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숙혜의 월가 이야기
[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미국을 필두로 선진국 국채 수익률이 일제히 기록적인 하락을 연출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 한파에 가뜩이나 투자 심리가 냉각된 상황에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의 석유 가격 전쟁이 불 붙으면서 시장 불안감이 증폭된 결과다.
미국 장단기 일드커브가 모두 1%포인트 이내로 좁혀지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단기 자금시장의 심장부에 해당하는 레포시장 리스크가 고조되면서 연방준비제도(Fed)의 정책자들이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유가와 금리의 동반 붕괴가 11년 전 금융위기 당시보다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뉴욕증권거래소의 트레이더가 증시 패닉에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9일(현지시각) 장 초반부터 미국을 필두로 한 선진국 국채 수익률 동반 급락이 월가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미국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0.318%까지 밀리며 사상 최저치를 갈아치웠고, 30년물 수익률이 0.836%까지 떨어지며 사상 처음으로 1% 선을 뚫고 내렸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20% 이상 폭락하며 배럴당 27달러 선까지 후퇴, 가뜩이나 코로나19 사태로 홍역을 치르는 금융시장을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내몰았다.
상황은 유럽도 마찬가지. 영국 10년물 국채 수익률이 0.08%까지 밀리며 역대 최저치 기록을 세웠고, 2년물 수익률이 장중 마이너스 0.4%에 거래돼 이른바 '서브 제로'에 합류했다.
독일 벤치마크 10년물 국채 수익률 역시 장중 마이너스 0.87%까지 밀리며 사상 최저치를 찍은 뒤 낙폭을 일정 부분 좁혔다.
국채 수익률의 도미노 급락과 국제 유가의 가파른 하락이 동시에 나타난 것은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시장 전문가들이 강한 경계감을 드러내는 것은 패닉이 진화되지 않을 경우 국채시장이 예고하는 경기 침체와 금융위기가 실제로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즈호의 피터 차트웰 채권 전략 헤드는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유럽중앙은행(ECB)이 독일 일드커브 역전을 차단하지 못할 경우 금융위기가 터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투자 매체 CNBC의 '매드 머니' 진행자인 짐 크래머는 트윗을 통해 "유가와 금리의 동반 급락은 경기 침체가 임박했다는 의미"라며 "11년 전 금융위기보다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CMC 마켓 싱가포르의 마가렛 양 전략가도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아직 금융위기가 벌어진 것은 아니지만 금융시장의 패닉이 지속될 경우 위기를 맞을 수 있다"며 "시장은 침체 가능성을 기정사실화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미 연준은 당장 자금시장 경색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 팔을 걷었다. 이날 정책자들은 레포시장의 하루짜리 자금 공급을 12일까지 1000억달러에서 1500억달러로 확대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또 2주짜리 레포 자금 공급 역시 최소 200억달러에서 최소 450억달러로 늘릴 계획이다. 유동성 마비가 금융시스템 위기를 초래하는 상황을 방지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에버코어 ISI의 크리시나 구하 중앙은행 정책 헤드는 투자 보고서에서 "연준이 보다 공격적으로 유동성 공급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월가의 트레이더들은 연준의 제로금리 정책 시나리오에 적극 베팅하는 한편 마이너스 금리 시행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트레이더들은 지난 4일 기준금리를 1.00~1.25%로 50bp(1bp=0.01%포인트) 전격 인하한 연준이 오는 17~18일 80bp와 7월 100bp 추가 인하를 점치고 있다.
이와 관련, 크래머는 CNBC의 스쿽 온 더 스트리트에 출연, "통화정책은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다"며 "재정정책 측면의 경기 부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higrace5@newspim.com