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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황수정 기자] 무대 위에서 동성애는 더이상 낯설지 않은 소재다. 과거에는 자극적인 요소로 곁들여졌다면, 이제는 한층 발전되고 성숙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연극 속에서 동성애가 어떻게 표현되는지 최근 공연 중인 작품을 통해 살펴본다.
◆ 인간다운 삶에 대한 갈망…'BENT'
연극 'BENT'(이하 '벤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보다 더 혹독한 대우를 받았던 독일의 동성애자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실제로 당시 히틀러 정권은 동성애자, 정신병자, 장님, 장애인들을 격리·처단하는 법이 통과됐으며 대부분의 동성애자들은 거세되거나 수용소로 보내졌다. 동성애 처벌법은 1969년에서야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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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트'의 김혜리 연출은 작품을 통해 '인간이 스스로의 존재를 부인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 삶이 인간다운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공연은 '동성애'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인권에 대해 예리하면서도 깊이 있는 울림을 전한다. 성소수자를 떠나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 삶의 가치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타인에 의해 판단되는 삶의 진정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한편, 연극 '벤트'는 영국 국립극장이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연극 100편 중 한 작품으로, 지난 37년간 40여 개 국가에서 꾸준히 상연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극단 ETS를 통해 지난 2014년, 2015년 공연된 바 있다. 오는 11일까지 서강대학교 메리홀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 동성애 아닌 인류애…'거미여인의 키스'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작가 마누엘 푸익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 낭만적 동성애자 루이스 알베르토 몰리나와 반정부주의자 정치범 발렌틴 아레기 파스가 감옥 안에서 사상과 이념을 극복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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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루이스와 발렌틴은 감옥생활의 지루함을 타파하기 위해 영화 이야기를 한다. 서로의 가치관이 달라 말다툼을 하기도 하지만, 그 차이로 인해 오히려 그동안 각자 자신만의 생각에 갇혀있던 두 사람의 세계가 확장된다. 특히 동성애자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사회에서 거부 당하고 존재 자체를 무시당하며 살아온 루이나를 발렌틴이 이해하면서 관객들 역시 자연스레 감정을 따라갈 수 있다.
발렌틴 역의 배우 문태유는 "발렌틴은 몰리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떠난 다음에야 이 감정이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작품은 '동성애'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교감과 사랑 '인류애'를 전하고 있다. 오는 25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공연된다.
◆ 잘못된 믿음과 쾌락…'네버 더 시너'
1920년대 미국 시카고에서 벌어진 유괴살인 사건 실화를 모티브로 하는 연극 '네버 더 시너(Never The Sinner)'는 19세 부유한 청년들 레오폴드와 롭이 목적과 이유 없이 벌인 살인사건을 두고 변호사 대로우와 검사 크로우가 치열한 법정 논쟁을 펼치는 이야기를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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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작품은 '동성애'가 아닌 '사형제도'에 대해 메시지를 전한다. 여기서 동성애는 레오폴드와 롭의 캐릭터를 강조하는 일부분으로 등장한다. 부유하고 똑똑한 청년들이 니체의 초인론에 빠져 유괴와 살인을 저지르는 행동에 대해 조금 더 개연성을 부과하는 것. 레오폴드 역의 조상웅 배우는 "재판을 진행하면서 레오폴드의 심리가 변화하는데, 끝까지 변화되지 않는 건 롭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 법정에서 두 사람의 변호사는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는 명언을 남겼다. 연극 '네버 더 시너' 역시 사형제도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에 대해 고민해보게 만든다. 오는 4월 15일까지 서울 대학로 DCF대명문화공장 2관 라이프웨이홀에서 공연된다.
[뉴스핌 Newspim] 황수정 기자(hsj1211@newspim.com)·사진 극단ETS, 악어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