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사람은 분명 아닌데 사람 같은 외형이다. 하얀 털로 뒤덮인 뭔가였는데 아주 곱다는 느낌이 들었다. 눈빛이 굉장히 강렬했다. 그리고 입으로 추정되는 곳에서는 소리를 냈다.”
부산의 해운대구 장산과 소백산맥 일대에서 나타난다는 하얀 괴수. 외형이 호랑이와 비슷하다고 해 장산범이라고 불린다. 특징은 들은 소리를 똑같이 흉내 낸다는 것. 사람의 목소리도 예외는 아니다.
자타 공인 ‘스릴러 퀸’ 배우 염정아(45)가 신작 ‘장산범’으로 극장가를 찾았다. 17일 개봉한 이 영화는 장산범 괴담을 모티브로 한 작품. 목소리를 흉내 내 사람을 홀린다는 장산범을 둘러싸고 한 가족에게 일어나는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그렸다.
“희연의 드라마가 와닿았어요. 책을 보면서도 울고 촬영하면서도 울고 영화 보면서 또 울고(웃음). 특히 희연의 감정을 끝까지 몰고 가다가 마지막 선택을 하는 장면에서 공감이 많이 됐죠. 물론 공포를 느끼고 리액션하는 것도 재밌는 작업이었지만, 이야깃거리가 있고 제가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점이 좋았죠.”
극중 염정아가 열연한 인물은 미스터리한 일에 휘말리는 여자 희연. 아들을 잃어버린 후 장산에 내려온 그는 집 근처 숲 속에서 자신의 딸과 이름도, 목소리도 같은 한 소녀를 만난다.
“전 희연이 일반적인 엄마지만, 지금은 많이 예민하고 아픈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모성애적인 부분은 감독님과 대화도 많이 나눴어요. 공포 부분은 시키는 대로 하되 엄마로서의 감정, 그 강도와 희연의 마지막 선택은 맞춰갔죠.”
알려졌다시피 ‘장산범’은 ‘소리’를 중점으로 다룬 작품이다. 낯선 이에게서 내 주위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또 내 목소리가 들린다는. 흥미로운 소재임은 분명하지만,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고충도 많았다.
“소리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상상하거나 앞에서 손짓처럼 아주 작은 신호를 줘요. 근데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마지막 동굴 신에서는 인이어를 끼고 녹음한 목소리를 듣고 했죠. 후시 녹음 같은 경우도 쉽진 않았어요. 특히 아이 입에 목소리를 입히는 게 어려웠죠. 오히려 장산범은 어린이라 쉽게 됐는데 아이는 잘 안 붙더라고요. 표정을 아이처럼 해도 잘 안됐죠.”
아이들과의 촬영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라 여겼다. 염정아는 영화에서 아역 배우 신린아, 방유설과 호흡을 맞췄다. 하지만 뜻밖에 염정아는 “두 아이 덕분에 편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고 했다.
“진짜 아이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육체적,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는데 아이들이 제 역할을 다 해줘서 저도 오로지 제 거에만 집중할 수 있었죠. 쉴 때도 연기 이야기는 안했어요. 분장실에 있을 때도 교우관계, 학교 진도 등의 이야기를 나눴죠(웃음). 저희 애들이랑 하는 이야기랑 비슷했어요.”
경험에서 온 노하우(?)가 도움을 준 셈이다. 실제 염정아는 9살, 10살 자녀를 둔 엄마다.
“얘들이 이제 제가 연기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요. 친구들도 말하고 그러니까. 얼마 전 방학식 날 학교에서 단체로 영화를 보러 갔어요. 근데 ‘장산범’ 예고가 나오는 거예요. 애들이 전부 다 너희 엄마라고 소리쳐서 민망했죠(웃음). 학교 행사에 다 가냐고요? 그럼요. 부모들이 가야 하는 건 다 가죠.”
평범한 엄마답게 영화 홍보가 끝난 후 계획도 꽤나 현실적이다. 두 아들의 다음 학기 일정을 정리하는 것. 물론 배우로서 연기 욕심도 크다.
“개인적인 바람은 아이들 2학기 스케줄 짜는 거죠(웃음). 26일이 개학인데 아직 완성을 못했어요. 큰일이에요. 하하. 배우로서는 ‘장산범’이 잘되고 또 다른 좋은 작품 만나서 빨리 연기하는 거죠. 뭘 해야겠다고 정하지 않고 다 열어놓고 있어요. 생활에 발붙인 편한 연기도 재밌을 듯해요.”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 <사진=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