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락 용인하고 있지만 독단적 생산량 감축도 쉽지 않아
[뉴스핌=주명호 기자] 중동 최대 산유국이자 세계 유가 움직임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해온 사우디아라비아가 최근 들어 가격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셰일가스로 부상하는 미국에 대한 견제와 러시아·이란에 대한 재정적 압박 등 의도와 배경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하락세가 지속될 경우 사우디가 그간 공고히 구축해온 원유시장 지배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사진 : AP/뉴시스] |
최근 유가 하락의 직접적인 원인은 수요보다 많은 공급량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따르면 9월 회원국들의 산유량은 일평균 3047만배럴로 8월보다 40만2000배럴이 늘었다. 로이터통신은 이달 산유량이 2012년 11월 이후 최고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미국도 셰일가스 개발 붐 등으로 생산량이 크게 늘면서 전 세계 원유 공급증가에 앞장서고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는 지난 12일 기준 주간 미국 원유 생산량이 880만배럴을 기록해 1986년 이후 최대치를 나타냈다고 밝혔다.
9월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밑으로 떨어진 이후 급속도로 낙폭을 키우면서 산유국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사우디는 오히려 아시아지역 원유 수출가를 인하하겠다는 발표로 가격 하락을 부추기는 모습을 보였다. 생산량 또한 늘렸다. 9월 사우디의 일평균 산유량은 970만4000배럴로 전월 959만7000배럴에서 증가했다.
사우디가 유가인하를 용인하고 있는 것은 우선적으로 현 유가시장 내 점유율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베네수엘라 등 일부 OPEC 회원국들의 생산량 감축 요구에도 쿠웨이트와 함께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점도 이런 이유라는 분석이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OPEC 내 분열 조짐이 일어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문제는 추가적인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한 방법이 생산량 감축밖에 없다는 점이다. 미국과 유럽, 일본의 경우 구조적으로 원유 수요가 하락세를 타고 있다. 이로 인해 원유 수요의 가파른 급등을 기대하기 힘들어 현 생산량이 유지된다면 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생산량 감축을 위해서는 사우디 독단의 결정이 아닌 OPEC회원국들과의 협의가 필요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하지만 쿠웨이트를 제외하고는 지속적인 생산 감축을 받아들일 수 있는 국가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원유수출 의존도가 높은 만큼 이로 인한 적자를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우디가 유가 가격 움직임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이전의 지위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알왈리드 빈 탈랄 알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자. |
일부에서 제기된 관측처럼 유가하락을 통해 러시아 및 이란에 압박을 가해 유리한 협상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사우디의 시장 영향력도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FT는 이 같은 음모론은 계산 착오의 범위가 매우 크다는 점을 지적했다.
사우디 내부에서도 유가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알리 알나이미 사우디 석유장관은 국제유가 하락에도 수요증가로 인해 경제에 미치는 타격은 크지 않다는 발언을 내놨지만, 사우디 왕가의 핵심 인사 중 한 명인 알왈리드 빈 탈랄 알 사우드 왕자는 "유가 하락 파장은 무시할 수 없는 재앙"이라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뉴스핌 Newspim] 주명호 기자 (joom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