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드리머 걸' '킹덤' '멜로가 체질' '별의 도시' 등 연출
"플랫폼·매체 확대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
[서울=뉴스핌] 장주연 기자 = 스크린과 브라운관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작품성과 흥행력을 모두 인정받은 유명 영화감독들이 TV드라마로 시청자들을 만난다.
박찬욱 감독의 드라마 제작 소식이 전해진 건 지난 2017년 겨울이다. 그는 ‘아가씨’(2013) 이후 차기작으로 ‘리틀 드리머 걸’을 선택했다. 스파이 소설의 거장 존 르 카레의 원작을 바탕 삼아 이스라엘 정보국과 팔레스타인 혁명군 사이의 첩보전을 다룬 6부작 드라마다. 지난해 영국 BBC, 미국 AMC에서 방송된 이 드라마는 29일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 왓챠플레이를 통해 감독판이 공개된다. 같은 날부터 채널A에서도 매주 금요일 밤 11시에 전파를 탄다.
드라마 '리틀 드리머 걸'로 돌아온 박찬욱 감독 [사진=뉴스핌DB] |
박 감독의 행보에 많은 이가 주목한 이유는 그가 영화감독이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박 감독은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 ‘박쥐’(2009), ‘설국열차’(2013) 등을 연출하며 국내외 유수 영화제를 휩쓴 거장 감독이다. 그런 그가 ‘방송인’을 자처하니 이목이 쏠리는 게 당연하다. 박 감독은 “이 작품이 하고 싶었고 드라마란 형식이 따라왔을 뿐이다. 영화로 만들면 내용을 축소해야 하는데 그렇게 작품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면서도 “영화와 드라마는 근본적 차이가 없다”고 강조했다.
‘끝까지 간다’(2013)와 ‘터널’(2016)로 흥행 2연타에 성공한 김성훈 감독은 좀비 드라마를 들고 안방극장을 찾았다. 지난 1월 넷플릭스로 선보인 ‘킹덤’이다. 죽었던 왕이 되살아나자 반역자로 몰린 왕세자가 굶주림 끝에 괴물이 돼 버린 이들의 비밀을 파헤치며 시작되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킹덤’은 공개되자마자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고 현재 시즌2 촬영에 돌입했다. 시즌2의 연출 역시 ‘특별시민’(2017) 박인제 감독이 맡고 있다.
올해 첫 천만 축포를 터뜨린 ‘극한직업’의 연출자 이병헌 감독은 영화 제작사들의 러브콜을 뒤로 한 채 JTBC로 향했다. 이 감독의 차기작은 오는 7월 방송 예정인 드라마 ‘멜로가 체질’이다. 그가 직접 쓰고 만드는 이 드라마는 서른 살을 맞은 여성들의 고민과 연애 이야기를 담는다. 천우희, 전여빈, 안재홍, 공명 등 주요 캐스팅을 마무리 짓고 현재 막바지 준비에 한창이다.
‘킬러들의 수다’(2001), ‘아는 여자’(2004), ‘웰컴 투 동막골’(2005) 등의 메가폰을 잡은 장진 감독은 데뷔 22년 만에 드라마 연출을 결심했다. 어릴 때부터 하늘을 동경하던 두 남자가 우주인 양성 프로젝트에 선발된 후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우주 항공 드라마 ‘별의 도시’다. 현재 주요 배역 캐스팅 단계다. 사전 제작으로 진행되며 올 하반기 방송 예정이다. 방송사는 미정이다.
드라마 연출에 나선 김성훈 감독(왼쪽부터), 이병헌 감독, 장진 감독 [사진=뉴스핌DB] |
그렇다면 영화감독들이 브라운관으로 무대를 옮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찬욱 감독은 “영화와 드라마 감독을 나눠서 보지만, 사실 아주 예전부터 감독들은 영화와 TV를 왔다갔다 했다. 영화를 만들다가 드라마로 간 사람들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큰 장벽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감독의 말처럼 영화감독의 브라운관행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MBC ‘고스트’(1999) 민병천 감독부터 SBS ‘달콤한 나의 도시’(2008) 박흥식 감독, MBC ‘친구, 우리들의 전설’(2008) 곽경택 감독, KBS 2TV ‘아이리스’(2009) 양윤호 감독, SBS ‘연애시대’(2006), tvN ‘일리있는 사랑’(2014) 한지승 감독, ‘싸인’(2011) 장항준 감독이 모두 영화감독 출신이다.
양윤호 감독은 최근 tvN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2017), 한지승 감독은 OCN ‘미스트리스’(2018)로 한 번 더 안방극장을 찾았으며, ‘백야행-하얀 어둠 속을 걷다’(2009) 박신우 감독은 지난 3일 종영한 OCN ‘트랩’으로 드라마 데뷔를 알렸다.
물론 차이도 분명 존재한다. 과거보다 이동이 더 활발해졌고 영화로 이미 성공궤도에 오른 감독들이 자진해서 나선다는 점이 그렇다. 플랫폼과 매체 확대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병헌 감독은 차기작을 영화가 아닌 드라마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요즘은 다양한 플랫폼에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시대다. 그러다 보니 드라마 연출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고 준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플랫폼의 확대되면서 영화와 드라마 경계가 완전히 무너졌다. 지상파 외에도 종편, 케이블 등 채널이 많이 생겼고 넷플릭스 등 OTT(Over The Top)가 많아지면서 플랫폼이 다양해졌다. 더욱이 그런 채널들은 제작 규모가 크고 창작의 자유도 크게 침해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들이 영화감독들을 부추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jjy333jjy@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