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이지은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누군가를 웃기는 개그맨으로 시작해 무대 위에서 연기와 노래를 펼쳐 보여주는 뮤지컬까지 섭렵했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삶을 연기할 수 있는 또 다른 직업 연기자 혹은 배우라는 타이틀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가 됐다.
정성화(41)가 지난 9일 개봉한 영화 ‘스플릿’을 통해 선 굵은 악역 연기를 선보였다. 이 영화는 도박 볼링 세계에 뛰어든 밑바닥 인생들의 짜릿하고 유쾌한 한판 승부를 그렸다. 정성화는 만년 2위 꼬리표를 떼지 못해 열등감에 휩싸여 악행을 일삼는 두꺼비를 연기했다.
“악역 연기가 정말 많이 끌렸어요. 일종의 편견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개그맨이나 뮤지컬 배우 하면 쾌활하고 밝은 이미지를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제가 악역을 선보이면 엄청난 반전이 될 거라고 생각한 거죠. 악역은 ‘연기 잘하는 사람이 맡는 역할’이라는 일종의 공식도 성립돼 있잖아요. 제가 역할을 잘 소화하면 연기력으로 인정받는 기회가 되겠죠. 그래서 더욱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하하.”
두꺼비는 볼링 대회에서 매번 철종(유지태)에게 패하면서 만년 2인자 낙인이 찍힌다. 그로인해 열등감에 휩싸인 인물. 철종이 사고로 다리 부상을 입고 선수생활을 그만두지만, 두꺼비의 분노는 여전히 한 사람에게 향한다. 정성화는 과거 자신이 두꺼비와 닮은 점이 있다고 돌아봤다.
“개그맨 시절 열등감이 있었어요. 밑천이 없는 상태에서 개그맨 시험에 한 번에 합격했지만, 틴틴파이브 시절 내공이 없어서 뭘 해도 잘 안됐죠. 그래서 주변에서 ‘넌 참 애매해’라는 말을 자주 들었어요. 그 말이 너무 싫었죠. 그게 나중에는 열등감으로 변하라고요. 그때 기억을 돌이켜 영화에 대입해보니까 두꺼비 마음이 이해가 됐어요. 저는 두꺼비가 정말 못된 놈이라는 생각은 안 해요. 그냥 주변에 있을법한 얄미운 사람 중 한명이자, 공감 가는 인물 정도죠.”
‘스플릿’은 정성화에게 다소 특별한 작품이다. 유쾌하고 밝을 것만 같았던 정성화가 정말 지독할 정도로 악역을 완벽히 소화해냈고, 제대로 반전을 꾀했기에 그렇다.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감이 큰 만큼, 아쉬움도 분명 있다.
“작업 자체가 정말 재미있었어요. 뮤지컬은 표정부터 호흡까지 모두 과하게 표현해야 맛이 살잖아요. 근데 영화는 정반대였어요. 그래서인지 새로운 영역을 연기하는 것 같아서 정말 흥미롭더라고요. 그 동안 배운 것을 이번 영화에서 다 쓴 것 같아요. 제가 생각했을 때 현장에서 부족했던 부분은 여지없이 편집이 됐더라고요. 하하. 아쉬운 점이 있다면 흥행이죠. 하지만 정말 좋은 영화라서 분명 뒷심을 발휘할 거라고 생각해요.”
벌써 연기를 시작한지 17년이 넘었다. 개그맨 생활까지 합치면 연예계에서 활동한지 20년이 넘은 베테랑이다. 하지만 정성화는 “이제야 영화를 대하는 배우의 자세를 배웠다”고 털어놨다.
“(유)지태를 보고 영화를 대하는 배우의 자세를 배웠어요. 영화에 대한 철학이 남다르더라고요. 촬영에 들어가면 내면에 있는 모습을 끌어내려고 엄청난 노력을 해요.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자기 일을 진실되게 만드는 장점이 있어요. 어느 날은 지태가 ‘연기할 때 거짓말 하는 걸 싫어해요’라고 말했죠. 나중에서야 영화에서 연기는 진실돼야 한다는 걸 느꼈어요. 조금의 거짓말이라도 섞이면 스크린에서 티가 나더라고요. 너무 훌륭한 배우들과 일을 해서 좋은 영향력을 많이 받았어요.”
내용이 볼링으로 시작해 볼링으로 끝나다보니, 수도 없이 볼링공을 굴리고 폼을 잡으며 연습했다. 짧을 수도 있는 4개월이지만, 정성화로서는 나름 뿌듯한(?) 결과를 얻었다.
“볼링을 4개월 정도 배웠는데 실력은 늘지 않더라고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201점을 기록하고 나서는 다른 점수는 기억도 잘 안 나요(웃음). 폼을 많이 연습했어요. 연습을 잘했는지, 영화에서는 제가 봐도 볼링 치는 모습이 너무 멋있더라고요. 매번 할아버지, 동네 건달 분장을 많이 해서 멋있는 스틸컷이 없었거든요.”
사실 정성화를 떠올리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뮤지컬이다. 이번에도 영화와 뮤지컬을 넘나들며 누구보다 바쁜 스케줄을 소화했다. 그 무엇 하나 놓칠 수 없을 정도로 애정이 크다는 정성화. 그에게 있어서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뮤지컬 영화’가 탄생하는 거다.
“영화는 섬세하고 긴 호흡이 굉장한 매력이죠. 뮤지컬은 다이내믹하고 현장에서 바로 받을 수 있는 피드백이 큰 장점이고요. 노래 안에서 연기를 한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죠. 뮤지컬과 영화 중에 하나만 선택할 순 없어요. 바람이 있다면 ‘뮤지컬영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저는 둘 다 해봤으니까 뮤지컬 영화에서 장점이 될 것 같아요. 나름대로 쌓아온 데이터도 있고요(웃음).”
이제는 개그맨보다 배우라는 타이틀이 어울린다. 뮤지컬에서도, 영화에서도. 정성화에게 있어서 배우는 제 2의 인생을 열어준 소중한 직업이기도 하다.
“단순해요. 정말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 대신 ‘잘한다’는 말을 오래 듣고 싶은 욕심이 크죠. 배우라는 직함을 가지고 일을 하는 동안에는 정말 열심히, 잘 하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저를 보러 오시는 분들의 시간을 아깝게 하고 싶지 않아요. 한 가지 더. ‘스플릿’은 두 번, 세 번 보세요.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정말 재밌는 거 아시죠? 하하.”
[뉴스핌 Newspim] 이지은 기자 (alice09@newspim.com)·사진 이형석 기자 (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