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시민단체 반대 속 '일사천리' 추진…양국간 첫 군사협정
[뉴스핌=이영태 기자] 한국과 일본 정부가 23일 양국 간 군사정보 공유와 직거래를 가능케 하는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 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을 체결했다. 한국이 1945년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난 후 일본과 체결한 첫 군사협정이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일본대사가 23일 국방부 청사에서 양국을 대표해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에 서명하고 있다.<사진=국방부 제공> |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일본대사는 이날 오전 국방부 청사에서 양국을 대표해 GSOMIA에 서명했다. 협정은 상대국에 대한 서면 통보를 거쳐 곧바로 발효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전날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한일 GSOMIA와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법'(특검법) 공포안을 재가했다.
지난 1일 일본 도쿄에서 한일 간 실무협의를 4년 만에 재개한 지 불과 22일 만이며, 지난달 27일 논의 재개 발표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27일 만이다. 4년 전 무산됐던 일본과의 군사협정 체결에 대한 공감대가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국민여론 수렴을 위한 공청회 한번 없이 일사천리로 밀어붙인 결과다.
한일 양국은 이날 협정 체결로 북한 핵·미사일 정보를 비롯한 2급 이하의 군사비밀을 미국을 거치지 않고 직접 공유할 수 있게 됐다. 양국은 그동안 한미일 정보공유 약정에 따라 미국을 경유해 정보를 교환해왔다.
GSOMIA는 국가 간 군사비밀 공유를 위해 지켜야 할 보안 원칙을 담은 협정으로, 정보의 제공 방법과 보호 원칙, 파기 방법, 분실 대책 등을 정하고 있다. 이 협정 체결 없이 외국과 군사비밀을 교환하면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이다.
이번 GSOMIA 체결은 한국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일본과의 군사협력 확대를 위한 첫 걸음을 뗐다는 의미를 갖는다. 북한의 핵위협에 대한 한일 간 공조가 외교적 차원을 넘어 군사적 차원까지 확대된 것으로 분석된다.
GSOMIA 체결로 양국은 북한 핵·미사일 위협 정보를 직접 공유하며 대북 군사적 공조를 강화할 수 있게 됐다. 일본은 정보수집 위성 5기, 이지스함 6척, 조기경보기 17대, 해상초계기 77개 등 고급 정보자산을 갖추고 있어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한 영상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한국은 주로 감청정보와 탈북자 등에 의존한 인적정보(휴민트·HUMINT)를 일본측에 제공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권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독도 영유권 문제와 일본군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태도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를 지향하는 일본 정부와 GSOMIA를 체결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며 위험한 선택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 거센 후폭풍이 예상된다.
최근 국내 여론의 관심이 '최순실 게이트'에 쏠린 틈을 이용해 정부가 국민여론을 수렴하기 위한 공청회도 한번 열지 않고 '밀실'에서 속전속결로 한일 GSOMIA를 밀어붙이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야3당은 한일 GSOMIA 체결 추진에 반발해 오는 30일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해임 건의안을 제출하기로 했다. 사드저지전국행동 등 시민·학생단체들도 "한일군사보호협정은 미국과 일본에게는 이익이지만 우리에게는 백해무익하다"며 국민 여론을 수렴하지 않은 '졸속'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 세부 내용은?
한국과 일본이 체결한 GSOMIA는 2급 이하 군사기밀을 공유하는 데 있어 보안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사항을 담고 있다. 총 21개 조항에 걸쳐 교환할 비밀의 등급과 제공 방법, 보호 원칙, 정보 열람권자의 범위, 파기 방법, 분실 및 훼손 대책, 분쟁해결 원칙 등을 정하고 있다.
협정의 목적은 '군사비밀정보의 보호 보장'(제1조)이다. 제4조에는 교환할 군사비밀정보의 등급이 정의돼 있다. 한국의 '군사 Ⅱ급 비밀'은 일본의 '극비·특정비밀'에, 한국의 '군사 Ⅲ급 비밀'은 일본의 '비(秘)'에 상응하도록 규정돼 있다.
군사기밀보호법에 따르면, 군사 비밀은 누설시 국가안전보장에 끼치는 위험의 정도에 따라 Ⅰ∼Ⅲ급으로 나뉘는데 Ⅰ급은 '치명적인 위험', Ⅱ급은 '현저한 위험', Ⅲ급은 '상당한 위험'이다.
'군사 Ⅰ급 비밀'은 이번 협정문에서 제외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일본과는 Ⅱ급 이하의 군사비밀만 교환하게 된다"며 'Ⅰ급 비밀'은 이번 협정에 따른 교환 대상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제6조는 정보보호의 원칙으로 '사전 서면 승인 없이 제3국의 어떤 정부, 사람, 회사, 기관, 조직 또는 그 밖의 실체에게 공개하지 아니하고, 제공된 목적 외의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군사비밀 정보는 정부 대 정부 간 경로를 통해 당사자 간에 전달되며(제9조), 관련 정보가 보관된 시설의 보안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제10조)
제11조는 전달 시 구체적 보안조치를 담고 있다. 비밀문서는 이중으로 봉인된 봉투에 담아야 하며, 비밀장비는 덮개 있는 차량으로 전달돼야 한다고 명시했다. 전자수단으로 전달할 경우엔 적절한 암호체계를 이용해야 한다.
제17조는 제공된 정보가 분실 및 훼손됐을 가능성이 있으면 즉시 상대국에 통지하고 조사에 착수해야 하며, 조사 결과와 재발방지책을 상대국에 전달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마지막 조항인 제21조는 협정의 유효기간과 종료에 대한 사항을 담았다.
협정의 유효기간은 1년이며, 협정의 종료를 원하면 상대국에 종료 90일 전 외교 경로를 통해 서면으로 통보해야 한다. 이런 조치가 없으면 협정은 자동으로 1년씩 연장된다.
국방부에 따르면 한국은 지금까지 미국과 러시아, 프랑스 등 19개국과 정부 간 군사정보보호협정, 독일 이탈리아 이스라엘 등 13개국과 국방부 간 군사정보보호약정을 각각 체결하고 있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도 군사정보보호약정을 체결했다. 일본은 한국과 군사정보보호협정 또는 약정을 체결한 33번째 국가다.
국방부는 현재 중국을 비롯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사우디아라비아, 페루, 몽골, 터키, 태국, 체코 등 8개국과 협정 체결을 추진 중이며, 독일과 인도네시아와는 약정을 협정으로 격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뉴스핌 Newspim] 이영태 기자 (medialyt@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