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9종 세트 완성해도 여성이 걸림돌
최종 합격자 모두 남자인 경우도 수두룩”
기업들 “결혼·출산으로 女 꺼리는 게 사실”
깨지지 않는 유리천장…남녀차별 관행 깨야
[뉴스핌=황유미 기자] # 지난해 7월 부산의 중견기업에 지원했던 김지원(가명·여·26)씨는 취업시장에서도 '유리천장'이 있음을 실감했다. 최종 면접을 꽤 잘 봤다고 생각했는데, 떨어져서 의아해하던 중 지인으로부터 "해당 회사 합격자 3명이 모두 남자"라는 말을 들었다. 최종면접은 남자, 여자가 5명씩 총 10명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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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2차 시험을 볼 때는 여성이 훨씬 더 많았는데 4차인 최종 면접갈 때까지 보니 여성 비율이 점차 줄어들더라"며 "이럴 거면 애초에 '남자만 뽑는다'고 공지를 해줬어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토로했다.
8일 오늘은 제109회 세계 여성의 날이다. 1908년 열악한 여성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벌인 시위가 여성의 날 시작이다. 한국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여성의 날을 기념하기 시작했다. 이후 여성이 처한 열악한 노동환경은 개선되긴 했으나 취업·노동시장에서 차별은 아직까지 여전해 보인다.
지난해 3월 마스터카드가 아시아·태평양 지역 18개국을 대상으로 수치화한 '마스터카드 여성 사회 진출 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52점을 받아 전체 18개국 중 13위에 머물렀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을 막는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취업시장에서 진입장벽을 마주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이다.
지난 1월 취업사이트 인크루트가 여성회원 59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93%가 '취업에 있어서 여자는 불이익을 받는다'고 답했다. 구직활동을 하면서 실제 불이익을 받았던 경험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72%가 '있다'고 응답했다.
한 응답자는 "같은 학교를 졸업한 남자 지원자보다 명백히 더 나은 스펙과 경험을 가지고 있는데도 서류에서 탈락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응답자는 "서류합격 후 면접장에서 면접관이 내게 '면접에서 여자인 게 점수를 깎아먹는다는 거 알아요?'라고 물었다. 애초에 채용공고에 남자만 뽑겠다고 명시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이런 얘기를 할거면 왜 불렀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결혼과 육아 문제도 취업 장벽으로 작용했다.
설문조사 응답자 중 한 명은 "여성인 나에게만 면접에서 결혼계획, 남자친구 유무에 대해 질문했고 같은 질문에 대답해도 반응이 달랐다. '여자라서 (어쩔 수 없다는) 이런 말할 생각있으면 이 자리에서 나가세요'라는 지시에 수모를 겪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취업시장의 진입 장벽은 여성만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여성과 같이 취업시장에 머무는 남성들 또한 '남자라는 것이 하나의 스펙'이 될 수 있음을 인정했다.
3년 전 대기업 인턴생활을 했던 이모(남·27·회사원)씨는 "인턴 당시 식사를 하는데 상사가 '너희는 남자 아니었으면 떨어졌다'고 얘기했다. 성적대로 하면 여자가 모두 뽑혔어야 했는데 성비(性比) 때문에 혜택을 받은 듯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씨는 "인사부 관계자도 '여자는 실제로 결혼하고 출산휴가다 뭐다 해서 꺼려지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여성의 취업장벽이 뿌리깊은 남녀 차별 관행로부터 시작된다고 지적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에서도 1990년대 초반에는 노동시장 차별이 해소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며 "하지만 1990년대 말 경제 위기가 닥치면서 일자리가 많이 안 생기다 보니 남성을 생계부양자로 인식하고 우선적으로 뽑는 관행이 다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어 "남녀 차별은 문화와 의식에 광범위하게 뿌리 내려 있어서 하루 아침에 해결되지 않겠지만 강력한 법과 제도, 정책을 만들어 차별을 단속해 나가는 게 시작"이라며 "미국 '차별 없는 고용을 위한 위원회'(EEOC)와 같은 차별과 관련된 사건을 조사하고 처벌하는 국가 기구를 설치해 강력 대처해 나가야한다"고 덧붙였다.
[뉴스핌 Newspim] 황유미 기자 (hum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