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같은 '춘향' 소재로 열흘 간격으로 개봉한 영화사를 바탕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판소리와 폴리아티스트를 결합한 새로운 음악극
[서울=뉴스핌] 황수정 기자 = 음악과 음향이 영화에 미치는 효과가 얼마나 될까. 이제는 오히려 당연하게 받아들여진 음악과 음향이 과거에는 굉장히 생소하고 색다른 시도였다. 영화의 성공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음향효과의 세계, 그 낯설지만 새로운 시작의 현장을 느낄 수 있는 작품, 바로 '춘향전쟁'이다.
'춘향전쟁' 공연 장면 [사진=정동극장] |
정동극장의 2019년 창작ing 시리즈 첫 번째 작품 '춘향전쟁'(작 경민선, 작곡·음악감독 신창렬, 연출 변정주)은 한국 영화사의 중요한 사건을 배경으로 상상력을 덧붙여 창작됐다. 판소리와 폴리아티스트(영화에서 대사, 음악을 제외한 모든 소리를 만드는 사람), 영화 성춘향 등 이질적인 요소를 묶어 '레트로소리극'으로 명명된 '춘향전쟁'은 이제껏 보지 못한 새로운 형식의 음악극으로 완성됐다.
1961년 당시 한국 영화계의 양대산맥이던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과 홍성기 감독의 '춘향전'이 열흘 간격으로 개봉했던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배우 최은희, 김지미를 내세운 라이벌전으로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해당 사건은 당시 '춘향전쟁'이라 명명되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작품은 영화 '성춘향' 개봉을 하루 앞두고 신상옥 감독과 폴리아티스트가 음향효과로 완성도 높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춘향전쟁' 공연 장면 [사진=정동극장] |
공연은 시작부터 시각과 청각을 사로잡는다. 그동안 무심코 들었던 각종 음향효과를 눈앞에서 배우가 직접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게 된다. 무대 뒤 커다란 스크린에 상영되는 흑백무성영화에 맞춰 자갈, 신발, 양배추 등 온갖 소품으로 싱크를 맞추는 음향을 보고, 듣고 있노라면 빠져들 수밖에 없다. 여기에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판소리까지 더해지면서 보고 듣고 즐기는 재미가 가득하다.
"관객들은 춘향과 몽룡을 보러온다"고 말하는 신 감독에게 폴리아티스트는 "관객들을 춘향과 몽룡으로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음향을 통해 관객들이 실제 극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춘향이 몽룡과 처음 만나는 그네 타는 장면을 시작으로 첫날밤, 춘향의 옥중 장면 등 폴리아티스트는 최선을 다해 음향을 만들고, 신 감독은 달라진 장면에 점점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춘향전쟁' 공연 장면 [사진=정동극장] |
음향효과의 클라이막스는 몽룡의 어사출두 장면으로, 이때는 관객들까지 가세해 함께 음향을 만들어나간다. 신 감독과 폴리아티스트가 1년 전 4.19 혁명을 떠올리듯, 관객들은 오늘날 우리의 목소리 혹은 촛불혁명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또 마지막까지 국악은 쓰지 않겠다던 신 감독이 생각을 바꾸면서, 전통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든다.
극중 '신 감독'은 소리꾼 역할도 함께 겸한다. 김봉영과 오단해가 번갈아가며 시원한 창은 물론, 훌륭한 연기력을 선보인다. '폴리아티스트'는 실제 폴리아티스트가 아닌 배우 김대곤, 오대석이 맡는다. 진땀을 뻘뻘 흘리며 무대 위에서 소리를 만들어 내느라, 이야기를 이어가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박수와 감탄이 나올 정도다.
'춘향전쟁' 공연 장면 [사진=정동극장] |
레트로소리극 '춘향전쟁'은 오는 23일까지 정동극장에서 공연된다.
hsj121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