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한결같음, 혹은 변하지 않음. 배우 안성기(66)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키워드다. 아무리 세상과 환경이 변해도 인간의 본질 자체까지 그래서는 절대 안된다고 그는 강조한다. 물론 이 신조를 가장 잘 지키는 사람은 안성기 본인이다. 다만 이런 그도 한결같아서는 안된다고 여기는 분야가 있다. 바로 연기. 경력 59년 차, 출연작만 160여 편에 달하는 이 베테랑 배우는 여전히 변신을 꿈꾸고 기꺼이 도전에 응한다.
안성기의 신작 ‘사냥’이 29일 베일을 벗는다. ‘최종병기 활’(2011)과 ‘끝까지 간다’(2013) 제작진이 만든 이 영화는 금을 독차지하기 위해 오르지 말아야 할 산에 오른 엽사들과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봐버린 사냥꾼의 추격을 그린 스릴러다. 안성기는 사냥꾼 기성을 연기, 긴 백발을 휘날리며 산을 누빈다.
“제가 영화를 해오던 시대는 지금보다 조금 힘들었어요. 때문에 가진 사람보다는 못가진 사람, 권력을 쥔 사람보다는 못 쥔 사람 역할을 많이 했죠. 기성처럼 히어로라 부를 역할 자체가 없기도 했고 하기도 힘들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신선했죠. 더욱이 성기가 기성(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안성기를 염두에 둔 제작진은 주인공의 이름을 안성기의 ‘성기’를 거꾸로 한 ‘기성’으로 설정했다)이 된 시나리오 아닙니까. 그래서 더 설레고 감사했어요. 물론 지금은 잘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꽉 찼고요. 책임감이 커요. 난생처음 언론시사회 때 안정이 안되는 경험을 할 정도니까(웃음).”
‘사냥’이 언론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은 뒤, 안성기는 한국의 해리슨 포드, 리암 니슨이라는 호평을 얻었다. 극중 펼치는 압도적인 액션 연기 덕이다. 그냥 걷기도 힘든 산속에서 안성기는 무려 뛰고 굴렀다. 어디 그뿐이랴. 자신보다 훨씬 덩치 크고 젊은 엽사들에게 총구를 겨누는가 하면 몸싸움도 피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60대 배우가 이런 액션 연기를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사격은 경기도 화성 클레이 사격장에서 연습을 많이 했어요. 총을 다루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죠. 또 소리, 느낌 등은 이미 완성된 상태라 편하게 했어요. 산을 오르내리는 것도 마찬가지죠. 오래전 학교 다닐 때는 매주 갈 정도로 산을 좋아했습니다. 바위 타는 연습도 할 정도로요. 근데 군대에서 OP에 6개월간 있었더니 산이 질려버렸어요. 재미로 있던 게 아니라서 그런가 봅니다(웃음). 그 후로는 좋다는 걸 알면서도 잘 가지 않게 됐죠. 어찌 됐던 체력적으로는 힘든 부분은 없었어요.”
실제 안성기는 ‘사냥’에서 젊은 후배들보다 더 강한 체력, 탄탄한 몸을 자랑한다. 안성기는 꾸준히 해 온 운동 덕분이라고 했다. 특히 극 초반부 확인(?)할 수 있는 그의 몸은 출연 배우는 물론, 극장을 나오는 관객 입에서도 여러 차례 거론될 만큼 완벽에 가깝다.
“그 신만을 위해서 특별히 운동하진 않았어요. 제가 평소에도 많이 뜁니다. 한 40년 동안 비슷한 운동을 해왔어요. 하루 이틀 만에 몸을 만든 건 아니죠. 운동량을 늘려서 갑자기 몸을 키운 게 아니라서 이 역시 힘들진 않았고요. 사실 기성에게 설득력을 주기 위한 신이었어요. 나중에 조진웅 씨와 맞싸우니까 나이는 있어도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힘을 그런 식으로 보여주면 좋겠다 싶어서 설정한 건데 화제가 됐으니 성공한 셈이네요(웃음).”
이처럼 크게는 60대 배우가 중심에 있는 흔치 않은 액션물을 찍었다는 것, 작게는 리얼한 호우 신(이번 작품에서 안성기는 연기 인생 처음으로 비가 오는 날 호우 신을 촬영했다)을 찍었다는 점에서 ‘사냥’은 안성기에게 또 다른 도전이자 새로움으로 남게 됐다. 마주한 안성기는 “그저 이렇게 매번 새롭고 낯선 영화 작업이 너무 좋다”며 미소를 지었다.
“특정 부분을 떠나 전 늘 영화 작업이 새롭습니다. 영화 속 주제나 만드는 사람, 또 그 속에서 만나는 인물이 매번 다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전 늘 낯설고 노련하지 않고요. 하지만 또 그렇기에 늘 새롭고 기대되고 신기하고 지루하지 않죠. 아마 그래서 영화는 아무리 해도 지치거나 싫증 나지 않나 봅니다. 연기적 고민이요? 당연히 지금도 하죠. 큰 고민은 아니지만, 저 역시 조금 더 다른 표현이 없을까, 혹은 저 감정은 어떨까 궁금하고 그래요(웃음).”
감히 끝을 그릴 수 없는 배우, 안성기의 다음 작품은 영화 ‘매미소리’다. ‘워낭소리’(2008) 이충렬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으로 상을 당한 집들을 다니며 슬픔을 잊게 해주는 진도의 무형문화재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다.
“함께 열심히 연기하던 선배들이 대부분 관뒀어요. 지금까지 왕성하게 활동하는 분이 없죠. 그래서 이번 영화를 포함해 주연으로 하는 작품들이 개인은 물론, 영화계에도 상당한 의미가 있는 겁니다. ‘사냥’의 성공이 간절한 것도 같은 이유죠. 잘돼야만 또 도전하는 사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작품이 계속 안되면 더는 기획이 안될 테고 그럼 배우는 정년이 짧다고 생각하겠죠. 반대로 이런 작품이 성공해서 또 다른 길을 만든다면 후배들 역시 여기까지는 올라올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전 이를 기회로 배우의 정년을 넓히고 싶은 바람이 간절하고요.”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