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자문역할만 맡고 강제력·구속력 없어
미해결 사건에 '면피'로 악용될 가능성도
경찰 "시범 운용 마친 뒤 미비점 보완"
[서울=뉴스핌] 임성봉 기자 = 경찰이 경찰개혁의 일환으로 수사 투명성 제고를 위해 도입한 '경찰 사건심사 시민위원회'(시민위)가 실질적 권한이 없어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선 경찰이 시민위를 사건 종결을 위한 '명분'으로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10일 경찰청에 따르면 강원지방경찰청과 대전지방경찰청은 9월30일부터 경찰 사건심사 시민위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경찰은 11월까지 시범 운영을 마친 뒤 올 연말부터 전국 각 지방경찰청으로 시민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사진=경찰청 본청] |
경찰은 일명 '버닝썬' 사건으로 유흥업소 업주와 경찰 간 유착이 도마에 오르자 지난 7월 '고강도 유착비리 근절대책'의 하나로 시민위 운영을 꺼내들었다. 이에 따라 기존 수사부서 산하에 있던 '수사이의 심사위원회'가 지방청장 직속의 시민위로 개편됐다.
경찰은 이를 통해 시민 통제형 수사체제를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시민위가 자문위원회에 불과하고 강제성이 없어 실질적인 효과를 보기에는 어렵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시민위 운영 규정은 지방청장이 '시민위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만 돼 있을뿐 별다른 강제력·구속력은 명시돼 있지 않다. 시민위가 심의를 통해 지방청장에 수사 계속 여부, 구속영장 신청 여부, 사건 종결 여부 등에 대한 의견을 내도 이를 수용할 의무는 없는 셈이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최근 시민위 운영과 관련해 "내부 운영 규칙으로 지방청장 등이 시민위의 의견을 존중하도록 해놨고 특별히 받아들이지 않을 사유가 없으면 수용하도록 했다"면서도 "자문위원회 성격이어서 강제성은 없다"고 설명했다.
수사이의 심사위원회의 보완책으로 나온 시민위가 기존 문제점을 반복하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시민위가 매년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든 수사이의 심사위원회와 비슷한 결과를 내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최근 5년간 전국 지방청에 총 6833건의 수사이의 신청이 접수됐으나 이중 263건만 수사과오로 인정됐다. 이는 전체 수사이의 신청 건수의 3.8%에 불과한 수치다.
경찰이 시민위를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대전지방경찰청은 지난 4일 현직 경찰관에게 금품을 제공하고 성 접대를 했다는 폭력조직 두목 A씨의 폭로와 관련한 수사결과를 시민위에 심사해달라고 요청했다.
경찰 로고 [뉴스핌DB] |
경찰은 지난 6월부터 이 사건 수사에 착수하고 해당 경찰관의 금융거래 내역 등을 살펴봤으나 A씨의 주장을 뒷받침할 뚜렷한 근거는 찾지 못했다. 결국 수사를 종결하려던 경찰은 시민위에 수사결과에 대한 심의를 요청했다. 이를 두고 사건 자체 종결에 부담을 느낀 경찰이 명분을 쌓기 위해 시민위에 심의를 요청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곽대경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아무런 구속력도 갖추지 못한 시민위는 자칫 다른 위원회처럼 경찰의 들러리만 서는 역할에 머물 수 있다"며 "더욱이 시민위가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됐는지, 또 구성됐더라도 본업에 바쁜 사람들이 과연 적극적으로 시민위 활동에 참여해 수사 투명성을 점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시민위는 주요사건부터 경찰의 내사와 풍속사건까지 보다 광범위한 심의가 가능해 기존 수사이의 심사위원회보다 역할과 위상이 크게 제고됐으며, 심의결과는 반드시 감찰 부서로 전달되도록 했다"며 "시범운영 기간 동안 발생한 문제점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 등은 충분히 분석하고 보완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imbo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