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과거의 그는 그로테스크하고 비일상적이었다. 사람 자체가 그렇다는 말은 당연히 아니고 스크린 속 모습이 그랬다. ‘복수의 나의 것’(2002)의 류는 물론이거니와 ‘지구를 지켜라’(2003) 병구, ‘화성으로 간 사나이’(2003) 승재, ‘예의없는 것들’(2006) 킬라. ‘박쥐’(2009) 강우야 말할 것도 없다. 최근작인 ‘빅매치’(2014) 에이스도 역시나다. 그의 필모그래피 중 무난한 작품을 구태여 떠올려 봐도 입술이 파열된 채 태어난 형(영화 ‘우리형’, 2004)이거나 느닷없이 살인 사건에 휘말린 아버지(영화 ‘런닝맨’, 2013)였으니까.
하지만 이번만큼은 ‘진짜’ 아니다. 기괴하지도 특이하지도 않다. 뭐랄까. 힘들게 찾지 않아도 옆에 한 명쯤을 있을 듯한 평범한 아재다. 아등바등 살다 보니 남은 건 권고 퇴직. 날 선 표정은 사라진 지 오래된 그 얼굴에서는 어째 짠내마저 난다.
배우 신하균(42)이 신작 ‘올레’를 들고 극장가를 찾았다. 오는 25일 개봉하는 ‘올레’는 퇴직 위기에 놓인 대기업 과장 중필과 사법고시 응시생 수탁, 방송국 간판 아나운서 은동이 제주도에서 무책임한 일상탈출을 벌이는 내용을 담았다. 극중 신하균이 맡은 역할은 중필이다.
“출연 이유는 새로움이죠. 안보여줬던 모습이라 선택했어요. 지질하지만 귀여운 구석이 있는 중필 캐릭터가 매력적이었죠. 물론 이야기나 그 안에 정서도 좋았고요. 중년 남자가 친구들끼리 모였을 때 철없는 모습부터 그들의 우정과 사랑,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답답함, 일탈로 갖는 해방감 등이 딱 저희 나잇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공감이 많이 됐죠. 실제 제 친구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었고요. 책을 덮었을 때 친구들 생각도 많이 나더라고요.”
각기 다른 성향의 세 아재 중필, 수탁, 은동. 그중 신하균이 연기한 중필의 매력을 꼽자면 중년과 청년, 그리고 소년의 공존이다. 짊어진 고민과 무게는 분명 중년인데 친구들과 있을 땐 청년의 모습이고 여자 앞에서는 또 영락없는 소년이다.
“사실 처음에는 시나리오에서 제가 느낀 것과 감독님과 그렸던 중필이 차이가 있었어요. 감독님 생각보다 제가 되게 높게 톤을 잡았던 거예요. 첫 촬영이 제주 공항에 도착한 거였는데 그때 세기가 감독님 생각보다 너무 셌죠. 근데 감독님이 되게 노련하신 게 연출자가 정해놓은 세기와 다르면 대개 당황하는데 그걸로 가보자면서 다시 중필의 톤을 잡아 주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지금의 종필이 나왔죠. 다만 걱정은 친구들과 있을 때와 나래(유다인)와 있을 때 갭이었는데 결과물에서는 전혀 이상하지 않았고요. 오히려 여자 앞에서 수줍어하는 모습이나 여자를 대할 때 짓는 미소 등이 쌓여서 그나마 중필이 조금 귀엽게 보이지 않았나 해요(웃음).”
평범한 인물을 연기한만큼 싱크로율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새로움을 찾아다니는 배우이니 캐릭터와의 싱크로율은 제로에 가깝다. 앞서 언급한, 좋아하는 여자에게 쉽게 고백하지 못하는 용기 없는 모습도 그렇다. 그러나 시제가 과거로 바뀐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예전엔 되게 내성적이었거든요. 대학 시절엔 용기가 없어서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잘 표현도 못했죠. 바보 같았어요. 근데 이것도 세월이 흐르면서 변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어릴 때는 자기가 가진 걸 솔직히 보여주기보다 뭔가를 꾸미려고 하잖아요. 더 크고 세보이려고 하는 동물들처럼요. 아마 남자들 대부분이 그럴 거예요(웃음). 더군다나 그 나잇대엔 뭐 내세울 게 있어요. 대학 입학해서 이제 갓 성인이 됐는데. 그러니까 자기를 계속 감추게 된 건데 이제는 좀 솔직하게 나 자신을 드러내려고 해요. 그게 많이 달라진 거죠. 있는 척, 센 척 안하고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가장 큰 무기라고 생각해요. 바보 같은 모습은 바보 같은 그대로 보여주는 거.”
시간이 지나면서 변한 건 그의 성격뿐만이 아니다. 소년에서 중년이 된 만큼 주변 환경도 상황도 많은 것이 변했다. 하지만 신하균은 특별히 달라진 건 없다고 했다. 그저 친구들과의 대화 주제가 재테크, 부동산, 가정 등으로 변하는 걸 보면서 세월의 흐름을 느낄 뿐. 물론 이 역시 그에게는 다소 거리가 먼 이야기다.
“달라진 건 없어요. 걱정거리와 고민도 언제나 똑같죠. 젊을 때나 지금이나 전 비슷한 고민을 해요. 사실 이럴 때나 나이 이야기를 듣는 거고 나이에 대해서도 크게 생각 안하죠. 이십 대에는 뭘 하고 삼십 대에는 뭘 하고 살라고 정해진 건 아니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는 거 자체가 너무 갇혀있는 듯하죠. 사실 보면 이십 대에 할 거 사십 대에 해도 되니까. 그리고 너무 그렇게 살면 다 똑같은 삶을 살게 될 거예요. 좀 유연하게 본인의 길을 갈 필요가 있죠. 결혼도 마찬가지고요. 평균적으로 몇 살에 뭘 해야 한다고 통계가 있긴 하지만, 중요하진 않다고 봐요.”
“언제나 똑같다”는 그의 고민은 다름 아닌 연기다. 데뷔 18년 차 베테랑, 모두에게 ‘하균 神(신하균의 이름에 신들린 연기를 뜻하는 연기의 ‘신’을 합친 별명)’이라 불리는 그에겐 도통 어울리지 않는 걱정이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일에 대한 고민은 똑같아요. 이십 대, 이 일을 시작할 때 고민이 지금까지 있죠. ‘이제 내가 연기를 못하면 어쩌지? 이러다가 날 안찾으면 어떡하지?’하는 불안감도 아직 있고요. 정체된 기분도 들고 발전했다는 생각이 안들고 그런 거죠. 그래서 여전히 매 작품 캐릭터를 어떻게 분석하고 표현해서 새롭게 보여드릴까 고민해요. 사실 전 아직도 첫날 첫 촬영이 두려워요. 잠을 못잘 정도죠. 밖에서는 아닌 척하는데 긴장을 진짜 많이 해요(웃음). 모르는 새 스태프들 앞에서 연기하는 거니까. 내가 마지막으로 내린 결론이 맞을까 걱정도 되고요. 근데 아마 이건 칠십, 팔십이 되도 똑같을 거예요.”
이 고민을 조금이나마 극복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방법은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이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만끽하는 것, 그것이 신하균이 인생을 살아가는 법이다.
“전 원래 과거를 잘 생각하지 않아요. 옛날 이야기하는 것도 별로 안좋아하고 또 잘 잊기도 하죠. 옛날 생각을 하면 후회되는 것도 많고 부끄러운 것도 많잖아요. 물론 행복했던 순간도 있지만, 전 지금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과거의 제가 부족했거나 힘들었거나 그런 걸 생각한다고 과거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요. 미래도 마찬가지죠. 계획이 없어요. 계획한 대로 되는 것도, 불안해한다고 불안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니까. 그저 하루하루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서 사는 거죠. 연기할 때 열심히 연기하고, 배고프면 열심히 먹고, 취하고 싶으면 취하고요. 지금 당장 절 행복하게 하는 거요? 이 인터뷰를 마치고 마실 막걸리?(웃음)”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이형석 기자 (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