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저널 그날'에서는 공민왕과 신돈, 그리고 애첩 반야에 대한 내용이 공개된다. <사진=KBS1 '역사저널 그날' 캡처> |
[뉴스핌=이지은 기자]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공민왕과 신돈의 이야기가 공개된다.
13일 방송되는 KBS1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노비의 아들 신돈, 공민왕의 사부가 되다’ 편이 전파를 탄다.
노비를 풀어주고 토지 제도를 정비하는 등 혁신적인 개혁을 감행한 신돈은 요승이라 불리며 고려사 반역 열전에 오르게 된다.
개혁가과 요승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으며 고려에 파란을 몰고 온 인물이 바로 신돈이다.
앞서 공민왕은 어느 날 자객에게 위협을 받다가 어떤 승려가 나타나 목숨을 구해주는 꿈을 꾼다. 그리고 며칠 뒤, 측근 김원명이 왕에게 한 승려를 데려와 인사 시키는데, 놀랍게도 꿈에서 목숨을 구해준 승려였다.
그가 바로 화왕산 옥천사 노비의 아들 신돈이었던 것. 를 매우 기이하게 여긴 왕이 신돈과 이야기를 나누어 본즉, 뜻이 잘 통하여 이후로도 자주 내통하며 교리와 정사를 논의하였다.
마침내 1365년 공민왕은 신돈에게 청한거사라는 호을 내려주며 사부로 삼았다. 공민왕은 신돈을 절대적으로 신임하며 그에게 국정을 맡긴다.
또 정사를 돌보게 된 신돈은 권세가와 호족들이 불법으로 탈취했던 전민을 주인에게 돌려주는 전민병정도감을 설치하고, 노비 제도를 혁신하는 등 과감한 개혁을 단행한다. 이러한 개혁은 민생을 안정시키고, 권문세족들의 세력을 약화시켜 왕권을 강화하는 큰 기틀이 되었다.
반면 조정 안팎의 모든 권세가 신돈의 손아귀로 넘어가자, 신돈은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스스로를 ‘성인’이라 일컫고, 부녀자들을 갖은 구실로 유인하여 음행을 저지르는 등 온갖 폐단을 일삼는다.
왕에 버금가는 권세를 누린 신돈의 이름이 원나라에까지 알려져 그는 ‘권왕’이라고 불릴 정도. 이 무렵부터 공민왕은 신돈의 독주를 경계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1371년, 신돈이 역모를 모의했다는 밀고가 올라온다.
신하들은 대역죄인 신돈을 극형에 처해야 한다고 나서고, 등용 6년 만에 신돈에게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친다. 과연 공민왕의 선택과 신돈의 참모습은 무엇일까.
한편 ‘역사저널 그날’은 매주 일요일 밤 9시 40분에 방송된다.
[뉴스핌 Newspim] 이지은 기자 (alice0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