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습니다.”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7년 1월14일 경찰이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을 불법 체포, 고문하다 사망케 한다. 공안당국은 조직적인 은폐를 시도하지만, 진실을 밝히려는 자들에 의해 진상은 폭로된다. 이른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이는 1987년 6월 항쟁의 주요한 계기로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촉매제가 됐다.
배우 김윤석(49)의 신작 ‘1987’은 바로 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에서 시작한다. 고(故) 박종철 열사의 죽음으로 시작해 고 이한열 열사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대한민국이 가장 뜨거웠던 1987년을 정조준했다.
“장준환 감독님에 대한 끝없는 믿음은 물론이고 시나리오가 너무 매력적이었죠.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로 만드는 건 첫 번째 시도잖아요. 그래서 ‘잘’ 만드는 데 동참하고 싶었죠. 게다가 구조도 독특했어요. 주인공이 안타고니스트죠. 악역이 중심에 있고 선한 캐릭터가 주변에 몰려있어요. 인물을 놓고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와서 힘을 모으고 마지막에 다 빠져나가죠. 굉장히 영리한 구조이자 실제와 가장 유사한 구조인 거예요. 사명감이요? 그건 내세우는 것 자체가 죄송스러운 일이고요.”
극중 김윤석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은폐하려는 대공수사처 박처장으로 분했다. 1950년대에 월남, 그 시절 겪은 고초로 빨갱이라면 치를 떤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집요한 수사력의 소유자로 그 덕(?)에 간첩 및 용공 사건을 전담하는 대공수사의 대부가 됐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죠. 제가 했던 악역, 이를테면 ‘타짜’(2006) 아귀나 ‘황해’(2010) 면가는 시쳇말로 그냥 놀면 돼요. 근데 이건 캐릭터 자체가 하나의 성격이죠. 권력의 어둠을 온몸으로 안고 몰방하는 거예요. 때문에 누군가 힘 있게 버터 줘야지만 그것이 넘어지고 무너질 때 더 크게 와 닿을 거라 여겼고요. 지난 기일에 박종철 열사 형님, 누님을 뵙고도 그랬죠. 제가 여기서 굉장한 악역을 할 거다, 그래야 이 영화가 산다고요. 물론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드렸고요.”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이 빈말은 아니었다. 김윤석은 연기는 물론, 외적인 부분까지 하나하나 챙겨가며 캐릭터에 몰입했다. 이제 많은 이가 알겠지만, 박처장은 실존 인물 박처원을 모델로 재창조된 인물이다.
“실존 인물 사진이 남아있어서 그걸 토대로 외적인 변화를 줬어요. 또 권력의 상징이라는 점을 부각하고자 했죠. 그래서 마우스피스도 끼고 이마 라인도 M자로 만든 거고요. 가발은 아니고 직접 면도해서 이마를 깠죠. 실존 인물이 워낙 거구라 몸에 패드도 댔어요. 마우스피스 연기요? 계속 연습하는 방법밖에 없었죠. 침 많이 흘리면서(웃음). 북한 사투리 같은 경우는 함경도가 아닌 평안도 출신의 사람을 만나서 사사를 받았죠. 역시 낯선 언어이기 때문에 연습밖에 방법이 없었고요.”
김윤석은 ‘1987’을 “거울 같은 영화”라고 정의하며 이번 작품을 통해 놓친 것들, 놓치고 가는 것들에 관해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젊은 세대들이 이 영화를 많이 찾아주길 바랐다. “부당한 것에 대해서 오는 힘, 거부하는 힘은 오히려 젊은 사람이 더 많은 법”이라 덧붙이면서. 혹 기성세대로서 책임감이냐는 질문에는 “모두의 과제”라고 받아쳤다.
“만일 그걸 책임감이라고 한다면 그건 이 시대를 사는 모두의 몫이죠. ‘살아남은 자의 슬픔’(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이라는 제목처럼 살아남은 모두의 과제라고 생각해요. 잘 살아나가기 위한. 이번 영화를 보면서도 그 이야기를 많이 했죠. 우리가 잘 살아야겠다고요. 그래서 변화해나가자고요.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 지금 아픈 역사를 되짚는 이유는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교훈이죠.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으로 2017년을 마감하고 2018년을 열어서 굉장히 영광스럽고요.”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 <사진=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