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3820번 혹은 9번방 영감님. 배우 황정민(46)에게 붙여진 새로운 이름이다. 지난해 ‘국제시장’을 시작으로 ‘베테랑’ ‘히말라야’까지 선보이는 족족 흥행타를 친 그가 이번에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시작했다. 신작 ‘검사외전’ 속 이야기다.
3일 베일을 벗은 ‘검사외전’은 살인누명을 쓰고 수감된 검사 변재욱이 감옥에서 만난 전과 9범 꽃미남 사기꾼 한치원과 손잡고 누명을 벗으려는 내용을 담았다. ‘군도:민란의 시대’ 조연출 출신 이일형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황정민이 변재욱을, 강동원이 한치원을 열연했다.
“팝콘 영화니까 크게 의미를 두지는 않았어요. 다만 제가 이 작품을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대단히 쉽게 읽혔다는 거죠. 그것도 재밌게요. 왜 우리가 책을 봐도 쉽게 읽히는 게 있잖아요. 대본도 똑같거든요. 아까워서 못 읽는 것도 읽고 괜히 읽었다 싶은 것도 있는데 이건 한 번에 후루룩 읽혔죠. ‘히말라야’ 끝난 뒤라 그런가(웃음).”
황정민의 말대로 ‘검사외전’은 잘빠진 팝콘 무비다. 덕분에 관객은 러닝타임(126분) 내내 생각 없이 마음껏 웃고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관람평을 묻는다면 열에 아홉은 강동원을 말할 거다. 이유야 간단하다. 황정민보다 재밌고 유쾌한 캐릭터를 연기한 강동원이 더 돋보이기 때문. 물론 황정민이 받쳐줬기에 가능하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다. 하지만 배우 입장에서는 섭섭할 법도 하다.
“전 역할로 시나리오를 보진 않아요. 단 한 번도 그렇게 영화를 고른 적이 없죠. 오직 전체적인 그림, 이야기를 봐요. 그렇게 전체를 보면 내가 판을 깔아 줄 때가 있고 나서야 할 때가 있는데 이번엔 후자였던 거죠. 사실 재욱이 치원을 만나고 나서는 되게 가벼워지는 캐릭터였어요. 근데 가벼운 캐릭터는 치원이로 충분하겠더라고요. 그래서 감독님과 대화해서 인물의 전체적인 톤을 바꿨죠. 중심을 잡아주면서 밑바닥에서 묵직하게 가도록요. 그래서 엔딩도 바뀐 거고요.”
영화 속 변재욱은 그렇게 든든한 버팀목이 돼 한치원이 마음껏 놀 수 있는 판을 깔아줬다. 그리고 이는 촬영장 속 황정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전작 ‘히말라야’ 때와 달리 리더 역할을 자처하지 않았다. 대신 변재욱처럼 한 발 물러서서 판을 깔아주는 데 집중했다.
“현장에선 찍기 바빠서 사전에 많이 이야기해서 철저하게 준비했어요. 경험이 많으니까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눴죠. 하지만 그렇다고 현장을 리드하고 그러진 않았어요. 이번엔 그냥 가만히 뒤에서 조정하는 사람(웃음) 혹은 밑바닥에 판을 까는 사람이었죠. 근데 판도 잘 깔아야 위에서 널을 뛰는 사람이 잘할 수 있는 거니까 신경을 썼어요.”
홀로 튀면서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기 때문일까. 관객은 그를 믿기 시작했고 황정민은 이제 이름 석 자로 사람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배우가 됐다. 실제 황정민은 CGV리서치 포털이 응답자 10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6년 배우 조사(표본오차 95%, 신뢰구간 3.08)에서도 ‘믿고 보는 배우’ 주연급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지지율이 무려 40.1%다.
“사실 지금 이래도 어느 순간 ‘안’믿고 보는 배우가 될 수도 있어요. 근데 어쨌든 지금 당장은 믿고 보는 배우라니까 기쁘고 감사하죠. 그게 하루아침에 되는 건 아니니까. 지금까지 작품에 임하는 태도가 변하지 않았고 미친 듯이 해왔던 게 이런 성과를 냈으니까 허투루 하지 않았다는 거잖아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똑같이 까불지 않고 하면 되는 거니까 기분은 좋죠.”
하지만 좋은 반응이 있으면 나쁜 반응도 있는 법. 황정민이 ‘믿고 보는 배우’일지라도 세상 사람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다. 배우 생활 22년 차 베테랑인 그도 이를 모를 리 없다. 정확히 말하면, 황정민은 일부 관객이 자신을 외면하는 이유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지겹다는 이야기가 많죠. ‘국제시장’ ‘히말라야’가 동시에 나와서 그런가(웃음). 사실 그 말에 크게 연연하지는 않아요. 다만 전 이 인물들이 다 다르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연기했거든요. 그런데 관객이 비슷하다고 말한다면 그건 고민해야 할 부분이죠. 그건 제게 문제가 있는 거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몇 년 후에 나오거나 그런 방법을 택하진 않을 거예요. 계속 연기하면서 고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거든요. 배우란 직업을 갖고 있지만,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요. 전 그렇게 계속 성장해 나가려고요.”
자신의 말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그는 올해 또 다른 작품으로 관객과 만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뮤지컬 ‘오케피’ 공연이 오는 28일 막을 내리면 ‘아수라’ 개봉과 ‘군함도’ 촬영 준비에 들어간다. 특히 ‘아수라’에서는 제대로 악인을 보여줄 계획이다. ‘달콤한 인생’(2005)에서 이병헌의 옆구리를 칼로 찔러대던 백사장 보다도 더. 황정민은 “‘아수라’가 개봉하면 분명 (대중으로부터)또 다른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아수라’에서는 완전 악의 근원으로 나오거든요. 한없이 못된, 다중인격의 정치인이죠. 그 다음 작품은 ‘군함도’인데 촬영은 5~6월쯤으로 보고 있어요. ‘오케피’ 끝나면 일본에 가보려고요. 근데 영화 제작이 기사화돼 걱정이죠. 혹시라도 입국을 막을까 봐. 그래도 소지섭, 송중기와 연기하는 건 기대되네요. 뭐, 무대야 당연히 계속할 거고요. 드라마요? 드라마는 많이 들어와야 고민을 할 텐데 그렇지가 않아요. 내 피부가 더러워서 그런가(웃음).”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이형석 기자 (leehs@newspim.com) 페이스북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