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차량 수천대 저장 시설로 둔갑
[뉴욕 = 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구조적인 과잉 공급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저장 시설을 구하지 못한 미국 석유 업체들이 필살기를 동원하고 있다. 철도 차량이 새로운 원유 저장 시설로 동원되는 모습이다.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가 배럴당 30달러 내외까지 떨어지자 철도를 이용한 원유 유통이 손실을 내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운송을 위한 철도 차량 수 천대가 저장 시설로 둔갑했다.
원유 생산 현장 <출처=AP/뉴시스> |
공급 과잉 문제가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가운데 헤지펀드를 포함한 투기거래자들은 유가 상승에 적극 베팅하고 나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투기거래자들의 상승 포지션이 지난해 11월 이후 최고치에 이른 것으로 집계됐다.
머스켓 코프의 J. P. 펠드 한센 이사는 29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유가가 바닥으로 떨어진 데다 운송을 위한 철도 차량 역시 공급 과잉을 빚으면서 차량이 저장 시설로 동원되는 새로운 현상이 번지고 있다”며 “석유 업체들 사이에 새로운 전략이 수지가 맞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저장 시설로 사용되는 철도 차량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영국 석유업체 BP의 밥 더들리 최고경영자(CEO)는 전세계 모든 수영장과 물탱크가 원유로 채워질 것이라는 농담으로 절박한 상황을 전한 바 있다.
석유 메이저뿐 아니라 트레이딩 업체들도 저장 시설을 찾지 못해 동동걸음을 하고 있고, 이들 사이에 철도 차량 구입이나 임대 문의가 빗발친다고 업계 관계자는 전했다.
산유량 동결이 시행돼도 수요가 부진한 만큼 수급 균형이 단시일 안에 이뤄지기는 어렵고, 때문에 추세적인 유가 상승을 기대하기 이르다는 의견이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 지배적이지만 투기거래자들은 상승 베팅을 대폭 늘리고 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따르면 지난 23일 기준 한 주 사이 헤지펀드를 포함한 투기거래자들의 WTI 상승을 겨냥한 포지션이 14% 급증, 지난해 11월 이후 최대 규모로 늘어났다.
존 킬더프 어게인 캐피탈 파트너는 이날 블룸버그통신과 인터뷰에서 “감산에 대한 추측이 오갈 뿐 산유국들 사이에 실제 적극적인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고 있고, 원유 시장의 펀더멘털에 변화가 발생한 것은 아니다”라며 “하지만 러시아와 사우디 아라비아의 산유량 동결 합의와 감산에 대한 기대가 투자 심리와 유가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투자은행(IB) 전문가들은 최근 움직임을 감산을 향한 출발점으로 해석하고 있다. 유가가 단시일 안에 급반등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지만 상황이 올바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주 투기거래자들의 WTI 순매수 포지션은 11만554건으로 전주 대비 1만3385계약 늘어났다. 같은 기간 순매도 포지션은 6.7%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머니매니저들의 브렌트유 상승 베팅 역시 증가했다. 이들의 브렌트유 상승 포지션은 32만289건으로 3만5416건 증가했다. 지난주 수치는 2011년 초 이후 약 5년래 최고치에 해당한다.
앞서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 글로벌 원유 생산은 하루 9516만배럴을 기록했다. 반면 수요는 하루 9315만배럴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상반기 글로벌 원유 공급 과잉이 하루 평균 175만배럴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우디와 러시아의 산유량 동결 등 관련 국가들의 대응에 따라 공급 과잉 문제가 다소 진정될 수 있지만 균형점에 이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IB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뉴욕 특파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