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와 달리 잡무에 시달려 연장근무는 기본
유치원생 부모 반발에 육아휴직·장기휴가 꿈도 못꿔
[세종=뉴스핌 정성훈 기자] "사립유치원 교사는 3D 직업에 속해요. 처우도 좋지 않은데다 계약서와 달리 연장근무가 기본이고, 정해진 업무 외에 여러 잡무를 처리하느라 정작 원생들을 챙기기도 버거운 실정입니다.(청주 A사립유치원 교사 김모 씨)"
"육아휴직이요? 웬만하면 꿈도 못꿔요. 기껏해야 한 달인데 이마저도 원생 부모들, 원장·원감 눈치보랴 사립유치원 교사들 대부분이 일을 그만두거나 몇 년간 쉬게되는 경우도 허다해요.(서울 B사립유치원 교사 이모 씨)
최근 기자가 만난 사립유치원 교사 김씨(32)와 이씨(29)는 사립유치원 교사들이 잦은 야근과 잡무, '임신순번제' 등 잘못된 관행에 시달리고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처우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임신순번제'란 여성이 임신을 하면 업무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여성 종사자들끼리 임신 순서를 정해 임신 시기를 조절하는 것을 말한다.
김씨는 "임신을 하려면 보통 1년 전에 미리 원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동료 교사들 중 임신 시기를 맞추지 못해 결혼 후 몇 년간 아이를 갖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씨도 "임신순번제는 유치원 교사들에게 일을 그만둬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라며 "아이들을 지도하는 입장에서 내 아이를 마음대로 낳을 수 없다는 사실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들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또 "계약서상에는 8시 출근 7시 퇴근으로 돼 있지만 늦게 퇴근하는 부모들이 많아 부모들이 올때까지 원생들을 돌봐야 한다"며 "원생들을 관리하는 일 외에 행정·회계 업무, 감사 준비 등으로 야근을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이어 "특히 새학기를 준비해야 하는 3월에는 한해 유치원 운영 기획업무와 방과후과정 운영, 회계 업무 등 행정 업무가 몰려 새벽에 귀가하는 일이 허다하다"며 "과도한 행정업무 탓에 원생들에게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세종정부청사 유치원. 사진은 본 기사와 무관함 |
김씨는 또 사립유치원 원장들의 갑질 횡포를 몸소 겪고 있지만 교사 정보를 교류하는 유치원 특성상 정규직조차 외부에 고발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부 유치원 원장들은 유치원 교사들에게 정해진 업무 외에도 잡무를 강제적으로 시키거나 자신의 아이를 각별히 챙겨달라고 부탁하는 등 소위 말하는 갑질을 일삼고 있다"면서 "유치원들끼리 교사 정부를 교류해 블랙리스트 명단을 만들어놔 정규직조차 내부 고발은 상상도 할 수 없고, 한번 원장에게 찍힌 교사들은 다른 유치원으로 옮기는 데 제약이 많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대다수 사립유치원들이 교사들의 무기계약직 전환을 우려해 시간제근무 기간제 교사를 채용하지 않으려는 게 현실이다보니, 유치원 교사들이 육아휴직을 내거나 장기간 휴가를 내는 일은 상상도 하지 못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이씨는 "한 유치원에서 2년 이상 근무하지 못하도록 내부 규정을 정해놓고 교사들의 무기계약직 전환을 원치않아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교사들이 많다"며 "때문에 유치원 교사가 임신했다고 육아휴직을 신청하거나 장기간 휴가를 내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유치원생 부모들도 자신의 아이에게 불편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해 담임을 맡은 교사들의 휴가를 원치 않는다"며 "이런저런 사정을 다 감안했을 때 사립유치원 교사들은 365일 내내 일하게 되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유치원 교사들의 고충에 대해 "임신과 결혼 등과 관련 업계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지난해 병원업종을 시작으로 협회별 선언식을 진행했다"며 "올해는 IT나 출판업종을 중심으로 캠페인을 벌이고 있고, 향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으로 확대해 인식개선을 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뉴스핌 Newspim] 정성훈 기자 (js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