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 우려로 경쟁력 떨어지는 기업의 연명 돕는 지원 많아…"대폭 정비 필요"
[세종=뉴스핌 정경환 기자] 일자리사업을 기업이 아닌 개인 지원 방식으로 대폭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산업구조조정과 제4차 산업혁명의 도래 등 한국경제가 새로운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업·산업이 끊임없이 생겼다 사라지고 인력이 이동하는 경제 내 신진대사를 촉진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윤희숙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26일 발표한 '일자리사업 심층평가의 시사점' 보고서에서 "산업구조조정과 제4차 산업혁명의 도래 등 기존의 방식을 답습하는 것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도전이 다가오고 있다"며 "경제 내 신진대사를 촉진하면서 기업이 아닌 개인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일자리 사업을 대폭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6년 상반기, 정부는 재정지원 일자리 사업 전면 재편을 위한 심층 평가를 단행했다. 일자리 사업은 일자리를 찾아 유지하는 것을 돕고, 그에 필요한 역량 축적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2016년 현재 25개 부처 196개 사업에 약 15조8000억원의 예산이 소요되고 있다.
윤희숙 교수는 "지금 시점에서 일자리 사업을 전면 재검토한다는 것은 일자리 사업이 담당해야 할 역할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경제발전단계와 경제환경에 따라 일자리 사업의 역할은 달라지는데, 현재를 특징짓는 것은 제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산업구조조정이라는 한국경제 미증유의 과제"라고 말했다.
빠른 변화와 불확실성,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한 정보기술의 발전이라는 환경 속에서 중요한 것은 새로운 시도들이 원활하게 이뤄지는 것인데, 이런 시도를 억압하는 시스템적 경직성은 완화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윤희숙 교수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다"면서 "빠른 변화 속에서는 자본과 노동이 생산성이 높은 부분으로 신속히 이동하고 비생산적인 부분이 지체 없이 퇴출하는 시스템적 탄력성이 경쟁력의 핵심이 된다"고 말했다.
전 산업 진입률과 퇴출률. <자료=한국개발연구원> |
보고서에 따르면, 이런 상황에서 '일자리를 찾아 움직이고 준비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는 개인의 역량을 키우고 실패 시 떠안아야 할 위험을 줄여주는 것,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시장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거 고속성장과 외환위기 이후 복지확대기 동안 고착된 업무 관행은 현재 우리가 직면한 도전에 맞게 전환돼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기업을 유지해 기존 일자리를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대신 경제의 신진대사와 근로자의 노동시장 진입·탈퇴를 촉진하면서 탈락자나 취약층 개인을 보호하는 것이 원칙이어야 한다.
윤희숙 교수는 "재정을 투입해 일자리 창출을 증진하는 일자리사업은 기업·산업이 끊임없이 생겼다 사라지고 인력이 이동하는 경제 내 신진대사를 증진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언급했다.
2000년대 초반 20%를 상회하던 기업 진입률과 퇴출률이 10% 내외로 감소하고 일자리가 저임금·저숙련 직종 위주로 창출되는 것은 경제 내 활력 저하를 나타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윤희숙 교수는 "어느 때보다도 경제 활력이 필요한 현재 일자리사업은 이를 보충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며 "하지만, 실제는 타기팅(Targeting)이 분명치 않은 각종 보조금을 통해 경제의 신진대사를 지연시키고 있는데, 이는 당장의 취업자 수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의 연명을 돕는 지원이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부 주도 관행이 시장신호를 가리는 것도 문제다. 업훈련이나 고용서비스는 노동시장에서 일시적으로 탈락한 국민들에게 취업역량을 재충전하고 일자리를 알선해 주는 영역으로서 시장신호를 민감하게 인지하고 반응하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나라 일자리사업에는 과거 경제개발 시기 유망산업을 선정해 우대하고 자원수급을 계획했던 정부 주도 관행이 광범위하게 잔존하고 있다.
윤희숙 교수는 "시장 변화의 흐름을 개인이 잘 활용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장신호를 정부가 왜곡하지 않아야 한다"며 "정부가 시장을 주도하기보다 시장 규율 등 시장환경을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자리사업은 규제 일변도의 기존 보호수단을 대체하며 움직임을 증진하는 한편, 탈락자를 보호해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희숙 교수는 "결국 일자리 사업은 기업이 아니라 사람을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보호하는 방식 또한 '일정 수준을 무조건 보장'하는 과거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시도에 따르는 위험을 감수해 변화의 흐름을 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정경환 기자 (hoa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