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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노트] 잘나가는 삼성을 왜 '위기'라고 하나

기사입력 : 2017년08월24일 13:37

최종수정 : 2017년08월25일 17:02

열심히 보다는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시점
방향 설정과 결단 부재로 장기비전 표류 우려
총수 장기공백 이어지며 '위기경영' 흐려져

[뉴스핌=이강혁 기자] "대규모 기업집단이 통합전략 기능없이 가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구글이 알파벳이라는 지주회사를 만든 것에서 보듯이 전략과 통합 기능은 필수적이다. 지금 체제는 지속가능하지도, 이사회 중심 경영이라고 미화할 상황도 전혀 아니다."

경영학자인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삼성과 관련해, 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이렇게 썼다.

이 교수는 이 글에서 "기술변화가 빠른 산업은 신속한 의사결정이 생사를 가른다"면서 "아마존의 베조스, 페이스북의 저커버그, 구글의 공동창업가들은 이사회는 커녕 주총도 의미없을만큼 절대적인 의결권한으로 승부하고 있다"고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결심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형석 기자 leehs@

리더십 불확실성. 현재 잘나가는 삼성에 대해, 삼성 안팎에서 '위기'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런 부분이 가장 큰 이유다. 총수의 장기공백은 결국 거대한 기업집단인 삼성을, 한방향을 보고 달려가도록 컨트롤할 수 있는 기능과 전략의 부재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다.

사실 삼성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열심히 하는 것보다는 앞으로 무엇에 집중해야 하느냐의 의사결정이다.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고 도전하는 결단을 내리는 것, 이런 결정에 모든 임직원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한방향으로 달릴 수 있는 동력을 제시하는 것. 이는 삼성의 시스템상 오롯이 총수 리더십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5대 그룹에서 최고경영자를 지낸 재계의 한 원로는 최근 기자와 만나 이런 견해를 전했다.

"삼성전자가 올해 2분기에 거둔 창사이래 최대치의 분기 실적을 두고 '총수가 없으니 더 잘나간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하지만 이는 과거의 투자와 혁신 노력에 업황의 행운까지 더해진 업(業)력의 결과물이다. 총수 공백에 대한 우려를 기우로 보는 것은 삼성을 비롯한 많은 대기업집단의 시스템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천문학적 이익을 가져다 주고 있는 반도체 사업을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시작한 것도, 적자행진 속에서도 뚝심을 가지고 투자와 혁신 노력을 거듭하도록 지치지 않고 채찍질한 것도 총수(이건희 회장)의 방향 설정과 결단에 달린 문제였다."

분기이익 14조원 시대를 열며 쾌속질주 중인 삼성전자. 하지만 미래로 눈을 돌리면 확실한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다. 인공지능, 스마트홈 등 현재의 사업과 전략은 이미 수년전 수립된 것의 연장에 지나지 않다. 다가올 4차 산업혁명의 주요 비즈니스에 대한 투자는 대부분 의사결정 부재로 올스톱된 상태다. 그룹 컨트롤타워의 해체에 더해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도 각종 법 제도에 막혀 무산되며 불확실성은 더 커졌다. 현재의 '황금포트폴리오'라 불리는 삼성전자 사업구조가 5년후 변화할 세상 속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셈이다.

삼성 전체로 봐도 지금은 골든타임에 해당한다. 전체 이익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삼성전자의 미래 기술과 사업을 차치하더라도, 조선, 건설, 금융에 이르기까지 주요 사업군은 벼랑 끝에 서 있다. 삼성 내부의 한 관계자는 "중요한 타이밍인데 윗분들(경영진) 상당수는 (이재용) 부회장 재판에 관심이 쏠려 있다"며 "임직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하고 있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생각보다 크다"고 했다.

서초 삼성타운.

상황이 이렇다보니 총수 공백에 대한 내부의 자성도 일부 나온다. 특히 '삼성식 위기경영'이 많이 흐려졌다는 목소리도 있다. 자칫 사업과 조직의 안주문화가 확산될까 우려하는 것이다.

실제 사업과 조직의 안주문화를 경계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은 이건희 회장이 주창한 위기경영의 핵심으로 꼽힌다. 속칭 '메기론(미꾸라지 무리 속에 메기를 넣으면 미꾸라지들의 생존률이 증가한다는 이론)'과 '마하경영(제트기가 음속을 돌파하려면 설계, 엔진 등을 모두 바꿔야 하듯 세계 초일류 기업이 되기 위해선 체질과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이론)' 등은 이런 배경에서 지속적으로 설파됐다.

내부의 정신 재무장과 장기비전 확립이 정체되면서 다가올 삼성의 미래. 삼성전자의 한 사업부 관계자는 "자만하거나 오만하지 않고 더 높은 위기의식을 가지려고 하지만 전반적인 분위기가 뒤숭숭해 걱정이 큰 것이 사실"이라면서 "위기경영이 많이 흐려진 느낌"이라고 전했다.

삼성전자의 전략스마트폰 '갤럭시 노트8'이 베일을 벗은 24일. 뒤이어 25일 예정된 이재용 부회장 재판에 대한 선고 일정.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면서 역사를 다시 써야하는 평범하지 않은 도전 과제를 눈 앞에둔 삼성에게는 '진짜' 위기라고 말할 엄중한 시기다.

 

[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 재계팀장 (ikh@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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