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대다수 대중에게 그는 악하디악한 카와구치(암살, 2015)로 기억돼 있다. 더 최근 이미지 역시 조진웅과 기 싸움을 벌이던 모습(사냥, 2016). 스크린 속 그는 주로 차갑고 냉정하고, 또 때론 거칠었다. 하지만 직접 마주한 그는 달랐다. 익히 들은 대로 굉장히 유쾌하고 재밌었다. 유난스런 표정 변화나 특별한 액션 없이도 시종일관 상대를 웃게 하는 재주가 있는 사람.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까지 그에게 완벽하게 속아왔다.
배우 박병은(40)이 또 한 번 악의 탈(?)을 쓰고 극장가를 찾았다. 신작 ‘원라인’을 통해서다. 지난 29일 개봉한 이 영화는 이름, 나이, 신분 등 모든 걸 속여 돈을 빌리는 일명 ‘작업 대출’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 범죄오락물. 각기 다른 목표를 지닌 사기 전문가들의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를 그렸다.
“처음 시나리오 봤을 때는 워낙 인물이 많이 나와서 버려지는 캐릭터, 으레 어쩔 수 없이 구색 맞추기용 인물이 있지 않을까 했어요. 근데 다들 캐릭터가 분명하죠. 사실 이게 힘들거든요. ‘암살’ 찍으면서 최동훈 감독한테 감탄한 적이 있어요. 이렇게 많은 배우가 나오는데 어떻게 모든 캐릭터가 다 살까 하고요. 근데 이번에도 그런 거죠. 게다가 입봉 감독이 모든 캐릭터를 다 살려냈다는 게 너무 놀라웠어요.”
박병은의 말 대로 제각각 살아 움직이는 14명의 캐릭터 중 그는 박실장 역을 맡았다. 박실장은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냉혈한 행동파이자 돈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는 야심가. 명예욕이 강하고 지금보다 더 큰 성공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인물이다.
“외적으로는 올림머리를 하고 반 뿔테를 썼죠. 그 시대 권력자들을 생각하면 그런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르더라고요. 특히 안경으로 박실장이 가지고자 하는 권력을 대변하고 싶었죠. 수트도 일부러 맞췄고요. 전사 고민도 많이 했죠. 처음에는 박실장에 관한 수만 가지 곁가지를 꽂았어요. 그러다 촬영 직전에 정말 중요한 거 몇 개만 두고 다 뽑았죠. 곁가지가 너무 많으면 분산되니까요. 지문을 보고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이 들면 살리는 데 무리해서 작은 거 때문에 큰 걸 놓치고 싶지 않죠.”
더 큰 걸 위해 포기한 것들. 애드리브 역시 그랬다. 앞서 살짝 언급했듯 박병은은 자타공인 남다른 개그감을 가진 배우다. 당연히 애드리브 센스도 상당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온전히 시나리오에 의존했다. 대신 괜찮은 아이디어는 이동휘와 공유, 송차장(이동휘) 캐릭터에 녹였다.
“캐릭터상 애드리브를 하면 안됐어요. 선을 꼭 지키고 싶어서 주어진 대사들을 좀 더 철저하게 하려 했죠. 시나리오대로만 했어요. 현장에서는 지금과 같았죠. 특히 송차장과 (임)시완 군이 좋아해줬어요. 시완이는 밤에 갑자기 문자로 ‘형 너무 웃긴다,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개그가 아닌 것 같다, 형 이상한 거 같다’고 해요. (하)정우요? 서로 절대 웃어주지 않죠. 가끔 정우가 너무 웃길 때가 있지만, 절대 안웃어요. 정우도 마찬가지예요. 농담을 던지면 ‘형, 천재 끼가 있는 듯해요’라면서도 ‘천재가 다 웃긴 건 아니죠’라고 받아치죠.”
하정우 이야기에 뜻밖에 화두는 ‘암살’로 넘어갔다. 박병은은 당시 자신이 열심히 준비한 것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부닥쳤고, 실망하는 그에게 하정우가 조심스레 위로를 건넸던 일화를 털어놨다. 물론 하정우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다는 아름답고 훈훈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자연스레 나온 박병은의 ‘암살’ 출연 과정이었다. 오랜 시간 배우로 활동 중임에도 불구, 연기를 향한 그의 변하지 않은 열정과 신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정말 철두철미하게 준비했어요. 오디션 때 대사 전체를 다 외워갔죠. 사비로 일본 선생님 모셔서 녹음하고 잘 때도 들으면서 외웠어요. 간절했고 절실했죠. 1차 오디션 볼 때는 아예 카와구치의 일생과 사진이 담긴 리포트를 냈고, 3차 때는 군복 입고 장갑 끼고 갔어요. 그러고 마지막 4차에서 최종 대사를 읊고 대기실에 있는데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주셨죠. 성취감이 너무 컸어요. 그 역할에 저보다 좋은 배우들이 거론되고 있다는 걸 알았고, 그래서 미친놈처럼 안하면 배역을 따낼 수 없었죠. 놓치면 평생 후회할 듯했어요. 다행히 관객까지 잘 들어줬고 전 보너스를 받았었던 기억?”
기회는 언제나 준비된 자에게 오는 법. 박병은은 ‘원라인’ 홍보가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신작 촬영에 합류한다. 우선 오는 5일 첫 방송을 앞둔 KBS 2TV 새 수목드라마 ‘추리의 여왕’으로 관객을 만나면서 새 영화 ‘악질경찰’ 촬영을 이어갈 예정이다.
“드라마는 4월2일부터 촬영해요. 6회부터 나오죠. ‘악질경찰’도 4월 첫째 주부터 촬영하고요. 아마 4월5일 즈음이 될 듯해요. 하고 싶은 작품이요? 코미디 영화 한번 하고 싶어요. 대본도 없이 그냥 가는 거죠(웃음).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거예요. 이왕이면 배성우 형하고 하고 싶어요. 친하기도 하고 그 형이 못 보여준 잠재적인 개그나 율동. 아, 정말 말도 못합니다. 저도 가끔 너무 웃기거든요. 그리고 또 친구 오정세. 이렇게 세 명 하면 정말 재밌을 듯해요. 사석에서 오정세를 보면 진짜 경이로워요. 말도 안 되는 걸 생각해 낼 때가 있거든요.”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 <사진=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