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삼성, 합병비율 재산정하면서까지 재추진 이유 없어"..순환출자금지도 걸림돌
[뉴스핌=김선엽 기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무산되면 삼성과 엘리엇의 지분경쟁이 본격화될까. 지난달 초 엘리엇의 공세 직후 삼성물산 주가가 8만원대까지 상승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일부 투자자들이 합병 무산에 베팅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합병이 무산되더라도 삼성과 엘리엇의 지분 경쟁이 일부의 기대대로 현실화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이 합병비율을 조정해가면서까지 합병을 재추진할 이유가 크지 않고, 현행법상 삼성 계열사들이 삼성물산 지분을 추가로 매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15일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위한 삼성물산 임시 주주총회가 이틀 앞으로 다가오면서 아직까지 의결권 행사 방향을 결정하지 않은 소액투자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애국심에 호소하며 국내 대표기업을 해외 투기자본으로부터 지켜내자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번 기회에 국내 기업의 기형화된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소액투자자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이념이나 국가보다 자기 계좌의 투자 수익률이다. 이에 삼성 합병이 성사될 때와 무산될 때의 주가 움직임을 그려보며 찬반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다.
그 중 일부 투자자들은 합병이 무산될 경우, 삼성과 엘리엇의 경영권 분쟁이 심화되면서 삼성물산 주가가 고공행진을 펼칠 것이란 쪽에 베팅하고 있다.
이는 삼성이 "플랜B는 없다", 재합병은 없다"고 공언했지만 합병 비율 재산정을 통해 결국 다시 합병을 추진할 것이란 전망에 기초한다.
최근 3개월 삼성물산 주가 추이 |
하지만 전문가들 중 상당수는 합병 무산 시 지분 경쟁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진단했다. 엘리엇이 경영권 간섭을 넘어서서 막대한 지분을 필요로 하는 M&A(인수합병)를 시도할 가능성이 크지 않아 삼성 역시 급하게 지분을 늘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합병비율이 재조정돼 삼성이 합병을 다시 추진할 가능성도 현실성이 떨어지는 시나리오라고 지적한다. 엘리엇을 포함해 합병에 반대하는 쪽의 주장대로라면 이번 합병의 목적은 오너가의 지배구조 강화인데, 합병 비율을 삼성물산 주주에게 유리하게 재조정할 경우 제일모직 입장에서는 합병을 추진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백광제 교보증권 연구원은 "만약 엘리엇의 주장대로 지배구조 재편만을 위한 합병이라면 합병 비율을 조정하면 삼성그룹 전체에 대한 오너가의 지분율이 떨어진다"며 "정말로 지배구조 재편만을 위한 합병이라고 한다면 재추진할 이유가 있는가란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현행법 상으로도 지분 경쟁이 펼쳐지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 금지규정으로 인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는 삼성전자, 삼성SDI 등 삼성 계열사는 추가적으로 삼성물산 지분을 매입할 수 없다.
김동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순환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는) 계열사들이 삼성물산 지분을 매입하기 어렵다"며 "(오너가가) 개인적으로 사지 않는 한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삼성 입장에서는 지금으로도 그룹을 지배하는데 큰 문제가 없기 때문에 합병을 꼭 재추진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지분 경쟁이 불붙지 않는다고 하면, 합병 무산 시 삼성물산 주가는 합병 전 수준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가치투자로 명성이 높은 한 업계 전문가는 "합병 발표 이후 지배구조가 좋아질 것이란 기대감에 5만원 하던 것이 6만~7만원 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제일모직 주식이 '이재용 주식'으로 누리던 프리미엄 일부가 삼성물산 주식으로 흘러가면서 삼성물산 주가가 올라갔는데 합병이 무산되면 그러한 프리미엄이 사라진다"며 "합병 무산이 주가에는 악재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 연구원 역시 "펀더멘탈이 안 좋은 상황에서 합병만 가지고 주가가 10% 이상 올랐는데, 합병이 무산되면 그 만큼을 도로 뱉어낼 것이란 전망이 비합리적이지 않다고 본다"고 예상했다.
앞선 백 연구원은 "개인적으로는 합병이 성사되는 것이 주가에 유리하다고 본다"면서 "다만, (주가가 출렁일 때) 본인이 잘 빠져나갈 수 있다는 분들에게까지 찬성을 권유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김선엽 기자 (sunu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