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보완수사 지시로 경찰 영장 기각
정치권 개입에 다른 KT CEO 흔들기 우려
[서울=뉴스핌] 정광연 기자 =정권교체에 따른 KT 최고경영자(CEO) 사퇴 압박이 다시 시작됐다. 경찰이 신청한 황창규 KT 회장 구속영장을 검찰이 기각했지만 사실상 자진 사퇴 최후 통첩이라는 게 통신업계 중론이다. 차세대 통신(5G) 상용화 등 민감한 시점에서 KT 최고경영자에 대한 공개퇴진 압박은 적절치 못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적폐청산'을 주도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서 과거 정부와 똑같이 KT를 전리품 취급하고 있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는 20일,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신청한 황창규 KT 회장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국회의원과 보좌관 등 금품 수수자에 대한 수사를 더 진행하라는 게 기각사유다. 앞서 경찰은 지난 18일 속칭 ‘상품권 깡’을 통해 조성한 현금 4억원 이상을 국회의원 등의 정치후원회 계좌로 입금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황 회장 등 전·현직 임원 4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한바 있다.
영장 기각으로 일단 구속은 면했지만,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정권 교체에 따른 KT CEO 흔들기의 연장선상으로 보고 있다. 향후 법원에서 시시비비를 가려야하는 정치자금법 위반 여부와 별개로 지난 4월 직접 경찰청에 출석한 황 회장에 대해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은 과도하다는 반응이다. 현직 CEO에게 증거인멸과 도주위험 가능성을 거론하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사실 정권 교체에 따른 KT CEO 수난사는 황창규 회장이 처음이 아니다. 기업 논리가 아닌 정치적 이유에서 CEO가 바뀌거나 연임이 저지된 사례가 적지 않다.
국회의원들에게 이른바 '상품권 깡' 방식 등으로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황창규 KT 회장이 4월1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사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이형석 기자 leehs@ |
2005년 노무현 정권에서 KT 수장으로 취임한 남중수 전 사장은 이명박 정권 출범해인 2008년 11월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된후 자진 사임했다.
남 전 사장에 이어 KT를 이끈 이석채 전 회장 역시 박근혜 정권 출범 첫해인 2013년 11월 배임·횡령 혐의 등으로 검찰이 압수수색에 들어오자 물러났다. 하지만 사퇴를 강요받았던 배임 및 횡렴 혐의가 지난 4월 26일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황창규 회장도 문재인 정부 출범이후 직간접적으로 퇴진 압력에 시달렸다. 하지만 KT는 황 회장 취임 후 3년 연속 영업이익 1조 클럽을 달성했다는 ‘경영실적’과 2017년 3월 다수 노조인 ‘KT노조’의 압도적 지지로 연임됐다는 점을 내세워 외부압력을 막았다. 하지만 갈수록 황 회장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50여명 안팎의 KT 새노조는 황 회장 사퇴를 주장하고 나섰다.
업계에서는 이번만큼은 정부 입김으로 기업 CEO를 갈아치우는 악습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무엇보다 KT 5G 상용화와 4차 산업혁명 등 중요한 미래 사업 전략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 논리로 CEO를 교체하는 건 국가 경쟁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소위 국민기업을 만들어놓고 최고경영자를 정권이 임명하는, 그래서 임명될 땐 정권 힘을 빌어서 되고 정권 바뀌면 자기네들이 다시 임명하고 싶으니 내쫓는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라며 “지배구조 측면에서 최악의 상황을 우리가 보고 있다. 정권이 CEO를 계속 임명하는 악순환을 끊지 않으면 이런 사태는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peterbreak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