단행하였다.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했지만, 병력 손실이 큰 데다, 추가 병력 보충이 어려웠다. 그래서 기존의 로군 아래 군(軍)을 없애고 군(軍) 예하 모든 사(師)를 통합하여 제1·2·3방면군으로 바꾼 것이다. 제1방면군장은 조아범(曺亞範), 제2방면군장은 김일성(金日成), 제3방면군장은 진한장(陳翰章)이었다. 일본군과 만주군은 1939년 10월부터 1941년 3월까지 1년 6개월간 더욱 강하게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전개했다. 이때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양정우가 1940년 2월 23일 몽강현(濛江縣) 남쪽 490고지에서 사살되었다. 그는 부하 몇 명만을 거느린 채 끝까지 항전하다 죽었다. 양정우가 죽자, 부사령관 위극민, 비서실장 겸 군수처장 오성륜,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 등 11명의 동북항일연군 수뇌부는 1940년 3월 사령관 양정우 사후 문제를 논의했다. 첫째 군은 대중 속으로 들어가 병력 획득 공작을 벌인다. 둘째 소부대로 분산하여 가능하면 북상하여 제2·3로군과 합류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때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10명 이하의 여러 개의 소부대로 나누어 북상하도록 하면서 모두 '김일성 부대'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에 김성주가 속한 소부대도 '김일성 부대' 명칭을 사용하면서 소련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이 무렵 일본군과 만주군은 머리를 빗는 식의 섬멸 작전을 뜻하는 빗질 작전, 쇠파리처럼 끝까지 따라붙는다는 쇠파리 작전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제1로군 제1방면군장 조아범이 1940년 4월 8일 부대 내 한중간 민족 대립으로 한인 부하로부터 암살당했다. 제3방면군장 진한장은 1940년 12월 8일 일본군에게 사살되었다. 제1로군 사령관 비서실장 오성륜은 1941년 1월 30일 일본군에게 투항했다. 군 수뇌부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하게 무너졌다. 1941년 3월 말 기준 유기 시체 1282구, 투항 1040명, 체포 890명의 손실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여러 개의 소조직으로 재편하여 각자도생식(各自圖生式: 제각기 살길을 도모함)으로 도주하여 소련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였다. 이때 소련으로 도주한 동북항일연군은 대략 300명이었다. 주요 인물을 살펴보면, 제2로군 총사령 주보중(周保中), 제3로군 총사령 장수전(張壽錢), 제2로군 참모장 최용건(崔庸健), 그리고 문제의 김성주와 그의 처 김정숙(金靜淑)도 이들 무리에 끼어있었다. 1940년 11월이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6-03-09 06:00
사진
배우 이재룡, 강남서 사고 뒤 도주 [서울=뉴스핌] 김가희 기자 = 서울 강남에서 교통사고를 낸 뒤 현장을 떠난 배우 이재룡이 경찰 조사에서 음주운전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이씨를 조사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6일 오후 11시께 서울 강남구 청담역 인근 도로에서 차량을 운전하던 중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뒤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을 떠난 혐의를 받는다. 이재룡. [사진=CJ E&M] 사고 이후 이씨는 차량을 자택에 주차한 뒤 지인의 집으로 이동했다가 경찰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실시한 음주 측정 결과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정지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다만 약물 간이 검사에서는 음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운전 당시 음주 상태가 아니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을 토대로 사고 당시 상황과 음주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한편 이씨는 과거에도 음주와 관련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2003년 강남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음주 측정을 거부해 면허가 취소됐고, 2019년에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강남의 한 볼링장 입간판을 파손해 재물손괴 혐의로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rkgml925@newspim.com 2026-03-08 15:03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