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사랑스럽다. 배우 정유미(33)에게 가장 어울리는 문장이다. 멀게는 드라마 ‘케세라세라’(2007)와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2010), 가깝게는 ‘로맨스가 필요해2’(2012), ‘연애의 발견’(2014)까지. 그간 프레임에서 봐온 그는 정말이지 참 사랑스러웠다. 물론 현실 정유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소 삭막한(?) 인터뷰 장소를 기억해뒀다가 다음 날 꽃을 한 아름 안고 등장한 그는 “꽃이 있으면 더 좋을 거 같아서요. 보세요. 있을 때랑 없을 때랑 다르죠?”라며 환하게 웃었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배우가 또 있을까.
특유의 사랑스러움으로 남성은 물론, 여성 관객까지 사로잡아 온 정유미가 신작 ‘부산행’을 선보였다. 이번에는 ‘러블리함’과는 거리가 먼 재난 블록버스터. 지난 20일 베일을 벗은 이 영화는 전대미문 재난이 대한민국을 뒤덮은 가운데 서울역을 출발한 부산행 열차에서 일어나는 일을 담았다. 극중 정유미는 임산부 성경으로 열차에 탑승, 목숨을 건 사투를 벌였다.
“시나리오 보고 감독님 처음 만나고 ‘하고 싶다, 해야겠다’고 생각하기까지 시간이 얼마 안 걸렸어요. 감독님 만나서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눈 것도 아니죠. 소속사 식구들과 다 같이 있는 자리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정도였어요. 특별한 것도 아닌, 그냥 평범하고 가벼운 이야기였죠. 그런데 이상하게 호기심이 생기면서 감독님에 대한 믿음이 갔어요. 구성하고 만들어가는 모양새에 대한 믿음도 컸고요. 그래서 바로 회사에 ‘나 이거 가고 싶다, 가야 할 거 같아’라고 말했죠. 그렇게 믿음이 가고 나서는 기대고 의지하면서 해나갔고요. 최선의 선택을 했으면 집중해서 잘해내는 게 제 몫이니까요.”
극중 정유미가 열연한 성경은 남편 상화(마동석)와 함께 부산행 KTX에 오르게 된다. 성경은 상화를 이기는(?) 유일한 사람이자 바이러스로 아수라장이 된 열차 안, 만삭의 몸을 이끌고도 주변을 챙기는 정 많은 인물이다. 순간순간 닥치는 위급한 상황에서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현명함도 갖췄다.
“사실 성경의 감정이나 행동을 100% 이해할 수는 없어요. 저라면 아마 벌써 좀비한테 물려 죽었을 거예요(웃음). 그렇게 정의롭지도 못하고요. 근데 이해가 안되는 걸 이해되게끔 구현해 내는 게 배우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 전 그렇거든요. 느껴보지 못한 것들도 연기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죠. 그게 제 안에 있는 모습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이해가 안되는 데도 불구, 표현해서 잘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뿌듯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죠(웃음). 어쨌든 항상 그런 부분은 고민하고 또 보고 들으면서 제 나름대로 만들어 나가는 듯해요.”
그렇게 정유미는 이번에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캐릭터를 구축해 나가며 성경이란 인물에 설득력을 부여했다. 개인으로 보면 다른 작품들과 달리 고민하고 생각할 거리가 많았던 과정이었지만, 배우 정유미에게는 대체로 무난했던 시간이었다.
“촬영을 앞두고는 늘 그렇듯 설렜어요. 장르물이라는 특수성과 세트라는 한계가 있긴 했지만, 부담으로 다가오진 않았죠. 그 안에서 표현해 내야 하는 게 제 일이니까요. 물론 ‘될까? 안될까?’라는 막연한 궁금증은 있었죠. 근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갇혀있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감정표현이 굉장히 자유로웠어요. 좀비를 만나고 감정이 짧게 짧게 보이는 부분들도 준비 시간이 길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표현이 됐죠. 그래서 성취감이 컸어요. 작품마다 음악의 도움을 받거나 가만히 있는 거로 감정을 조절하면서 에너지를 분배하곤 하는데 여기서는 순간 집중이 딱 됐죠. ‘이게 되기도 하는구나’ 싶었어요(웃음). 정말 시원하게 재밌게 잘 찍은 듯해요.”
시원하고 재밌었다고 당시를 회상하는 그에게 질문을 바꿔 물었다. 정신이 아닌 육체적으로 힘든 점은 없었느냐고.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사실 ‘부산행’의 촬영 현장이 그리 편안하지는 않았다. 특히 정유미에게는 임산부라는 설정이 더해진 상황. 앞서 제작보고회에서 말했듯 그는 촬영 때마다 배에 소품을 차야 했다. 하지만 정유미는 “오히려 저절로 운동이 됐다”며 기분 좋게 웃었다.
“복근까지는 아니고 라인이 잡혔어요. 근데 무겁긴 해도 힘들진 않았어요. 제가 뭐가 힘들어요. 팔 꺾고 뛰는 사람도 있는데(웃음). 물론 어떤 작품이든 하고 나면 정신적, 체력적인 부분이 고갈되기는 하겠죠. 하지만 그런 건 작품을 만들면서 어떤 식으로라도 에너지로 채워져요. 오히려 부대끼고 교류하다 보면 모든 게 더 풍부해지죠. 그렇게 채워지면서 단단해지는데 이번에도 그랬어요. 진짜 체력이 힘든 건 지금부터죠. 무대 인사 다녀야 해서 체력 관리를 열심히 해야 할 듯해요. 그러고 홍보까지 끝나면 맛있는 걸 엄청 먹으려고요. 제가 한 번 먹을 때 진짜~ 많이 먹는데 아무래도 많이 먹고 움직이면 불편하니까 요즘에 통 못먹었거든요. 정말 맛있는 걸로 먹을 거예요(웃음).”
정유미의 연기를 볼 수 있는 바로 다음 작품은 김종관 감독의 신작 ‘지나가는 마음들:더 테이블’이 될 듯하다. 그를 비롯해 임수정, 정은채, 한예리까지 네 명의 배우가 한 카페에서 차례로 겪는 이야기를 다룬 저예산 옴니버스 영화로 정유미는 총 2회차를 소화했다.
“이렇게 이 작품에 관심을 많이 가져주실지 몰랐어요(웃음). 놀랍고 감사하죠. 영화를 찍으며 논다는 생각으로 편안하게 참여한 작품이에요. 함께 연대한다는 기분으로 찍었죠. 사실 전 상업 영화나 저예산 영화, 이런 걸 구분 짓지 않아요. 그냥 다양하게 연기할 기회가 주어져서 감사한 마음이죠. 그저 전 이런 기회가 왔고 그 기회를 잡았다면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그다음 차기작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요. 그때그때 페이스에 따라 연달아 작품을 하고 싶을 때가 있고 아닐 때가 있죠. 그래서 늘 그랬듯이 다음 작품이 언제,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촬영하진 않아도 어떻게 하면 좋은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잘 살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살아요(웃음).”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 <사진=매니지먼트숲·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