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홍 전 회장, '혈세투입' 대우조선에 직격탄
현대중공업, 6년 전 군산조선소 접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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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조인영 기자] "지속가능한 청사진 없는 구조조정만 강행하다 보니 갈등만 일어난다."
유관홍 전 성동조선해양 회장은 만나자 마자 그동안 드러내지 못했던 쓴소리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세계1위 한국조선이 막 태동하던 1973년 조선업계에 발을 들여 놓은 유 전 회장은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중공업, 성동조선해양 등에서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한 국내 대표 조선CEO다. 이런 그에게 현재 조선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은 낯설고 눈물겨운 광경이다.
유례없는 불황으로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빅3' 조선사들은 수 십조원 규모의 강도 높은 자구계획을 마련, 인력감축 등 대대적인 몸집줄이기에 나섰다. 반면, 수십만 근로자를 대표하는 노조들은 회사의 구조조정에 강력 반발하며 노사간 충돌이 일촉즉발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유 전 회장은 시작부터가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모두가 공감할만한 대안이 없는 상태서는 뭘 해도 안된다는 거다.
전운이 감돌고 있는 조선업계에 유 전 회장은 전 직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미래상이 먼저 제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방글 기자> |
유 전 회장은 지난 20일 뉴스핌과 가진 인터뷰에서 "조선이나 해운산업이 앞으로 어떻게 갈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이 없다. 나도 힘을 보태면 회사를 살릴 수 있다는 안건이 나와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인원만 줄이겠다고 하니 쟁의만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라고 꼬집었다.
유 전 회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부터 조선사들이 공급과잉 상태임을 지적했던 인물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블록 공장으로 전락한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부터 문을 닫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그 당시에도 조선과 해운에 대한 구조조정 목소리가 있었지만 '지금 잘되고 있는데 무슨 구조조정이냐'는 반응이었다. 특히 CEO들이 제대로 된 역할을 못했다"며 "현정은 현대상선 전 사장이나 최은영 한진해운 전 사장 모두 전문가가 아니다. 유능한 CEO를 두던지, 아니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 최대주주로만 있던지 하는 형태로 가야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조선소도 마찬가지다. 주인이 없는 곳엔 CEO 모럴해저드가 생긴다. 주인이 없으면 종업원이라도 제대로 일해줘야 한다. 전부 국가 돈이, 우리 세금이 들어가는 데 여태 적자를 숨기고 있다가 이제서야 분식회계 얘기가 나온다. 이게 뭔가”라고 비판했다.
이는 조선업계의 대표적인 방만경영 사례로, 수 조원의 혈세가 투입될 예정인 대우조선해양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노사간 구조조정 갈등에는 협력업체와 대형사간 동반자적 인식 부족을 이유로 꼽았다.
유 전 회장은 "유동성 위기에 대기업은 견딜 체력이 있지만 중소기업은 부도로 이어지기 쉽다. 중소기업이 어려워지면 책임의식은 고사하고 '내가 언제 공장 지으라고 했느냐'고 반문한다"며 "일본은 협력사에 대한 개념이 다르다. 적정한 이윤을 계산해 얼마의 이익을 줘야 같이 갈 수 있을 것인가를 고려한다. 한국은 그런 개념 없이 가격에만 끌려다닌다. 여기저기서 진정서를 넣어서 장기적인 파트너십이 생길 수가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어 "군산조선소를 예로 들면, 그 때 CEO들은 배 몇 척 만들어 군산조선소 만들었던 원가 본전을 다 찾았다고 얘기한다. 잘못된 생각이다. 조선소가 문을 닫으면 그 몇 배의 자금이 투입된다. 군산 인근에 부도난 협력사들도 파다하다. 그런데도 현대중공업 누구 하나 책임을 운운하는 사람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런 위기에 대한 해법은 있을까? 유 전 회장은 현대중공업 먼저 몸집을 줄이면서 중소형사와 같이 살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제시한다.
“조선사 대표로 현대중공업이 청사진을 내놔야 한다. 경쟁력이 왜 떨어지나? 평균연봉이 8000만원이다. 중소조선소에서 똑같이 지으면 연봉 3000~4000만원이면 해결된다. 현대중공업이 꼭 할 수밖에 없는 걸 제외하곤, 나머지는 전부 협력사에 내줘야 한다. 8000만원에서 하던 일을 3000~4000만원에서 할 수 있는 구조조정이다.”
남는 인력에 대한 효율화 방안도 제안했다. 유 전 회장은 "고임금을 받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업무는 하청을 줘도 된다. 단순한 업무를 맡는 사람은 적정 임금을 받으면서 일할 수 있도록 이동할 필요가 있고, 직종별로 임금 상한선을 정해 능력에 따라 일을 하면된다"고 설명했다.
현대중공업 노사 갈등의 쟁점으로 떠오른 사업분사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어떤 아이템을 분사하겠다는 소리만 들리지, 어떤 일을 어떻게 해서 경쟁력을 갖게 하겠다는 건지 말이 없다. 이런 청사진 없이는 제대로 된 구조조정을 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선사들의 적자주범인 해양플랜트에 대해선 "조선사들이 기본설계를 하지 않으니 기술 향상이 될 수 없고, 물량 산출도 안됐다. 만들면 만들수록 적자니 일본은 애시당초 해양플랜트에 뛰어들지 않았다"며 "우리 조선사들은 기본설계를 한국에 맡기지 않으면 해양플랜트를 만들지 않겠다는 공동선언이 필요하다. 그런 자세 없인 절대로 이익이 창출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간 합병설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지금은 (대우조선을) 공짜로 줘도 가져갈 곳이 없다. 정부가 대우조선을 하나의 모델로 삼아 구조조정할 수 있는 찬스다. 단순히 M&A를 해서 골치 아픈 대우조선을 떨쳐버리겠다고 생각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술 개발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조선산업을 하지 않는 나라가 없고,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면서 선가(배값)는 하락한 상황"이라며 "우리는 조선사들간 기술 공유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업그레이드 된 기술을 공유하면서 더 나은 기술을 다같이 발굴하는 셈이다. 기술 성장 없이는 세계 시장에서 이길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함께 정부가 구원투수로서 조선사 살리기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실직한 근로자에게 임금 일부를 보전해준다는 것은 진정한 역할이 될 수 없다"며 "해운사들이 자국 기업에 발주할 수 있도록 방안이 필요하다. 독일처럼 국민 누구나 선박 펀드에 투자해 조선사는 배를 만들고 해운사는 이윤을 남길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렇듯 제대로 된 구조조정 처방에도 조선 시장은 금방 회복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유 전 회장의 진단이다.
그는 “2003년부터 시작된 호황기는 죽었다 깨어나도 다시 오지 않는다. 전 세계 배들이 남아돈다. 그러니까 현대가 앞장서 대우와 삼성에 '우리가 30척 줄일께 너네도 케파 줄여라'라고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이런 역할을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CEO도, 오너도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유관홍 전 회장은 1945년 부산에서 출생했다. 동래고, 성균관대를 나와 1973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했다. 현대중공업 생산총괄, 중장비사업본부장, 건설장비본부장 등을 거쳐 현대미포조선 사장, 현대중공업 사장, 성동그룹 회장을 역임하는 등 유일무이한 조선 3사 CEO 이력을 갖고 있다. 대표적인 조선 1세대 인물로 손꼽힌다.
[뉴스핌 Newspim] 조인영 기자 (ciy81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