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후 눈을 떴는데 목소리가 이상하다. 깜짝 놀라 거울을 봤는데 내가 아닌 낯선, 아니 낯익은 아저씨가 서 있다. 아빠다. 그 순간 눈앞에 날 부르는 내가 지나간다. 어느 날 갑자기 아빠와 몸이 바뀌었다.
배우 정소민(28)이 신작 ‘아빠는 딸’을 들고 극장가를 찾았다. 지난 12일 개봉한 이 영화는 하루아침에 아빠와 딸의 몸이 바뀌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은 코미디. 이가라시 다카히사의 소설 ‘아빠와 딸의 7일간’을 원작으로 했다.
“시나리오가 너무 재밌었어요. 이틀에 걸쳐서 새벽까지 봤죠. 보기 쉬운 작품이기도 했고 빠져드니까 끊기도 힘들더라고요. 물론 바디 체인지라는 소재 자체는 그동안 많은 작품에서 봐온 거였죠. 하지만 주로 동년배 남녀의 몸이 바뀌어서 멜로로 가잖아요. 반면 우리 영화는 부녀가 몸이 바뀌죠. 그 지점이 신선했어요.”
극중 정소민은 연기한 인물은 사춘기 소녀 도연. 하지만 설정상 정소민이 맡은 ‘진짜’ 역할은 절실한 승진 기회가 찾아온 찰나 딸의 몸에 들어가게 된 만년 과장 상태다. 정소민은 아재가 된 도연을 통해 데뷔 후 첫 코미디 연기를 펼쳤다(촬영 순서는 시트콤 ‘마음의 소리’ 보다 ‘아빠는 딸’이 먼저다)
“코미디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죠. 보통 코미디는 호흡, 치고 빠지는 타이밍이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그런 호흡을 단기간에 장착할 수는 없겠더라고요. 근데 또 재미가 없으면 코미디는 의미가 없죠. 그래서 접근부터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다 어차피 선배들처럼 못할 거면 재밌게 짜인 상황을 충실하게 해내자 싶었어요. 그러면 상황이 웃겨주겠다고 믿었죠.”
정소민의 말대로 코믹한 상황은 그 자체로 크고 작은 웃음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설득력을 더한 건 다름 아닌 그의 노련한 연기다. 정소민은 실감 나는 연기를 위해 윤제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는 것은 물론, 우리네 아버지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노력했다.
“외적으로는 선배의 말투, 행동, 걸음걸이, 자세 등을 카피했죠. 하지만 문득 그건 흉내 내는 것밖에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리 연기한들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보이쉬한 여자일 뿐이죠. 그러면서 내가 채워야 하는 건 행동이 다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아빠, 남편, 또 가장으로서 느끼는 걱정, 고민, 무게들을 채워야겠다고 생각했죠.”
상태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정소민이 가장 많이 떠올린 사람은 단연 아버지였다. 출연 중인 KBS2 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 미영보다는 도연에 가까운 딸이었다는 그는 이번 영화로 아버지를 더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덕분에 최근에는 난생처음 아버지와 단둘이 극장 데이트도 했다.
“찍으면서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죠. 드라마에서는 착한 딸인데(웃음), 사춘기 시절 전 도연이와 비슷했거든요. 물론 사춘기 때는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아버지가 불편하고 어려울 거예요. 그러다 보면 무섭고 싫은 지경까지 가겠죠. 대학교 때까지 저도 그랬어요. 하지만 지금은 되게 친해졌어요. 아버지도 유해지셨고 저도 이해의 폭이 넓어졌죠. 애정도 더 커졌고 실질적인 변화가 많이 생겼어요.”
정소민은 그런 아버지를 “내게 여유를 주는 울타리”라고 표현했다. 갑작스러운 진로 변경으로 한때는 의견 충돌도 있었지만, 이제 아버지는 그의 가장 든든한 응원군이 됐다. 물론 아버지 외에도 주위에 있는 모든 이가 그렇다.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정소민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다 보니 자연스레 생각이 많아지고 시야도 넓어졌어요. 물론 그만큼 숙제도 많아졌지만요(웃음). 하지만 그럴 때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큰 도움이 돼주죠. 가족을 포함해서 지인들까지 모두요. 덕분에 제가 성장할 수 있는 듯해요. 배우 정소민도, 사람 정소민도. 그래서 늘 감사하고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이형석 기자 (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