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홍승훈 기자] ## 임원 승진 1순위 부장이 임원자리를 거절했다. 어쩔 수 없이 2순위 후보자에게 권했지만 그 또한 사양했다. 그들은 지금 부장에 머물러 있다.
작년 대우증권 인사 때 벌어진 비하인드 스토리다. 임원자리를 거절한 해당 직원들의 진정한 속내는 기자도 모른다. 단지 정치권 낙하산이라는 '외풍'에 시달린 대우증권의 안타까운 단상이 아닌가 싶다. 언제 어디서 낙하산으로 내려올 지 모르는 사장이기에 파리목숨인 임원자리는 그리 탐나는 자리가 아니었던 것.
증권업계 '부동의' 1위이자 증권 사관학교로 이름을 떨치던 대우증권 조직문화가 변질되고 있다. 대우라는 브랜드에 자긍심을 갖고 최고의 브로커, 애널리스트, 영업맨으로 살아온 직원들로선 언제 잘릴 지 모르는 임원보다 노조의 보호를 받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
외부 낙하산으로 온 CEO는 항상 혼자 오지 않는다. 내 사람이 필요하기에 외부에서 잇달아 임원을 끌어들인다. 이를 위해선 현재의 임원을 찍어내야만 한다. 김기범 전 사장 역시 재임때 10여명에 가까운 임원이 외부서 유입됐다. 앞서 임기영 전 사장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조직은 섞이고 바뀌며 시너지를 낼 수도 있지만 그럴수록 기존 임직원들의 상실감은 커진다.
결국 사원부터 시작해 대우증권에서 프라이드를 갖고 일하던 직원들은 지쳐갔고 이들의 이탈로 인한 대우증권의 위상을 떨어뜨리는데 일조했다. 능력을 인정받고 사원에서 사장이 되자는 포부를 갖기보단 '가늘고 길게 가자'는 마인드를 갖는 직원들이 많아졌다. 위기의 증권업 현실에서 창의적인 업무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 최근 대우증권 사장추천위원회가 한 차례 주주총회를 연기한 끝에 본격적인 활동에 착수했다. 김기범 전 사장이 임기 8개월여를 남기고 돌연 사의를 표명한 지 두 달여 만이다.
뚜렷한 사퇴의 변(辯)도 없이 물러난 김 전 사장에 대한 논란은 무성했지만 세간의 관심은 차기 사장이 누구냐로 금새 돌아섰다. 대우증권 사장들의 전례가 그랬듯 산은지주가 주인인 대우증권 사장 선임에는 외풍과 낙하산 인사관행이 작용한 탓이다. 모두가 홍기택 산은지주 회장과 청와대만 바라봤다.
이후 하마평에 거론된 이들은 예상대로 현 정권 내지는 관피아 등과 엮인 OO라인이었다. 가장 먼저 입에 오르내린 이는 전병조 현 KB투자증권 부사장. 2012년부터 1년간 대우증권 임원으로 근무한 전 부사장은 현 정권 실세인 최경환 부총리의 대구고 후배다. 이유는 단순했다. 당시 전 부사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전혀 모르는 일이다. 난 KB에 있을 것"이라고 가능성을 부인했다.
박동영 전 부사장이 다음 타자였다. 기자들은 박 전 부사장의 부친과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찾아냈다. 부친이 당시 문교부 장관을 역임하는 등 현 정권실세와의 친분이 화제였다. 미국 컬럼비아대 MBA 출신으로 외국계 IB에서 경력을 쌓아온 박 전 부사장은 임기영 전 대우증권 사장과의 인연으로 IBK투자증권과 대우증권에 잠시 몸을 담은 바 있다.
이 외에도 일부 oo라인이 하마평에 올랐다. 하지만 배짱좋던 정부도 세월호 참사 이후 불거진 관피아와 낙하산 논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금융권 최대 이슈가 된 KB금융 사태로 입지가 좁아졌다.
9월로 접어들며 결국 분위기가 바뀌었다. 내부출신에서 사장을 찾겠다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내정도 확정 안 된 상태에서 불거진 낙하산 논란에 청와대와 금융당국이 고심 끝에 내린 결단으로 보인다. 정부측 한 소식통은 "BH에서 '우린 관여 안 하겠다. 낙하산 논란이 나오지 않도록 해달라'고 홍 회장에게 언급한 뒤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귀띔했다.
## 대우증권 차기 사장 선임 이슈는 이렇게 먼 길을 돌아 제자리를 찾고 있다.
최근 대우증권 사장추천위원회는 내부출신 후보자를 대상으로 후보 서류제출과 면접일정을 통보했다. 한 차례 열린 사추위는 추후 세 차례 가량 회의를 더 열고 최종 사장 후보자를 선임, 이달 30일 예정된 임시 이사회에 주총안건으로 올릴 예정이다.
다행히 이번 후보자에 외부 낙하산은 배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삼규 수석부사장을 비롯해 이영창 전 부사장, 김국용, 홍성국, 황준호, 김성호 현 부사장이 포함됐다. 이영창, 홍성국, 황준호 부사장 정도가 사원 때부터 대우증권과 함께한 '토종 대우맨'이다. 이 수석부사장은 산업은행 출신이고 김국용 부사장은 5년 전 IBK투자증권에서 스카웃됐다.
이를 두고 안팎에선 김창희 초대 대우증권 사장이 16년여를 이끌며 증권업계 부동의 1위로 만들어놓은 뒤 흐트러진 대우가 바로 설 수 있는 기회가 온 게 아니냐는 일말의 기대도 나온다. 앞서 대우는 초대 사장 이후 잠시 대행체제를 거쳐 박종수, 손복조 사장 등 대우맨이 회사를 이끌었지만 이후 김성태, 임기영 사장 등이 외풍을 겪었다. 잠시 외유를 했지만 대우증권 출신인 김기범 전 사장 역시 임기를 앞두고 갑작스런 사퇴를 하며 대우는 또 다시 외풍에 휩싸였다. 내부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일부는 줄서기에 급급하고 또 일부는 꿈이 없기에 관심도 없다.
금융권 한 CEO는 "대우증권 차기 사장을 두고 누구는 홍라인이다. 누구는 김라인, 최라인이다 등에만 관심을 둔다. 어떤 자질을 갖춘 사람이 선장이 돼야 하는지, 과거 대우증권 명성을 되찾기 위해 새 선장의 과제는 뭔지, 이 숙제를 제대로 풀 사람은 누군지 등에 대한 논의는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대우증권과 증권가 안팎의 임직원 다수에게 물어봤다. 어떤 사람이 와야할까. 정리하면 이들의 반응은 정통성과 도덕성이었다.
"사실 능력은 큰 차이가 없다. 대우증권을 잘 아는 토종 내부출신이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 흐트러진 조직을 끌어올리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자기 영달 혹은 필요에 의해 왔다갔다 한 사람은 어렵다. 정치적 외풍을 막을 수 있는 떳떳한 도덕성도 중요하다."
[뉴스핌 Newspim] 홍승훈 기자 (deerbear@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