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 효율성 따져보면 휘발유, 경유 경쟁력 높아"
[뉴스핌=김신정 기자]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면서 정유업계도 변화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자동차에 휘발유나 경유 대신 전기를 쓰게 되면 국내 정유사들은 적잖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유업계는 미래를 대비해 탈(脫)정유화 전략에 나서는 등 발빠르게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14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일찌감치 정유, 석유화학, 전기차 배터리 사업군으로 영역을 확대하며 다양한 사업 체계를 갖췄다.
수십년 전부터 전기차 배터리사업에 뛰어든 SK이노베이션은 지난달 전기차 1만대 규모의 공장 생산설비 추가 증설 공사에 돌입했다. 올 3분기 안에 완성될 예정으로, 기존 연간 전기차 3만대 규모의 충남 서산 배터리 공장이 4만대 규모로 확대됐다.
SK이노베이션은 이미 7년치 이상의 공급물량을 확보해 공장을 24시간 풀 가동 중으로, 올해 3만대를 웃도는 공급실적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다른 배터리 경쟁업체인 LG화학과 삼성SDI보다 뒤늦게 배터리사업에 뛰어 들었지만 투자와 연구개발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 결과,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와 배터리 셀 공급 계약을 맺었고, 중국 베이징 자동차와 국내 기아차 등에도 공급하고 있다.
반면 또 다른 정유사인 GS칼텍스와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은 먼 미래지만 조금씩 다가올 전기차 시대를 대비해 탈 정유화에 매진하고 있다. 과거 1990년대만 해도 정유사들은 거의 휘발유, 경유 생산에만 치중했던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서산 공장 전경 <사진=SK이노베이션> |
국내 4대 정유사들의 원유 정제 생산제품 260만 배럴 가운데 주유소에 납품하는 자동차용 휘발유와 경유의 비중은 약 20% 가량인 60만 배럴 정도다. 전기차가 지금보다 더 상용화 될 경우 정유업계도 적잖은 타격을 받는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정유사들은 고부가가치 석유화학제품의 비중을 늘리며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자동차나 전자부품 소재 등의 석유화학제품 생산을 늘려 나가고 있다. 하지만 당장 휘발유, 경유 차량의 경쟁력이 금세 사라지진 않을 것으로 봤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전기차 상용화는 현재 유럽도 마찬가지로 정부의 보조금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정부의 보조금 없이도 가능한 에너지 효율성과 경제성을 따져 휘발유, 경유 차량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먼 미래 전기차가 상용화 될 경우 정유업계가 받는 영향은 무시못할 것"이라며 "이런 이유 등으로 정유부문의 수익성은 오래전부터 한계에 이르렀다고 판단해 일찌감치 탈 정유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정유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제품인 나프타의 경우 공급이 모자라 해외서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휘발유, 경유 생산과 함께 고부가가치 석유화학제품 생산에 주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GS칼텍스는 정유, 석유화학, 윤활유 등 기존 사업에서 핵심기술을 기반으로 한 제품 발굴에 나서고 있다. GS칼텍스는 지난 2월 한국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멕시코에 연간 생산 3만톤 규모의 복합수지 공장을 세웠다. 국내 정유사 가운데 복합수지를 생산하는 곳은 GS칼텍스 뿐이다.
복합수지는 석유에서 뽑아낸 일종의 플라스틱 소재로 가전제품 부품과 자동차 부품 재료로 사용된다. GS칼텍스는 이미 국내와 중국, 체코 등지에도 복합수지 생산공장을 두고 있다.
이외에 GS칼텍스는 사탕수수대, 옥수수대에서 뽑아내는 차세대 바이오 연료인 '바이오부탄올'개발에도 주력하고 있다. GS칼텍스는 바이오부탄올 상업화를 위한 준비단계에 들어섰다.
에쓰오일은 울산 온산공장에 오는 2018년까지 약 5조원을 투자해 잔사유(정제과정에서 나오는 찌꺼기 기름)고도화 시설과 올레핀 공장을 짓는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에쓰오일의 고품질 휘발유와 폴리프로필렌 등의 화학제품 생산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일각에선 정유 시장과 전기차를 포함한 신재생에너지 시장을 따로 보는 시각도 있다. 서로 다른 영역으로 평행선을 달리듯 시장이 확대해 나갈 것이라는 설명이다.
손지우 SK증권 연구원은 "전기차 수요가 증가하고 있지만 석유시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시장영역이 엄연히 다른 것으로 전기차 영향으로 에너지 총 소비가 줄어들 개연성은 있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김신정 기자 (az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