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수 등 "청와대 요청으로 다스 소송비 대납" 진술
박근혜·최순실 공모 정유라 말 지원과 유사
MB에 제3자 뇌물수수 아닌 직접 뇌물수수 적용 가능성
[뉴스핌=김기락 기자] 심성그룹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실소유 의혹이 제기된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의 미국 소송비용 40여억원을 청와대 요청에 따라 대납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요청으로 최 씨의 딸 정유라에게 삼성이 말 등을 지원한 사건과 닮은꼴이다.
19일 검찰과 법조계에 따르면 삼성그룹의 다스 소송비 대납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은 설 연휴 기간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 전 부회장은 검찰에 "청와대의 요청에 따라 다스의 소송비용을 대납했다"는 취지의 진술과 함께 자수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부회장은 삼성그룹의 재무통으로, 2010년 퇴임 때까지 삼성의 ‘2인자’란 평가를 받은 인물이다.
또한 검찰은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에 대한 조사에서도 같은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기획관 역시 MB의 최측근으로, 이 전 대통령의 자금 관리를 도맡아 해왔다.
검찰은 두 핵심 측근의 진술과 확보한 자료를 바탕으로 이 전 대통령과 삼성에 대해 뇌물죄를 적용하기로 수사방향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과 관련된 검찰의 수사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형석 기자 leehs@ |
◆ 이학수 다스 비용 냈다…MB, 李 진술 부정
이 전 부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2009년 청와대 측의 요청으로 미국 대형 법률회사 에이킨검프(Akin Gump)에 다스 미국 소송비 350만달러(약 40억원)를 현지법인 등 회사 자금으로 지급했다는 취지의 자수서를 제출했다.
다스는 2000년대 초반부터 BBK투자자문 전 대표 김경준 씨를 상대로 BBK 투자금 140억원을 돌려달라는 취지의 소송을 미국에서 수차례 진행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자 다스는 이 전 대통령 재임 기간인 2009년 에이킨검프를 새로 선임했다. 에이킨검프는 삼성전자를 주요 고객으로 둔 미국의 대형 로펌이자, 로비 업체이다. 이후 2년만인 2011년 김씨로부터 140억원을 돌려받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이 삼성과 다스 측에 어떤 영향을 행사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에이킨검프는 1998년부터 삼성을 대리해 미국 정부를 상대로 로비해온 미국 내 삼성의 업무 파트너로 알려져 있다.
이 전 대통령 측은 “에이킨검프에 소송비용 40억여원을 대납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이학수 전 부회장의 진술을 부정했다.
지금까지 검찰 수사 상황을 종합하면 삼성이 청와대로부터 다스 소송비용을 납부해달라는 요청을 받아 에이킨검프에 낸 것이다. 이 때문에 왜 청와대가 요청했는지, 삼성이 왜 청와대 요청을 수용했는지가 이 전 대통령 수사에 핵심으로 보인다.
검찰은 수사를 통해 다스의 실소유주가 MB란 결론을 도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소송비용 흐름이 ‘삼성→다스’ 형태에서 ‘삼성→MB’라는 그림에 더 가까워진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검찰은 삼성의 다스 비용 대납 과정에서 이 전 대통령의 지시 등 관여 여부를 집중적으로 수사할 방침이다. 법조계 일각에선 이 전 대통령의 소환 시기는 이달 말에서 내달 초로 보고 있다.
최순실 씨 딸 정유라 씨 [뉴스핌DB] |
◆ 다스, MB 소유로 밝혀질 경우 단순뇌물수수
다스 소송비용 대납 의혹은 최근 ‘비선실세’ 최순실 씨 판결에 비춰보면 유사한 점이 많다. 최 씨는 1심 판결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공모해 삼성으로부터 최 씨 딸 정유라 씨에 대한 승마지원비 등 뇌물 79억원을 수수,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MB와 MB 측근들이 삼성에 다스 소송비용 대납을 요청, 다스에 대한 소송비용을 수수했다는 법리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분석된다. 만약, 다스가 MB 소유로 밝혀진다면 제3자 뇌물수수가 아닌, 공무원이 뇌물을 직접 받은 단순뇌물수수 혐의가 되는 것이다.
단순뇌물수수 혐의는 부정 청탁 여부와 관계없이 뇌물을 주고받은 사람 사이의 직무 관련성(대가성)만을 검찰이 입증하면 된다. 대통령은 대기업 등 국정운영 전반에 걸쳐 막강한 권한을 가졌기 때문에 제3자 뇌물수수 등 보다 입증이 비교적 쉽다.
대법원은 “공무원이 그 직무의 대상이 되는 사람으로부터 금품 기타 이익을 받은 때에는 그것이 그 사람이 종전에 공무원으로부터 접대 또는 수수 받은 것을 갚는 것으로서 사회 상규에 비춰 의례상의 대가에 불과한 것이라고 여겨지거나 개인적인 친분 관계가 있어 교분상의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보이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직무와의 관련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또 “비록 사교적 의례의 형식을 빌어 금품을 주고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공무원의 직무와 관련된 이상 그 수수한 금품은 뇌물이 된다”며 공무원의 뇌물수수 범위를 엄격히 제한했다.
[뉴스핌 Newspim] 김기락 기자 (people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