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변화 조화의 요리
4대 요리 장점 모두 갖춰
중국요리는 왜 이렇게 발달했을까? 역사적 요인으로 보자면, 한(漢)대 이후 2000여 년 간 지속된 봉건적 지배구조가 고급 요리의 영역을 안정적으로 전승‧발전시켜온 동시에 잦은 전란과 재해로 반복된 수천년간의 굶주림이 먹는 방식에 대한 계발‧확장을 유도했다고 볼 수 있다. 음식남녀(飮食男女:禮記)는 역사적으로 ‘먹을 것(행위)’에 대한 욕망(부족함)과 쾌락(넘침)을 솔직하게 긍정적으로 인정했던 전통에 대한 표현이다.
이런 관성이 ‘인간은 자연의 일부(天人合一)’이니 다양한 식재료를 조화롭게 먹어야 양생(養生)이 된다는 인식과 결합되면서, 중국인들은 무엇이든 다 먹는다는 프레임을 형성하게 만들었다. 정치의 핵심은 백성들의 먹는 문제 해결이라고 말하는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史記)은 유사 이래 근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인에게 ‘먹는 문제 해결’이 늘 중요한 과제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마오쩌둥에게도 제1과제(頭等大事)였고, 덩샤오핑도 개혁개방 정책의 3보 중 제1보를 ‘굶을 걱정 없는 사회(溫飽)’로 내디뎠다. 캘리포니아대학의 장치쥔(張起鈞) 교수는 “어떤 의미에서는 서방문화(특히 근대의 미국식 문화)를 ‘성(sexual)문화’라고 본다면, 그와 대비되는 중국의 문화는 일종의 ‘음식(food)문화’라고 말할 수 있다”고 정리한다. 이 주장에 비추어 보면, 중국을 이해하는 소스코드로 중국요리를 대상으로 삼아도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훠궈(火鍋)는 가장 중국적이면서 오늘날 중국요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 요리라고 생각한다. 덤으로 중국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도 얻는다. 중국요리가 추구하는 요리 가치의 실현, 요식업계에서 보여주는 중국식 적응력, 중국적 사회적 관계 맺기에 대한 이해를 훠궈로 살펴보려 한다.
원래 '훠궈'는 우리의 전골처럼 식탁에서 직접 가열해 가면서 먹는 냄비 형태의 ‘조리용 식기’를 말한다. 1920년대 무렵 쓰촨 일대에서 이 ‘훠궈’ 용기를 활용한 요리가 유행하면서 본래의 ‘조리용 냄비’라는 뜻이 전의돼 조리방식 또는 ‘요리 자체’를 의미하게 됐다. 우리의 ‘뚝배기’와 같은 원리이다. 국물 없이 재료를 졸여 먹는 ‘찌개 형태’의 방식과 탕을 용매로 사용해 데쳐 먹는 조리방식으로 나눈다. 전자의 대표적인 요리가 광둥(廣東)지역의 ‘다비옌루(打邊爐)’, 후자가 바로 우리가 흔히 먹는 샤브샤브 형태의 요리다. 쏸양러우(涮羊肉)는 일종의 ‘베이징식 훠궈’로 볼 수 있다.
훠궈는 17세기 중엽 청나라 황실연회 메뉴에 들어가면서 전통요리의 한 구성원이 됐다. 훠궈의 기원에 대해 지구인들은 할 말이 많다. 불의 발견 이후 식재료를 ‘탕’류로 익혀먹는 방법은 어느 문명권에나 존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인들은 훈고학의 선수들답게 출토 유물로 보자면 동한(東漢: 기원 2세기) 무렵, 문헌기록으로 보자면 남북조(南北朝: 기원 3세기) 시기에 이미 훠궈의 기미를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늘날의 요리 형태로 자리를 잡아 실물로 등장하게 된 것은 북송(北宋)~원(元)나라 무렵이니, 늦어도 13세기 중엽 무렵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물론 한국 삼국시대의 토렴에서부터, 오늘날 유럽의 ‘퐁듀’까지 넓게 보자면 데쳐 먹는 방식의 조리법은 인류의 공동 유산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중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요리의 가치를 평가할 때 색(色), 향(香), 미(味), 기(器), 형(形) 등 5가지 요소 간의 밸런스를 본다. 세 가지는 맛, 두 가지는 모양과 관련이 있다. 중국요리협회의 강령에 “중국요리는 맛을 핵심으로, 영양을 그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듯이, 중국요리는 ‘맛’이 핵심이다. 그래서 중국 요리사들은 스시나 스테이크를 요리로 보지 않는다. 중국어로 요리를 ‘팽조(烹調)’라 하는데 스시는 ‘팽(익힘)’이, 스테이크는 ‘조(맛내기)’가 부족해서다.
그래서 믿기 힘들겠지만, 중국요리의 모든 레시피에는 반드시 중국식 인공조미료인 ‘계정(鷄精)’이 들어간다. 물론 맛의 기준은 상대적이며, 현대 건강과 웰빙의 기조에서 중국도 자유롭지는 않다. 훠궈는 식재료와 탕의 종류, 소스와 탕의 맛, 식기와 용기의 변화로 전통가치를 잃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변해 왔다. 중국 요리사들의 가장 큰 고민도 전통요리에 어떻게 새로운 변화를 줄 것인가에 있다. 이런 고민에 답을 주고 훠궈가 중국 요식업의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을 수 있게 길을 열어준 것은 태극문양의 식기로 매운 맛의 홍탕과 담백한 맛의 청탕을 동시에 담아낸 ‘원앙훠궈(鴛鴦火鍋)’이다.
이 원앙훠궈는 1983년 개최된 제1회 전국요리경연대회에 ‘쌍미훠궈(雙味火鍋)’라는 이름으로 출품돼 호평을 받았고, 1985년 무렵에 상품화됐다. ‘맛’에 대한 기호 선택의 발상 전환과 ‘음양(陰陽)’ 철학의 메시지 덕에 오늘날 훠궈육수의 기본 구성으로 자리 잡게 됐다. 이후 양고기 중심에서 쇠고기나 버섯 등으로의 메인 재료 확장, ‘탄위터우’, ‘샤오페이양’ 등이 시도한 탕 육수의 다양화를 거쳐, 2017년 현재 훠궈의 트렌드는 ‘차별화’이다. 대표적 사례로 2016년 중국 내 요식업 매출 4위, 훠궈전문 업체로는 1위를 차치한 ‘하이디라오(海底撈)’ 식당을 들 수 있다.
하이디라오<사진=바이두(百度)> |
‘훠궈무림’에 혜성처럼 등장한 하이디라오의 차별화 전략은 퍼포먼스와 서비스였다. 요리 자체는 흔히 말하는 상향평준화된 상황에서 차별화된 콘텐츠를 개발해 2008년 이후 줄곧 중국 요식업 100대 기업에 들었다. 주문을 하면 제면사가 면을 뽑는 과정을 직접 식탁에 와서 보여준다. 현란한 동작은 마치 공연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대기 손님들에게는 간식과 과일, 음료, 잡지가 무료로 제공되고 네일아트에 구두까지 닦아준다. 자체 직영 식재료 재배 기지를 운영하며 친환경적인 요리와 고객의 건강에도 신경 쓴다는 어필도 한다. 웰빙과 힐링을 촌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구현했던 게 주효했다. 중국인들에게 식사는 중요한 엔터테인먼트인 것이다.
두 번째로는 요식업계 변화에 적응하는 뛰어난 가변성을 들 수 있다. 2016년 중국 요식업 매출 상위 20개 기업 중 정확히 절반인 10개 기업이 ‘훠궈’를 주 메뉴로 하는 프랜차이즈 업체다. 재미있는 것은 서양식 패스트푸드 업체가 전체 영업매출에서 상당 부분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훠궈가 중국요리 전통의 맥을 선양(宣揚)하며 대표선수로서 싸우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경제 진입 이후 단 한 번도 영업매출 1위를 놓친 적이 없는 바이성(百胜)그룹, 2016년 매출 2위를 달리고 있는 톈진딩챠오(天津顶巧)그룹도 서양식 패스트푸드를 다루는 기업이다. 영업매출을 밝히지 않아 기업 순위를 알기는 어려우나, 업계에서는 2~3위 정도로 보고 있는 맥도날드 그룹까지 포함하면 중국 요식업 매출 1~3위를 모두 정크푸드라 일컫는 패스트푸드 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요리문명국 자존심에 큰 상처가 되는 아이러니이다. 전국을 커버할 수 있는 가맹점포 수, 원활한 식재료의 유통과 공급, 동일한 수준의 맛을 유지해야 하는 현대 프랜차이즈식 경영방식에서 ‘메시’급 선수인 ‘훠궈’만이 적응하고 있다.
세 번째로는 중국의 사회적 관계 맺기 메커니즘에 가장 어울리는 요리라는 점이다. 중국인들의 ‘관시(關係)’를 도형으로 표현하자면 ‘원(圓)’이다. 명절과 기념일에 가족과 지인들이 둥근 식탁에 모여 회포를 푸는 ‘투안위안(團圓)’이라는 민속적 행위에 훠궈의 식사 방식이 정확하게 부합한다. 우리네 찌개처럼 한 용기에서 젓가락을 부딪혀 가며 정을 나누고, 이어령 교수의 표현대로 ‘침을 통한 교류’로 함께 먹는다. 넉넉하게 푸짐하게 대접해야 한다는 중국 전통 접객 원칙도 충족한다. 심지어 호스트와 게스트가 ‘조리(데침)’ 과정에 참여해 함께 만든다. 두께만 조절된다면 거의 모든 식재료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은 육해공 출신의 요리를 시차를 갖고 순차적으로 내어 하나의 코스로 함께 떠먹는 방식인 중국 전통의 ‘시계열형’ 식사법을 만족시킨다.
‘훠궈’는 가장 중국적인 요리다. 중국문화가 그렇듯, 성질이 다른 식재료를 탕 안으로 모아 화(和)하여 새롭게 화(化)시킨다. 인테리어, 서비스, 식기, 식재료 및 조미료의 변화를 통해 중체서용(中體西用)의 정신으로 살벌한 요식업계에서 버티고 있다.
중국인들의 생활철학인 ‘흥(热鬧)’을 내기에도 좋다. 중국 4대 요리의 장점도 모두 담고 있다. 매운 맛 중심의 소스로 요리를 관장하는 쓰촨요리의 가변성을 바탕으로, 해산물 위주의 식재료 그 자체로 지배하는 광둥요리, ‘탕’을 얼마나 잘 우려내느냐의 조리 전통을 중시하는 산둥요리, 조리법과 모양을 중시하고 코스요리로서의 구성적 완성도에 목을 매는 화이양요리의 특징을 다 반영하고 있다.
이로써 중국의 전통가치를 지키고 있다는 위안도 준다. 중국에서는 비즈니스적 관계 맺기의 장소로 광둥요리식당을 활용하는 것이 관례다. 혹시 중국 지인과 ‘훠궈’집을 가게 돼도 서로 서운하거나 어색하지 않을 관계가 되었다면, 당신은 이미 중국통이 된 것으로 보아도 좋다.
이상오(충북대학교 중국학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