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김학선 기자] 1950년 6월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불과 사흘 만에 서울이 떨어졌다. 대한민국은 한 달 만에 낙동강 지역을 제외한 한반도 전 지역을 빼앗겼다. 이에 국제연합군 최고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는 성공확률 5000분의 1의 새로운 작전을 계획한다.
서두에 늘어놓은 이야기는 1950년 9월15일, 6·25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설명이다. 그리고 역사를 바꾼 이 비밀 연합작전은 정전협정일이 체결된지 63주년째인 지난달 27일, 스크린에 다시금 펼쳐졌다. 배우 이범수(46)는 림계진으로 분해 우리의 반대편에 섰다.
“언론시사회 때 보고 며칠 뒤 인천 시사회에서 봤어요. 두 번째 보니 더 재밌었죠. 아무래도 처음에는 아쉽거나 미흡한 점이 보였다면, 두 번째에는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어요. 팔불출 같은 이야기겠지만(웃음), 깜짝 놀랐죠. 정말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어요. 물론 만듦새에 있어서 부족한 부분도 있었을 거예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요. 하지만 제작사나 감독님 입장에서는 정전협정일인 7월27일이 개봉 적기라고 생각했고 그 기간 내에서 우리 모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극중 이범수가 열연한 림계진은 북한국 인천 방어사령관이다. 철두철미하고 냉철한 판단력, 뛰어난 전략 전술의 소유자. 하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극악무도하고 비인간적인 캐릭터이자 시종일관 “피가 이념보다 중요하다”고 외치며 사상개조에 앞장서는 인물이다. 영화가 베일을 벗은 후 ‘반공 영화’라는 혹평(?)을 들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 영화는 ‘공산주의는 저래?’라는 개념을 갖고 출발한 게 아니에요. 예를 들면 복싱 선수인데 권투를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죠. 복싱 선수인데 폭력적이고 못된 사람의 이야기고요. 근데 이걸 보고 복싱선수가 전부 다 폭력적이고 못됐다고 하면 억울하죠. 그리고 전 처음 시나리오를 보고 림계진을 고뇌하는 사상가로 봤어요. 신문물을 접한 엘리트이자 민족을 위한 사람인 거죠. 인민을 위해 국민을 위해 싸우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영화에서 지칭하듯 림계진을 빨갱이로 보든, 아니면 이범수의 말대로 고뇌하는 사상가로 보든 상관없이 어찌 됐건 이 캐릭터는 ‘인천상륙작전’ 속 악의 축, 악역이다. 그리고 그간 다양한 작품에서 크고 작은 악역을 맡아왔던 이범수는 또 한 번 ‘역대급 악역’을 탄생시켰다는 찬사를 들었다.
“사실 이번에는 쉽지 않았어요. 여러 번 해봤으니 더 편하지 않으냐고 하는데 오히려 처음 할 때 마음껏 할 수 있죠. 두 번, 세 번이 되면 점점 연기할 폭이 제한되니까요. 기왕이면 겹치지 않게 해야 하잖아요. 림계진 역시 처음에는 외모부터 모든 면에서 날렵하게 접근하려 했어요. 근데 ‘신의 한 수’ 살수 역할을 한 배우로서 그 지점을 쓸 수가 없었죠. 이미 보여준 모습이니까요. 그래서 좀 능글맞고 기름진 이미지로 간 거죠. ‘신의 한 수’와는 변별점이 있게요. 그래서 살도 한 7kg 정도 찌웠고요.”
이처럼 독하디독한 악역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또 다른 의미에서 고충이 있다. 바로 역할과 자신을 분리하기가 쉽지 않은 것. 실제 모 배우는 역할에 몰입, 날카로운 신경 때문에 가족에게 해가 될까 촬영을 하는 동안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머물기도 했다.
“맞아요. 당연히 힘들 수 있다고 봅니다. 제가 학창시절 연기를 배울 때 선배들이 ‘연기할 때는 그 캐릭터에서 빠져나오면 안 돼’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죠. 또 그때는 그게 굉장히 멋져 보였고요. 근데 지금 어떠냐. 그건 현실적이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그 역할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는 단초는 지니고 있되 일상생활에서도 젖어있을 필요는 없다고 보는 거죠. 살수의 캐릭터로 살 수밖에 없다면, 림계진으로 살 수밖에 없다면 배우로 삶의 피폐하지 않겠어요? 명확한 일과 일생생활의 구분은 있어야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명확한 일과 일상생활을 구분하는 것. 아마 그 이유에는 토끼 같은 아이들도 있을 거로 생각했다. 요즘 딸 소을 양, 아들 다을 군과 함께 KBS 2TV 예능프로그램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 중인 이범수는 그야말로 ‘딸 바보’ ‘아들 바보’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딸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얼굴에는 금세 화색이 돌았다.
“소을이가 두 살인가 세 살 때 한 번은 드라마에서 제가 죽는 장면이 있었죠. 근데 그걸 보고 운 거예요. 진정시키느라 애 좀 먹었죠(웃음). ‘아빠 안죽어, 연기는 노는 거야. 역할 놀이야. 범인도 하고 경찰도 하는 거야’라고 설명했어요. 소을이가 배우 한다고 하면요? 안말릴 거예요. 배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선 아이가 하고 싶은 거에 관심을 기울이고 싶어요. 본인이 행복을 느낀다면 그게 뭐든 적극 권장하고 싶죠. 거기에 소질도 있다면 금상첨화고요. 소을인 (배우에) 소질이 좀 있는 편인 듯한데 우선 다른 쪽도 권해보고 여러 분야 맛보게 해준 다음 선택하게 해주고 싶어요.”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김학선 기자 (yooks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