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저널 그날'이 고려 말 충신 최영과 조선의 시조 이성계의 양보 없는 대결을 재조명한다. <사진=KBS> |
[뉴스핌=정상호 기자] KBS 1TV '역사저널 그날'이 고려 말 혼돈의 시기 격돌했던 이성계와 최영 장군을 재조명한다.
4일 오후 9시40분에 방송하는 '역사저널 그날'은 고려 말 전횡을 저지른 이인임을 제거하기 위해 손잡은 이성계와 최영이 주인공이다.
이날 '역사저널 그날'은 숱한 전투에서 무공을 세운 고려 최고의 영웅 최영이 이인임을 쳐내기 위해 신흥 무장 이성계와 손을 잡은 배경을 살펴본다.
1388년, 권세가 하늘을 찌른 이인임은 왕보다 훨씬 큰 권력을 휘두르며 국정을 농단했다. 고려가 백성의 신음으로 가득하자 나라의 영웅 최영은 이인임 제거 계획을 세운다. 최영의 계획에 동참한 인물은 왜구 토벌의 주역이자 떠오르는 신흥 무장 이성계였다.
두 사람은 힘을 모아 마침내 이인임 무리를 처단하고, 14년간 지속된 어둠의 시대를 종식시킨다. 최영은 최고위직인 문하시중에 임명되고, 이성계는 두 번째로 높은 수문하시중에 올랐다.
고려를 지킨 두 사람의 반목은 1388년 2월 시작됐다. 요동을 차지한 명나라가 철령 이북 땅을 귀속시키겠다고 고려에 통보하하자 최영은 원나라와 협공 카드를 꺼내 요동정벌을 주장한다. 반면 이성계는 대화와 외교를 주장하며 최영의 의견에 반기를 들었다.
고려 32대 우왕은 이성계의 4불가론을 무시하고 결국 최영의 뜻에 따라 출병을 명한다. 1388년 4월 18일, 이성계의 우군과 조민수의 좌군은 요동 정벌을 위해 출정했고, 압록강 중간 위화도에 주둔한다. 연이은 장마에 강물이 넘쳐 건너지 못하던 이성계는 회군을 청하는 글을 올리지만 우왕과 최영은 진군을 독촉한다. 결국 이성계는 한 달여 만에 위화도 회군을 단행한다.
돌아온 이성계는 최영을 악인으로 규정했다.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이 반역이 아닌 사직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최영을 추포했다. 결국 최영은 정치싸움에 밀렸고 그의 운명과 함께 고려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고려 말 한때 손을 잡았다 숙명의 대결을 펼쳐야 했던 최영과 이성계의 싸움은 4일 '역사저널 그날'에서 모두 공개된다.
[뉴스핌 Newspim] 정상호 기자 (uma8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